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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소설 세상</title>
    <link>https://sora-2878.tistory.com/</link>
    <description>소설 속에 나타나는 세상에 대해서 살펴보고 더불어 작가에 대해서도 살펴봅니다</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Tue, 21 Jul 2026 16:32:2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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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nagingEditor>돈많은한량이꿈</managing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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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소설 세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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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해조, 그 밖의 작품들</title>
      <link>https://sora-2878.tistory.com/entry/%EC%9D%B4%ED%95%B4%EC%A1%B0-%EA%B7%B8-%EB%B0%96%EC%9D%98-%EC%9E%91%ED%92%88%EB%93%A4</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미완의 한문소설 &amp;lt;잠상태&amp;gt;를 쓴 이후 신소설 창작을 시작하여, &amp;lt;강명화실기&amp;gt;에 이르기까지 40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정치적 성향의 풍자 양식인 &amp;lt;자유종&amp;gt;, 동학 봉기를 소재로 하고 있는 &amp;lt;화의 혈&amp;gt;, 미신 타파의 계몽성을 드러내는 &amp;lt;구마검&amp;gt;, 추리적 요소를 지닌 &amp;lt;구의산&amp;gt;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작첩, 계모형의 가정비극적 주제를 보여주는 &amp;lt;빈상설&amp;gt;, &amp;lt;춘외춘&amp;gt;, &amp;lt;구의산&amp;gt;이나, 미신타파를 내세운 &amp;lt;구마검&amp;gt;, 일반적인 남녀이합에 중점을 둔 &amp;lt;화세계&amp;gt;, &amp;lt;원앙도&amp;gt;, &amp;lt;봉선화&amp;gt;의 많은 작품이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 작품들은 모두 봉건 부패 관료에 대한 비판, 여권신장, 신교육, 개가 문제, 미신타파 등의 새로운 근대적 의식과 계몽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고대소설의 전통적인 구조를 기본바탕으로 엮어나간 전형적인 신소설들이다. 이들은 모두 당시 사회현실을 절실하게 부각시키지 못한 결점은 있으나 개화기라는 역사적 상황을 개인적인 체험 세계 안에서 비교적 포괄적으로 형상화시키고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 밖에 베르느의 &amp;lt;철세계&amp;gt; 및 &amp;lt;화성돈전&amp;gt; 등의 번안 소개, 그리고 &amp;lt;춘향전&amp;gt; &amp;lt;심청전&amp;gt; &amp;lt;흥부전&amp;gt; &amp;lt;별주부전&amp;gt; 등의 판소리계 소설을 각각 &amp;lt;옥중화&amp;gt;, &amp;lt;강상련&amp;gt;, &amp;lt;연의간&amp;gt;, &amp;lt;토의 간&amp;gt; 등으로 개작한 것도 그의 문학적 공로이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 밖에도 &amp;lt;모란병&amp;gt;, &amp;lt;우중행인&amp;gt;, &amp;lt;소학령&amp;gt;, &amp;lt;비파성&amp;gt;, &amp;lt;홍도화&amp;gt; 등 신소설 작가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남김으로써 신소설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였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빈상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 줄거리&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서정길은 뚜장이 화순댁 소개로 기생 평양댁을 첩으로 맞는다. 그는 간악한 여자로 본처 이 씨 부인을 몰아낸다. 뿐만 아니라 복단이를 학대해 죽이고, 하인 돌이를 매장해 버린다. 또 이 씨 부인을 황은율이란 불량배에게 팔아버릴 흉계를 꾸민다. 비밀 계획을 엿들은 하인 거북이가 이 씨 부인에게 이 사실을 귀띔해 준다. 이 씨 부인과 쌍둥이인 이승학이 한 꾀를 내어 이 씨 부인과 옷을 바꿔 입고 이 씨 부인은 남복으로 가장시켜 제주로 보내고 자신은 뚜장이 화순댁의 조카 옥희의 집으로 간다. 이 씨 부인으로 가장한 이승학은 황가를 속여 옥희와 한 방에서 지내며 자기 정체를 밝히고 장래를 약속한다. 또 돌이를 시켜 평양댁을 당국에 고발하고 다시 화목한 가정을 꾸미게 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2. 작품 해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07년 &amp;lt;제국신문&amp;gt;에 연재, 1908년 김상만 발행, 변영헌 교열로 &amp;lt;광학서포&amp;gt;에서 간행하였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작첩이 빚는 가정적인 비극과 사회적인 폐단을 비판하고 신학문의 필요성을 강조한 개화기의 계몽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축첩제도의 악폐와 그에 따르는 악랄한 불법적 행위를 비판, 규탄하여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일종의 교훈소설이면서, 결국에는 주인공 정길이 외국 유학길에 오르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 신교육의 필요성을 부르짖던 시대적 흐름에 동조하고 있다. 이 가운데에는 계급타파의식이나 신결혼관, 신교육관 등의 개화 의지가 표출되어 있어 새로운 시대의식을 보여주는 측면도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러나 결국 근본 줄거리를 처첩 갈등에 두고 있으며 결말의 외국 유학 동기가 그리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점 등 전통적인 가정 비극 유형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고전소설적인 처첩간의 갈등에 혼인제도의 계급성을 지양한 평민 의식 및 신학문 고취를 다소 가미한 전형적인 신소설이라 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구마검&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 줄거리&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함진해는 가세도 넉넉하고 식자도 있지만 자손 복이 없어 낳는 아이마다 기르지 못하다가, 세 번째 부인 최씨를 맞아 아들 만득을 얻게 된다. 그런데 최 씨는 무당촌에서 자라났으므로 아들이 감기에만 걸려도 무당 판수를 불러들이며, 또한 첫 부인과 재취부인의 여귀가 붙은 까닭이라고 내세운다. 함진해는 아내 최 씨에게 요사한 미신의 헛됨을 훈계하지만 최 씨 부인은 듣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만득이 천연두에 걸리자 최씨최 씨 부인은 함진해가 지어오는 약은 쏟아버리고 굿에만 치성을 드리다 결국 아이를 잃게 된다. 이에 굿의 영험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부정이 든 때문이며, 이는 남편의 탓이라고 한다. 결국 최 씨는 다시 죽은 아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무당 금방울을 불러 대대적인 굿을 벌인다. 이때, 금방울이 대안동 네거리에서 함진해가 회오리바람을 만난 장면을 눈물을 흘리며 명창으로 엮어나가자, 함진해도 무당의 농간에 빠져들게 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후 이들은 사촌동생 함일청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다시 자식을 얻으려고 선조의 산소를 옮겨 장사를 다시 지내는 등 무당, 판수, 지관의 농간 때문에 패가망신에 이른다. 마침내 함씨 문중에서는 종회를 열어 함일청의 아들 함종표로 종가를 잇게 한다. 함종표는 이들을 극진히 모시면서 미신에 빠지는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고 신학문을 공부한 뒤 판사가 되어 사악한 무리를 징계해 나간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2. 작품 해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08년 &amp;lt;대한서림&amp;gt; 발간. 당시의 암흑사회를 풍자하고 무당의 허위성을 폭로하여 미신타파를 강조한 작품이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하여 당시의 미신이 만연한 사회를 풍자하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 했으며, 특히 작중의 종친회의 묘사를 통해 민주 의식을 깨우치고자 했다. 작자는 이 작품에서 몽매한 부녀자들이 미신에 현혹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제시하는 동시에 그 비합리성과 부당성을 지적, 설득한다. 또한 신학문을 공부하고 미신을 비판적으로 보는 대조적인 인물을 설정하여 종래의 병폐였던 미신숭배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특히, 다른 신소설들처럼 근대적 의식이 표면에만 부분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미신에 침혹되는 과정과 그 비과학성이 핵심적인 내용을 이루고 있어 미신타파라는 계몽성과 근대적 주제의식이 잘 형상화된 작품으로 평가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화의 혈&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 줄거리&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전라도 장성의 호방을 지낸 최씨는 퇴기 춘흥이와의 사이에서 선초와 모란이라는 두 딸을 두었다. 큰딸인 선초는 매우 아름다운 모습을 가졌다. 그러나 퇴기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기적에 그 이름이 올라 있다. 그러나 그녀는 행실이 곧고 마음이 단단하였다.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겨 모여드는 뭇 사내들을 물리치면서 그녀는 장차 일부종사하기로 마음을 굳힌다. 선초의 아름다운 모습과 곧은 마음가짐에 대한 소문은 멀리 서울에까지 퍼진다. 당시 서울에는 제 잘난 체하고 호색으로 이름이 난 이 도사가 있었다. 그녀의 소문을 들은 이 도사는 곧 음심이 동한다. 마침 나라에서는 동학당의 난리로 인해 전라도 지방의 소요를 골칫거리로 여기고 있던 터였다. 이 도사는 고관들에게 손을 써서 암행 어사격인 시찰사가 되어 장성 고을을 목표로 전라도 지방 시찰에 나선다. 이 고을 저 고을을 돌보는 체하면서 부정을 덮어 주고 그 대가로 뇌물을 받아 챙긴다. 반면에 자기의 눈에 거슬리는 자들은 가차 없이 동학도의 누명을 뒤집어씌워 처단해 버린다. 장성 고을에 도착한 이 도사는 선초를 손에 넣으려다 실패하자, 이 도사는 선초의 아버지 최 호방을 묶어 들인다. 일이 이렇게 되자 선초는 눈물을 머금고, 부친을 놓아줄 것과 정식으로 결혼하여 정실부인으로 자기를 맞이할 것을 조건으로 이 도사의 요구에 응하기로 한다. 선초는 이 도사에게 계약서를 쓰게 하고 첫날밤을 보낸다. 그러나 하룻밤을 지내고 나자 이 도사는 도장을 찍어 주겠다고 속여 계약서를 도로 가져가 버린다. 그 후 이 도사는 선초에게 10원짜리 지폐와 함께 절연장을 보내온다. 배신당한 선초는 다량의 아편을 목고 죽어 버린다. 선초가 죽자 장성 고을에 가뭄이 든다. 또한 그녀는 이 도사에게 밤마다 원귀가 되어 나타난다. 이에 장성 고을에서는 제사를 지내기로 하고 이 도사도 제사에 참여하여 술잔을 올린다. 그러자 다시 폭우가 쏟아지고 이 도사는 법부에 잡혀간다. 한편, 선초의 동생 모란이도 언니 못지않은 미인으로 장성한다. 그녀는 자라면서 언니의 복수를 곧게 맹세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이 도사는 3년의 형을 마친 후 다시 벼슬자리를 노려 국내외 고관들이 모인 자리에 참석한다. 거기에서 그는 미모의 기생 모란을 보고 접근한다. 모란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의 과거를 폭로한다. 그리하여 이 도사의 출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게 되고 끝내는 비럭질에 나서게 된다. 어느 날 좋은 사람을 만나 살림 차리고 잘 사는 모란의 집에 구걸을 하다가 모란에게 크게 창피를 당하고 쫓겨난다.&amp;nbsp;&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2. 작품해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11년 4월 6일부터 6월 21일까지 66회에 걸쳐 &amp;lt;&amp;lt;매일신보&amp;gt;&amp;gt;에 연재, 1912년에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동학농민운동을 배경으로 하여 기생 선초의 절개와 이에 대한 벼슬아치의 횡포, 당시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폭로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인 기생 선초의 효와 정절을 일차적인 주제로 내세우고, 여기에 동학란을 전후한 시기의 부패한 관료들의 이면상을 이 시찰이라는 인물을 통하여 폭로한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 작품은 효와 열의 강조와 악인의 징계 등 다른 신소설들에 비하여 특별히 참신한 점은 볼 수 없다. 그러나 동학란을 통한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고 작자의 소설관이 드러나 있어 새로운 의식을 보여준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를 가진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또한 이 소설은 근대문학 최초로 소설의 허구성을 자각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는다. 이해조는 신소설 작가 가운데서도 소설에 관한 한 소박한 견해를 지닌 작가였다. 그의 소설관은 이론적인 체계는 비록 갖추어지지 않았지만 그의 소설 &amp;lt;자유종&amp;gt;, &amp;lt;화의 혈&amp;gt;, &amp;lt;탄금대&amp;gt; 등에서 간략히 피력하고 있다. 그는 &amp;lt;화의 혈&amp;gt; 끝부분에서 &quot;소설은 매양 빙공착영(허공에 기대어 그림자 잡기)으로 실정에 맞도록 편집하여 풍속을 교정하고 사회를 경성하는 것이 제일 목적이다&quot;라고 하여 소설의 허구성에 대한 뚜렷한 의식과 견해를 보여 준다.&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원앙도&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 줄거리&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양덕군을 다스리는 민군수는 조감사가 새로 평양 감사로 부임해 오자 전전긍긍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두 집안의 선대에 혐의진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군수에게는 열한 살밖에 안 되었지만 지모가 아주 뛰어난 말불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 말불이가 술수로써 조 감사의 병부를 훔쳐와 아버지에게 가해질 화를 면하게 하고 오히려 조 감사를 곯린다. 한편, 조 감사에게는 열 살 난 딸 금쥐가 있었는데 그녀 또한 말불에 못지않은 기녀라, 금쥐도 계략을 써서 잃었던 조 감사의 병부를 되찾게 만든다. 이렇듯 재자와 기녀의 지혜는 이루 측량할 수 없어 막상 막하로 겨루다가 끝내는 양가의 오래된 혐의를 해소시키고 두 사람도 백년가약을 맺게 된다. 이상이 &amp;lt;원앙도&amp;gt;의 전반부에 해당되며 후반부는 다음과 같다. 조 감사의 아우는 정부를 개혁하려다 붙들려 참변을 당하고 조 감사도 연루되어 잡혀 가게 된다. 금쥐는 안경지가 해주로 데려가서 보호한다. 그런데 안경지가 출타한 사이에 안경지의 아내가 금쥐를 해주 본관에 팔아먹는다. 그러나 금쥐는 조 감사와 막역지간인 해주 본관의 보호를 받게 된다. 이렇게 만난을 극복한 금쥐는 말불과 결혼, 출옥한 조 감사오 ㅏ더불어 세 사람은 해외로 떠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2. 작품해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 작품은 1911년 12월 30일 &amp;lt;보급서관&amp;gt;과 &amp;lt;동양서원&amp;gt;에서 발간된 개화기 신소설이다. 이 작품의 중심 구조는 말불이라는 민 군수의 아들과 금쥐라는 조 감사의 딸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다. 그러나 이들은 만난을 극복하고 화해를 이루며 갈등을 해소한다는 해피엔딩의 결말을 보인다. 전반부의 말불과 금쥐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갈등 해소로 인한 백년가약, 후반부의 파란 만장한 사건 전개 끝에 주인공들을 해외로 출국시킴으로써 사건의 대단원을 맺는 양대 구조를 지닌 작품이다. 따라서 &amp;lt;원앙도&amp;gt;는 소설의 갈등 구조가 다른 개화기 작품들에 비해 뚜렷하고 개연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 밖에도 이 작품은 개화기의 시대적 사회상을 반영한다든지 정치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 인신매매, 관리들의 부패상 등을 깊이 있게 다툼으로써 당대의 사회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춘외춘&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 줄거리&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서울의 개진여학교에 재학 중인 한영진은 재능과 미모를 겸비한 여자였다. 그러나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밑에서 심한 구박을 받으며 성장하였기 때문에 명랑한 기분을 지닐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영진이 앓게 되자, 계모는 요양을 보내는 척하여 그녀를 호춘식이라는 색주가 주인에게 팔아먹는다. 나중에 그 흉계를 알게 된 영진은 자살하려다가, 그녀를 찾아 나선 유모에 의하여 구출되고, 그 집을 도망쳐서 오 부인댁에 은신하게 된다. 거기에서 동경으로 유학가 있는 오 부인의 아들 강학수를 통하여 여학교 때 자신을 아껴주던 일본인 여교사 하나타와 연락이 닿게 된다. 얼마 뒤 영진은 하나타의 주선으로 일본에 유학하게 되고, 거기에서 만난 강학수와 사랑을 하게 된다. 어느 날 흉몽 때문에 급히 귀국한 학수는 영진을 찾으려고 행패를 부리는 호춘식 일당을 재판소로 넘기고, 영진의 아버지에게 결혼 승낙을 얻은 뒤 동경으로 다시 돌아가며, 오 부인은 그들의 성례를 기다린다.&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2. 작품해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12년 1월 1일부터 3월 14일까지 58회에 걸쳐 &amp;lt;매일신보&amp;gt;에 이열재라는 필명으로 연재하였다. 계모로 인한 가정불화를 소재로 신교육사상을 보여준 작품이나, 재래 소설의 계모형이 개재된 가정소설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 작품은 신교육 사상의 고취를 비롯한 개화사조 및 계몽성에 주제의 초점을 두고는 있으나, 계모형 소설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체로 후처를 거느리고 사는 남편은 천품이 무능하거나 마누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외처증 인간으로 유형화되는 것이 계모형 고대소설이나 신소설의 보편적 특징이다. 또한 이러한 무능한 남편과는 반대로 반드시 간악한 후처가 배필로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영진 아버지와 계모도 바로 이러한 유형이다. 이는 환경적인 여건을 비롯한 사건의 진전이 계모로 하여금 전처 소생의 자식을 구박하지 않을 수 없는 필연성에 의거하게 하기보다는, 계모라면 덮어놓고 악독한 인간이고 간교를 써서 전처 자식을 못살게 군다는 통례적인 작자의 선입관이 그대로 작품에 작용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개화기의 진취적인 시대상을 반영하면서도 역시 이러한 전래적인 소설의 타성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던 예에 속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비파성&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 줄거리&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서울 다방골에 사는 김의관의 외아들 영록과 이웃에 사는 서 주사의 외딸 연희는 양가의 합의로 정혼한다. 일본인 고목 변호사의 사무를 돕는 서 주사는 송사 관계로 부산에 나려가는데 우연히 황공삼의 집에 유숙하게 된다. 전에 서울에 살아서 연희를 기억하고 있는 황공삼은 딴마음을 품고 몰래 서주사의 필적을 모방하여 서울의 서주사 집으로 편지하기를, 딸 연희의 혼약을 파하고 황공삼과 성례 하도록 하라고 이른다. 서주사의 어머니와 부인은 그렇지 않아도 점쟁이 말에 현혹되어 자녀의 정혼을 마땅하지 않게 생각하던 참이라 김의관에게 퇴혼을 통고하고 황공삼을 맞이할 준비를 서두른다. 연희는 사세가 불리함을 깨닫고 자살을 하려다가 영록으로 인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열록과 더불어 가출한다. 다행히 영록의 고모의 보호를 받으며 성례를 하여 내외가 되나 행패를 일삼는 황공삼의 추적을 피하던 끝에 그들은 강에서 사경을 겪다가 서주사에게 구사일생으로 구출된다. 한편 황공삼은 김의관을 죽이고 자기가 부리는 하인 노파마저 사지에 몰아넣은 다음 멀리 잠적해 버리는데, 영록과 연희는 복수를 맹세하고 제각기 황공삼을 찾아 떠난다. 쫓거니 쫓기거니 하면서 진남포 방면에 이른 이들은 권모와 은혜와 원한이 뒤바뀌면서 풍파를 겪다가 마침내 숙원을 이룬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2. 작품해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해조가 해관자라는 필명으로 1912년 11월 29일부터 1913년 2월 22일까지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amp;lt;매일신보&amp;gt;에 64회에 걸쳐 연재한 신문소설이다. 1913년 10월 &amp;lt;신구서림&amp;gt;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갖은 역경과 고난을 겪은 끝에 원수를 갚고 사랑을 쟁취하는 두 청춘남녀를 통해 권선징악을 강조한 소설인데, 사건의 기복이나 우연성의 활용 등이 비교적 자연스러워 당시의 신소설 가운데 형식면에서 드물게 성공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한편 이 소설은 신파극단 &amp;lt;유일단&amp;gt;에서 연극으로 각색하여 공연하였다고도 하는데, 공연날짜(1912년 11월 22일)가 신문 연재에 앞선 것으로 보아 별개의 작품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amp;lt;유일단&amp;gt;에서 공연한 신파극 &amp;lt;비파성&amp;gt;은 일본 소설 &amp;lt;비파가&amp;gt;를 번안하였을 가능성이 높으며, &amp;lt;비파가&amp;gt;는 이해조의 소설과는 전혀 내용이 다른 작품이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주인공의 설정을 선과 악으로 대립시킨 이 작품은 권선징악을 주제로 한 소설이며, 애정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흥미 위주로 사건을 전개한 통속물로 평가된다. 이해조의 후기 작품 특징의 하나인 친일적 성향이 이 소설에도 드러나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참고&amp;nbsp;문헌&lt;br /&gt;고명철&amp;nbsp;/&amp;nbsp;근대전환기&amp;nbsp;지식인으로서&amp;nbsp;이해조의&amp;nbsp;현실인식&amp;nbsp;/&amp;nbsp;경기문화재단&amp;nbsp;/&amp;nbsp;한울&amp;nbsp;/&amp;nbsp;2006&lt;br /&gt;이인직&amp;nbsp;/&amp;nbsp;소설100인&amp;nbsp;100선&amp;nbsp;1권&amp;nbsp;/&amp;nbsp;일송미디어&amp;nbsp;/&amp;nbsp;2006&lt;br /&gt;조동일&amp;nbsp;/&amp;nbsp;한국문학통사&amp;nbsp;/&amp;nbsp;지기 산업사&amp;nbsp;/&amp;nbsp;2005&lt;br /&gt;김윤식&amp;nbsp;외&amp;nbsp;/&amp;nbsp;한국현대문학사&amp;nbsp;/&amp;nbsp;현대문학&amp;nbsp;/&amp;nbsp;2008&lt;br /&gt;가미야&amp;nbsp;미호&amp;nbsp;/&amp;nbsp;이해조의&amp;nbsp;&amp;lt;자유종&amp;gt;연구&amp;nbsp;:&amp;nbsp;계몽주의&amp;nbsp;작가로서의&amp;nbsp;근대의식을&amp;nbsp;중심으로&amp;nbsp;/&amp;nbsp;한국외국어대학원&amp;nbsp;석사&amp;nbsp;/&amp;nbsp;2004&lt;br /&gt;김종윤&amp;nbsp;/&amp;nbsp;&amp;lt;자유종&amp;gt;소고&amp;nbsp;/&amp;nbsp;육사논문집 29&amp;nbsp;/&amp;nbsp;1985&lt;br /&gt;김택중&amp;nbsp;/&amp;nbsp;이해조&amp;nbsp;소설에&amp;nbsp;나타난&amp;nbsp;계몽의식&amp;nbsp;연구&amp;nbsp;:&amp;nbsp;&amp;lt;자유종&amp;gt;을&amp;nbsp;중심으로&amp;nbsp;/&amp;nbsp;대전어문학 13집&amp;nbsp;/&amp;nbsp;1996&lt;br /&gt;고명학&amp;nbsp;/&amp;nbsp;이해조&amp;nbsp;소설의&amp;nbsp;공간구조&amp;nbsp;/&amp;nbsp;인천어문학16&amp;nbsp;/&amp;nbsp;2000&lt;br /&gt;신춘자&amp;nbsp;/&amp;nbsp;여성의&amp;nbsp;토론과&amp;nbsp;사회현실의&amp;nbsp;수용&amp;nbsp;:&amp;nbsp;토론소설&amp;nbsp;&amp;lt;자유종&amp;gt;을&amp;nbsp;중심으로&amp;nbsp;/&amp;nbsp;여성문제연구 16&amp;nbsp;/&amp;nbsp;1988&lt;br /&gt;오현주&amp;nbsp;/&amp;nbsp;개화기&amp;nbsp;소설의&amp;nbsp;현실&amp;nbsp;대응&amp;nbsp;방식&amp;nbsp;연구&amp;nbsp;/&amp;nbsp;연세대&amp;nbsp;대학원&amp;nbsp;석사&amp;nbsp;/&amp;nbsp;1987&lt;br /&gt;전기철&amp;nbsp;/&amp;nbsp;개화기&amp;nbsp;논설,&amp;nbsp;토론의&amp;nbsp;문학화&amp;nbsp;&amp;lt;자유종&amp;gt;을&amp;nbsp;중심으로&amp;nbsp;/&amp;nbsp;숭의여자전문대학&amp;nbsp;/&amp;nbsp;1990&lt;br /&gt;강준철&amp;nbsp;/&amp;nbsp;몽배금태조&amp;nbsp;연구&amp;nbsp;/&amp;nbsp;한국어문교육학회&amp;nbsp;/&amp;nbsp;2002&lt;/p&gt;</description>
      <author>돈많은한량이꿈</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sora-2878.tistory.com/39</guid>
      <comments>https://sora-2878.tistory.com/entry/%EC%9D%B4%ED%95%B4%EC%A1%B0-%EA%B7%B8-%EB%B0%96%EC%9D%98-%EC%9E%91%ED%92%88%EB%93%A4#entry39comment</comments>
      <pubDate>Wed, 26 Jul 2023 20:21:00 +0900</pubDate>
    </item>
    <item>
      <title>이해조 &amp;lt;자유종&amp;gt;</title>
      <link>https://sora-2878.tistory.com/entry/%EC%9D%B4%ED%95%B4%EC%A1%B0-%EC%9E%90%EC%9C%A0%EC%A2%85</link>
      <description>&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작품명의 의미&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자유종&amp;gt;은 토론소설의 대표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amp;lt;금수회의록&amp;gt;, &amp;lt;경세종&amp;gt;은 우화류로서 동물의 토론 형식으로 되어 있고 &amp;lt;몽견제갈량&amp;gt;, &amp;lt;몽배금태조&amp;gt;는 몽유록계로 되어 있어 현실적이기보다는 일단 비현실성을 띠고 있다. 이들에 비해 &amp;lt;자유종&amp;gt;은 토론의 주체가 우선 인간이며 매우 현실적이다. 물론 후반부의 꿈 이야기는 몽유록계와 유사하나 그것도 현실적 희망을 피력한다는 점에서 그 성격이 다르다. 그렇다면 &amp;lt;자유종&amp;gt;은 어떤 의미일까?&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blockquote data-ke-style=&quot;style3&quot;&gt;&amp;nbsp; 장하다 여자 보학원이여 사천년 동방에 듣지 못하던 여자 교육을 실시하여 학교를 세워 학문을 가르치고 잡지를 발간하여 정신을 감동시켜 어둡고 적막한 저 여자 사회에 자유종 한 소리로 일천만 자매의 깊은 꿈을 깨우니 몇 천 년 금고중에 있던 여자들의 몸이 자유로 활동하여 문명한 새 공기를 먹는도다.&lt;/blockquot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윗글은 &amp;lt;자유종&amp;gt;이 간행되기 2년 전인 1908년 4월에 한국 최초의 월간지로서 발간된 &amp;lt;여자지남&amp;gt; 제1권 제1호에 실린 축사의 한 구절이다. 소설 &amp;lt;자유종&amp;gt;도 결국은 &quot;어둡고 적막한 저 여자 사회에 자유종 한 소리로 일천만 자매의 깊은 꿈을 깨우는&quot;데에 있었음을 감안할 때 이해조의 &amp;lt;자유종&amp;gt;이 1910년에 간행되었다 하더라도 등장인물 강금운 부인의 '작일은 융희 이년 제일 상원이니'라고 한 말로 미루어 창작 년도를 융희 2년인 1908년으로 볼 수 있다. 이점에서 1908년에 창작된 것이 사실이라면 1908년 4월에 발간된 &amp;lt;여자지남&amp;gt;과의 관계는 우연치 않게 같은 주장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줄거리&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 작품의 배경은 1908년 음력 1월 16일 밤 이매경 부인의 집이다. 이매경 부인의 생일잔치에 초대된 신설헌, 홍국란, 강금운 네 사람 가운데 신설헌 부인이 사회격으로 제일 먼저 토론회를 제의한 다음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녀는 먼저 구시대의 유습인 여성의 인종과 예속이 타파되어야 한다고 전제한다. 그리고는 여성 역시 새 시대의 의미, 국가와 민족의 앞날에 대해서 새악하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신설헌 부인의 말로 토론은 시작된다. 그리고 그 내용은 여권문제와 교육을 통한 개화, 계몽, 국가 사회의 부강, 자주채그 미신 및 계급, 지방색타파에 등에 미친다. 먼저 여권 문제에 대해서는 남자가 절대 지배권을 행사하는 우리 사회의 폐습이 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와 동시에 교육, 계몽이 부국강병과 새 사회 건설의 필수 요건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조상 숭배나 윤리, 도덕 정신을 양양하는 제사나 관혼 등 길사라 오로지 형식에 치우치고 있는 폐단도 시정해야 한다고 열렬이 주장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한편 이 작품에서는 2세 국민들의 교육에 대해서 진지한 의견들이 펼쳐진다. 여기에서는 지난날의 부모 우선주의가 철폐되어야 할 과제로 제기된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자녀 공물론이다. 다음으로 사회 개혁과 부국 강병의 실현을 위해서 거론된 것은 신분간의 문제점 해소와 계층 간의 난점 해소 방책 등이다. 여기에서는 우선 적서의 그릇된 인식과 차별의 폐지가 주장되었다. 그에 따르면 인재 등용은 국익에 비추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우리 사회가 부당하게 서북 출신을 백악시했던 풍조를 비판하고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바닥에 깔린 주제의식은 신설헌 부인이 제시하는 말로 총괄된다. 이매경 여사는 꿈 이야기를 빌어서 자신이 꿈꾸는 우리 사회의 이상적 건설 상태를 피력한다.&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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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등장인물&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 작품은 융희 2년 (1908) 음력 정월 18일 이매경이란 가정부인의 생일잔치에 초대받은 신설헌, 홍국란, 강금운 등 상류층 부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부녀의 해방, 한자 폐지, 계급과 지방 및 적서 차별의 타파, 자국정신, 평등 교육 등에 관하여 서로 진지하게 토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따라서 작품에는 소설서술의 첫째 요인인 지문이 거의 없고, 주인공들은 대화라기보다는 연설체 격으로 자기의 생각을 주장하여 옳고 그름을 토론한다. 작품 구조가 표면적으로는 이매경이란 부인의 생일잔치에 모여 부인들이 토론을 벌이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내용상, 성격상으로는 일종의 부인화의 회원들이 모여 토론회를 개최하고 여기에 참가하여 토론을 벌이는 연사와 그 토론을 듣고 찬동하는 청중으로 구성되어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 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gt;이매경 : 생일잔치의 주인공으로, 토론에서 조선의 여자를 &quot;다만 가장의 비위만 맞춰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니 전소위 밥 먹는 안석이요, 옷 입은 퇴침&quot;이라고 발언하여 여성의 권리와 의무를 자각하자고 주장한다. 또한 우리의 양반과 상놈의 계급문제를 언급, 한번 상놈이면 영원히 상놈으로 밖에 존재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을 타파하고 새롭게 인재를 등용하자는 계급의식을 주장한다&lt;/li&gt;
&lt;li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gt;강금운 : 강금운 부인은 토론에서 &quot;글이란 그 나라의 모든 정신을 실어 두는 말과 소와 같은 것인데 한자는 중국의 정신을 실어 두는데 지나지 않으며 또 배우기에 사나우므로 폐지해야 한다&quot;고 한자 폐지론을 주장한다. 이때 강금운 부인의 한자 폐지론은 우리의 자주성을 되찾는 것인 동시에 우리의 글인 한글의 일반화를 주장하는 것이다. 작품의 후반부에 어제가 상원일이었음을 언급하며 꿈꾼 것을 이야기하자고 주도한다.&lt;/li&gt;
&lt;li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gt;신설헌 : 신설헌 부인은 작품 서두 개화사에서 자신을 &quot;가련한 민족중의 한 몸&quot;이라 하고 &quot;오늘 우리나라는 어떠한 비참 지경이오?&quot;라고 반문하며 토론을 이끄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토론에서 &quot;우리나라에서도 제일 급한 것이 학문이요, 우리 여자 사회도 제일 급한 것이 학문인즉......&quot;라며 모든 사회현실이 여성교육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고 우리의 현실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를 여성교육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중국의 사대주의에 빠져 우리의 자주성을 획득하지 못한 결과 오늘에 이르렀다고 밝힌다.&lt;/li&gt;
&lt;li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gt;홍국란 : 홍국란 부인 또한 한자폐지론을 주장하는데 강금운 부인과 다르게 점진적인 폐지를 주장한다. 또한 적서차별 문제를 언급해 첩의 자식이 아무리 잘나고 특별하여도 그들을 인정해주지 않는 우리의 인습을 교정하자고 부르짖는다.&lt;/li&gt;
&lt;/ul&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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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주제의식&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자유종&amp;gt;의 주제의식은 작품 속에서 부인들이 토론하는 소주제들을 고찰해 보면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 토론의 소주제 -&amp;nbsp;&lt;/p&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 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gt;여권 신장&lt;/li&gt;
&lt;li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gt;여성교육의 중요성&lt;/li&gt;
&lt;li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gt;자녀 중심의 교육&lt;/li&gt;
&lt;li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gt;근대적 학문의 필요성&lt;/li&gt;
&lt;li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gt;종교, 교육제도의 비판&lt;/li&gt;
&lt;li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gt;적서차별 폐지&lt;/li&gt;
&lt;li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gt;반상 문제&lt;/li&gt;
&lt;li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gt;지방색 타파&lt;/li&gt;
&lt;li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gt;한자사용 비판&lt;/li&gt;
&lt;li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gt;고대소설 비판&lt;/li&gt;
&lt;li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gt;자주독립의 염원&lt;/li&gt;
&lt;/ul&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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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문학사적 의의&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해조는 &amp;lt;자유종&amp;gt;에서 국권회복운동과 근대적 국민의 위상 정립에서 여성의 주체적 입장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특히 여성의 권리 신장을 통한 국력의 확대, 신분 차별에 대한 반대, 적서차별에 대한 반대, 지역차별에 대한 반대와 같은 &amp;lt;자유종&amp;gt;의 주장은 인간권리 확보에 대한 이해조의 전향적 신념의 구체적 표현이었던 것이다. 자유와 평등의 이념이 사회 각 부분에 삼투되지 않고서는 각 개인이 국민적 작가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통찰이다. 말하자면 이해조는 그의 신소설에서 근대적 개인으로서 국민적 자각이라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해조의 신소설에서는 근대적 풍속의 구체적 실상이 드러나고 있으며, 근대적 이성의 계몽주의로써 자유와 평등을 통한 근대적 개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이 근대적 개인의 창출은 ㄱ느대적 제도에 기반한 국민국가에 대한 인식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또한 그의 논설과 마찬가지로 애국계몽기에 작가 이해조가 받아들인 개화사상과 현실인식 태도를 작품 속에 직접적으로 드러내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깊다. 즉, 토론체 형식을 채택함으로써 작가가 주장하는 바를 문학적 굴곡 없이 직접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라 하겠다. 그러나 오히려 논설문들에 비해 유토피아적 성격을 강하게 도출시켰으며, 그의 다른 소설작품인 가정소설 유형의 소설에 비해 비교적 비판적 성격을 강하게 드러냈다. 이는 그가 애국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교육을 통한 자강론을 주장했다는 사실과도 직접 연결되는 것으로 자신의 입장을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던 &amp;lt;자유종&amp;gt;을 통해 그가 전개한 운동의 일면모를 보여주었다 하겠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리고 꿈 이야기 부분은 우화화되어 씌어짐으로써 작품 앞부분 토론 내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앞부분이 수다스럽게 주제가 옮겨가는 데 비해 뒷부분에서는 개개의 이야기가 꿈의 주제에 맞추어서 정리되어 있다. 이는 토론 부분과 분리시켜서 꿈이란 장치를 사용하고, 자신의 견해를 한층 돋보이게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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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한계점&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 주제분석을 통해 본 개화의식의 피상성&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1) 현실인식의 피상성&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blockquote data-ke-style=&quot;style3&quot;&gt;&amp;nbsp; 나는 옛날 태평시대에 숙부인까지 바쳤더니 지금은 가련한 민족 중의 한 몸이 된 신설헌이 올시다.&lt;br /&gt;&amp;nbsp; 이같은 수참하고 통곡할 시대......&lt;/blockquot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위를 보면 과거를 편안한 태평시대로 인식하고 있는 반면 현재는 가련하고 비참한, '수참하고 통곡할 시대'로 인식하고 있다. 봉건적 질곡으로부터의 해방을 부르짖으며 등장한 신소설이 과거를 태평시대로 운운한다는 것은 역사인식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비극적 현실에 대한 구체적 통찰 없이 '통곡할 시대'라 한다는 것은 이해조의 개화의식이 한갓 역사의식 없는 지식인의 넋두리 같은 것임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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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2) 여성해방론의 허구성&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자유종&amp;gt;의 전체적 주제는 여성해방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남성에 대한 폭군적 인식은 남성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되지 못한다. 또한 전통사회 속의 여자는 봉건적 유교적 윤리관에 부당하게 얽매여 있기 때문에 무지하여 아무런 능력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맹자나 구양수, 이퇴계의 어머니의 훌륭함을 인용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3) 자국정신 교육에 대한 모순된 논리&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중국 서적의 교육으로 인한 폐해나 한문의 폐해, 유교적 윤리관 등을 신랄히 비판하면서도 공자에 대한 예찬론이 등장하는가 하면, 자녀 교육을 거론하면서 예기와 소학을 인용하는 것은 뚜렷한 주관 없는 자국정신교육의 강조에 대한 모순된 논리라 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blockquote data-ke-style=&quot;style3&quot;&gt;&amp;nbsp;말할진대 춘향전은 음탕교과서요, 심청전은 처량교과서요, 홍길동전은 허황교과서라 할 것이니......&lt;/blockquot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또한 위에서 보듯 민족문학을 지나칠 정도로 과소평가하고 있다. 이런 민족문학의 가치를 평가하기 이전에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작가의 민족의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를 반증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4) 독립사상의 허구성&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작품의 결말 부분에서 네 부인은 차례대로 꿈 이야기를 한다. 이는 여성해방이라는 표면적 주제 속에 암암리에 조선의 자주독립이라는 참 주제를 드러내고자 한 작가의 의도라고도 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blockquote data-ke-style=&quot;style3&quot;&gt;&amp;nbsp;일본학교 교과서를 보시오. 소학교 교과하는 것은 당초에 대한이라 청국이라는 말도 없이 다만 자국 인물이 어떠하고 자국 지리가 어떠하다 하여 자국정신이 굳은 후에 비로소 만국 역사와 만국 지리를 가르치니, 그런고로 무론 남녀하고 자국의 보통 지식 없는 자 없어 오늘날 저러한 큰 세력을 얻어 나라의 영광을 내었소.&lt;/blockquot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러나 위처럼 일본에 대한 찬양은 그가 당대의 역사적 상황을 얼마나 잘못 파악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역사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사상은 불굴의 신념 같은 것이 되지 못했으며, 실천적 지성으로 행동화 될 수 없는 허구적인 것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작품의 결말도 한갓 꿈속에서의 자주독립이라는 근거 없는 희망으로 마무리되고 있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5) 자녀공물론의 허구성&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자유종&amp;gt;에 드러난 자녀교육론의 핵심은 바로 자녀공물론이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blockquote data-ke-style=&quot;style3&quot;&gt;&amp;nbsp; 증자 말씀에 인군을 잘못 섬겨도 효가 아니요, 전장에 용맹이 없어도 효가 아니라 하셨으니 이 말씀을 생각하면 자식이라는 것이 내 몸만 위하여 난 것이 아니오, 실로 나라를 위하여 생긴 것이니 자식을 공물이라 하여도 합당하오.&lt;/blockquot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본능적인 것이기에 이해태산이 앞설 수 없다. 자신의 여덟 아들이 전쟁에서 모두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 춤춘 사파달 노인의 이야기는 현실성 없는 위선과 과장의 몸짓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자녀를 공물로 키워야 한다는 논리는 허구적인 것이라 볼 수 있다.&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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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6) 극단적인 자기 비하 의식&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blockquote data-ke-style=&quot;style3&quot;&gt;&amp;nbsp; 지금은 가련한 민족 중의 한 몸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래 무식하였으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식의 진리를 몇이나 알겠소?&lt;/blockquot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자유종&amp;gt;에서 작품 전체를 통해 가장 심각히 제기되는 문제는 부인들의 말속에 내포된 극도의 자기 비하이다. 극도의 자기 비하는 창조적 발전보다 자포자기의 상태로 떨어지기 싶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자유종의 장르 인식&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자유종&amp;gt;은 그 양식적 측면에 있어서 논쟁의 소지를 많이 지니고 있다. 임화의 경우 '정치소설'로 보고 있고, 표지 상단에 찍힌 대로 '토론소설'로 보자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자유종이 소설로서 갖추어야 할 형식을 갖추지 못했다고 하여 시사토론문으로 보거나, 희곡적 요소가 많다고 하여 희곡으로 다루자는 견해도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 자유종을 소설 장르로 긍정하고 있는 사람들의 견해 -&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자유종&amp;gt;은 그 본문 서두에 '토론소설'이라고 씌여있는 것처럼 어떤 부인의 생일잔치에 모인 부인들이 주고받는 토론사의 연설로 된 작품이다. 작품의 시간적인 경과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이고 전편이 거의 대화로 일관되는 점으로 보아 단막물 희곡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무대와의 연관성이 전혀 없으므로 그렇게 볼 수 없으므로 신소설 중에는 좀 특이한 형식을 가진 작품이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소설 플롯 전개가 불충분하여 이를 소설이라 칭할 수 있느냐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스토리의 변화 전개가 꼭 소설구성의 절대요반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 작품들은 그 대화를 통한 서술성 만으로써 소설의 범위에 넣을 수 있으므로 소설로 보고자 한다.&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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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 자유종을 소설 장르로 분류하는 것을 부정하고 있는 사람들의 견해 -&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토론소설이라는 딱지가 붙었지만 대화중심의 작품이나 소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개화문답서 내지 문답식 신사상계몽지도서라고 하는 것이 이 작품에 대한 훨씬 더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또한 서술이 없는 장황한 연설조의 전개 방법 때문에 소설적 가치가 없다. 그리고 &amp;lt;자유종&amp;gt;에는 엄밀한 의미에서 소설로 갖추어야 할 모든 조건이 무시되어 있다. 토론을 벌이는 여성 주인공들의 인물설정과 장면의 설정 이외에는 소설적인 요소가 없으며, 신문학과 여성 문제에 대한 정론적인 주장이 토론의 전체적인 내용을 이루고 있을 뿐이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소설은 배경, 인물, 플롯, 주제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amp;lt;자유종&amp;gt;은 등장인물의 성격창조에도 무관심하다. 신설헌, 이매경, 홍국란, 강금운 등의 부인이 등장하기는 하나 무성격의 동일 인물들이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또한 플롯이 없다. 토론회에 등장하는 네 부인이 무질서하게 자신의 의견을 토로하고 있을 뿐, 뚜렷한 인과관계가 없는 논리의 급전이 빈번하다. 그러므로 자유종은 소설장르로 취급할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특수성에 의해 제작된 과도기적, 기형적 작품군으로 다루어야 할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참고&amp;nbsp;문헌&lt;br /&gt;고명철&amp;nbsp;/&amp;nbsp;근대전환기&amp;nbsp;지식인으로서&amp;nbsp;이해조의&amp;nbsp;현실인식&amp;nbsp;/&amp;nbsp;경기문화재단&amp;nbsp;/&amp;nbsp;한울&amp;nbsp;/&amp;nbsp;2006&lt;br /&gt;이인직&amp;nbsp;/&amp;nbsp;소설 100인&amp;nbsp;100선&amp;nbsp;1권&amp;nbsp;/&amp;nbsp;일송미디어&amp;nbsp;/&amp;nbsp;2006&lt;br /&gt;조동일&amp;nbsp;/&amp;nbsp;한국문학통사&amp;nbsp;/&amp;nbsp;지기 산업사&amp;nbsp;/&amp;nbsp;2005&lt;br /&gt;김윤식&amp;nbsp;외&amp;nbsp;/&amp;nbsp;한국현대문학사&amp;nbsp;/&amp;nbsp;현대문학&amp;nbsp;/&amp;nbsp;2008&lt;br /&gt;가미야&amp;nbsp;미호&amp;nbsp;/&amp;nbsp;이해조의&amp;nbsp;&amp;lt;자유종&amp;gt; 연구&amp;nbsp;:&amp;nbsp;계몽주의&amp;nbsp;작가로서의&amp;nbsp;근대의식을&amp;nbsp;중심으로&amp;nbsp;/&amp;nbsp;한국외국어대학원&amp;nbsp;석사&amp;nbsp;/&amp;nbsp;2004&lt;br /&gt;김종윤&amp;nbsp;/&amp;nbsp;&amp;lt;자유종&amp;gt; 소고&amp;nbsp;/&amp;nbsp;육사논문집 29&amp;nbsp;/&amp;nbsp;1985&lt;br /&gt;김택중&amp;nbsp;/&amp;nbsp;이해조&amp;nbsp;소설에&amp;nbsp;나타난&amp;nbsp;계몽의식&amp;nbsp;연구&amp;nbsp;:&amp;nbsp;&amp;lt;자유종&amp;gt;을&amp;nbsp;중심으로&amp;nbsp;/&amp;nbsp;대전어문학 13집&amp;nbsp;/&amp;nbsp;1996&lt;br /&gt;고명학&amp;nbsp;/&amp;nbsp;이해조&amp;nbsp;소설의&amp;nbsp;공간구조&amp;nbsp;/&amp;nbsp;인천어문학 16&amp;nbsp;/&amp;nbsp;2000&lt;br /&gt;신춘자&amp;nbsp;/&amp;nbsp;여성의&amp;nbsp;토론과&amp;nbsp;사회현실의&amp;nbsp;수용&amp;nbsp;:&amp;nbsp;토론소설&amp;nbsp;&amp;lt;자유종&amp;gt;을&amp;nbsp;중심으로&amp;nbsp;/&amp;nbsp;여성문제연구 16&amp;nbsp;/&amp;nbsp;1988&lt;br /&gt;오현주&amp;nbsp;/&amp;nbsp;개화기&amp;nbsp;소설의&amp;nbsp;현실&amp;nbsp;대응&amp;nbsp;방식&amp;nbsp;연구&amp;nbsp;/&amp;nbsp;연세대&amp;nbsp;대학원&amp;nbsp;석사&amp;nbsp;/&amp;nbsp;1987&lt;br /&gt;전기철&amp;nbsp;/&amp;nbsp;개화기&amp;nbsp;논설,&amp;nbsp;토론의&amp;nbsp;문학화&amp;nbsp;&amp;lt;자유종&amp;gt;을&amp;nbsp;중심으로&amp;nbsp;/&amp;nbsp;숭의여자전문대학&amp;nbsp;/&amp;nbsp;1990&lt;br /&gt;강준철&amp;nbsp;/&amp;nbsp;몽배금태조&amp;nbsp;연구&amp;nbsp;/&amp;nbsp;한국어문교육학회&amp;nbsp;/&amp;nbsp;2002&lt;/p&gt;</description>
      <author>돈많은한량이꿈</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sora-2878.tistory.com/38</guid>
      <comments>https://sora-2878.tistory.com/entry/%EC%9D%B4%ED%95%B4%EC%A1%B0-%EC%9E%90%EC%9C%A0%EC%A2%85#entry38comment</comments>
      <pubDate>Tue, 25 Jul 2023 16:47:50 +0900</pubDate>
    </item>
    <item>
      <title>작가 이해조</title>
      <link>https://sora-2878.tistory.com/entry/%EC%9E%91%EA%B0%80-%EC%9D%B4%ED%95%B4</link>
      <description>&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가족관계&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본관은 전주이고, 조선조 16대 인조의 3남 인평대군의 4자 복평군의 10대손으로서, 아버지 이철용과 어머니 청풍 김 씨 사이에 장남으로 1869년(고종 6년) 2월 27일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신평리 121번지에서 태어났다. 이해조의 조부인 이재만은 대원군의 참모였으며, 이해조의 부친인 이철용은 대원군 집정시절 참판을 지냈고, 이철용은 대원군에게서 신평리 일대를 하사 받아 지방의 토호로 자리하였다. 그러다가 대원군이 실각하고 민비가 집권한 이후 이재만은 처형당하고, 이철용은 경기 포천으로 귀양을 갔는데, 바로 그 포천에서 이해조가 태어난 것이다. 그는 근대전환기의 새로운 근대적 문물을 받아들이고, 근대적 계몽의식을 실현하기 위해 포천을 떠나서 서울로 이주한 후 대부분의 생애를 익선동(임낭골), 와룡동, 도렴동 등에서 살았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한학과 일본어에 뛰어남&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해조는 19세에 과거 초시에 급제하였고, 25~26세에는 '대동사문회'라는 한시를 즐기던 유학자들의 모임을 주관하면서 그 동호인들의 글을 모아 편집하는 것을 중요한 계기로 하여 문학의 길로 점차 들어서게 된다. 그의 이러한 한학 실력은 부친 이철용과 한학자였던 김윤식의 영향에서 비롯하였는데, 그가 &amp;lt;&amp;lt;소년한반도&amp;gt;&amp;gt;에서 백화체 한문소설 &amp;lt;잠상태&amp;gt;(1906.11~1907.04)를 연재한 데서도 알 수 있듯, 이해조의 문학적 자질은 이후 신소설의 왕성한 창작활동에서 빛을 더욱 발산한다. 한학 외에도 일본어를 독학으로 습득하여 &amp;lt;&amp;lt;철세계&amp;gt;&amp;gt; (1908) &amp;lt;&amp;lt;화성돈전&amp;gt;&amp;gt; (1908) &amp;lt;&amp;lt;누구의 죄&amp;gt;&amp;gt; (1913) 등과 같은 번역작품을 간행하기도 하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기자활동&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해조는 1898년 창간한 &amp;lt;&amp;lt;제국신문&amp;gt;&amp;gt;의 기자로 활동하였는데, 그의 소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lt;&amp;lt;고목화&amp;gt;&amp;gt; (1907.06.05~10.04)&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lt;&amp;lt;빈상설&amp;gt;&amp;gt; (1907.10.05~1908.02.12)&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lt;&amp;lt;구마검&amp;gt;&amp;gt; (1908.04.25~07.23)&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lt;&amp;lt;홍도화(상)&amp;gt;&amp;gt; (1908.07.24~09.17)&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lt;&amp;lt;모란병&amp;gt;&amp;gt; (1909.02.13~?) 등이 &amp;lt;&amp;lt;제국신문&amp;gt;&amp;gt;에 연재되었다. &amp;lt;&amp;lt;제국신문&amp;gt;&amp;gt;에서 기자 활동을 하던 이해조는 한일합방 직전 &amp;lt;&amp;lt;제국신문&amp;gt;&amp;gt;이 휴간에 들어선 후 &amp;lt;&amp;lt;황성신문&amp;gt;&amp;gt;과 &amp;lt;&amp;lt;매일신보&amp;gt;&amp;gt;의 편집부장 및 문화부 일을 맡으면서 일련의 신소설을 신문에 연재하였다. 대부분이 &amp;lt;&amp;lt;매일신보&amp;gt;&amp;gt;에 연재되었는데, 연재된 작품으로는&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lt;&amp;lt;화세계&amp;gt;&amp;gt; (1910.10.12~1911.11.17)&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lt;&amp;lt;월하기인&amp;gt;&amp;gt; (1911.01.18~04.05)&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lt;&amp;lt;화의 혈&amp;gt;&amp;gt; (1911.04.06~06.21)&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lt;&amp;lt;구의산&amp;gt;&amp;gt; (1911.06.22~09.28)&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lt;&amp;lt;소양정&amp;gt;&amp;gt; (1911.09.30~12.17)&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lt;&amp;lt;춘외춘&amp;gt;&amp;gt; (1912.01.01~03.14)&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lt;&amp;lt;옥중화&amp;gt;&amp;gt; (1912.01.01~03.16)&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lt;&amp;lt;탄금대&amp;gt;&amp;gt; (1912.03.15~05.01)&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lt;&amp;lt;강상련&amp;gt;&amp;gt; (1912.03.17~04.26)&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lt;&amp;lt;연의 각&amp;gt;&amp;gt; (1912.04.29~06.07)&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lt;&amp;lt;소학령&amp;gt;&amp;gt; (1912.06.09~07.11)&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lt;&amp;lt;토의 간&amp;gt;&amp;gt; (1912.06.09~07.11)&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lt;&amp;lt;봉선화&amp;gt;&amp;gt; (1912.07.07~11.29)&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lt;&amp;lt;비파성&amp;gt;&amp;gt; (1912.11.30~1913.02.23)&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lt;&amp;lt;우중행인&amp;gt;&amp;gt; (1913.02.25~05.11) 등이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단체활동&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 기호흥학회 : 이처럼 많은 신소설을 발표했던 이해조는 출판인으로서도 주목할 만한 활동을 하였다. 경기 출신인 이해조는 신채호, 안국선과 함께 기호흥학회(1908년 2월에 결성)에 가입하여 여기서 발간하는 &amp;lt;&amp;lt;기호흥학회월보&amp;gt;&amp;gt; 5호(1908.02.25)부터 12호(1909.07.25)까지 논설 &amp;lt;윤리학&amp;gt;을 연재하면서 자신의 근대적 계몽의식을 피력하였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2. 광무사 - 국채보상운동 : 이외에도 이해조는 애국계몽기의 지식인으로서 애국계몽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1908년 2월에 양기탁, 주시경, 이준, 노익형 등과 함께 광무사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amp;lt;&amp;lt;제국신문&amp;gt;&amp;gt;사에 임시사무소를 두고 국채보상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였던 것이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교육자로서의 면모&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해조는 신교육을 가르친 교육자로서 혹은 교육운동가로서의 면모도 보여주었다. 이해조의 부친 이철용이 포천에 신교육 기관으로서 사립학교인 '화약의숙'을 설립했고, 이해조는 이 '화야의숙'을 '청성제일학교'로 개명하여 운영하였다. 그런데 &amp;lt;&amp;lt;매일신보&amp;gt;&amp;gt; 1911년 9월 27일 자 기사에 의하면 &quot;이달 중에 포천군 사립 청성제일학교(전 화야의숙)는 동대문 외에서는 자못 우수한 학교이었으나 경영난과 군청에서 일 개 공립학교만 설치한다는 방침에 의해 폐교하였다&quot;하여 9월 30일 자로 폐교된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 당시 일제의 식민지 교육정책의 한 단면을 살필 수 있겠다. 이러한 교육에 대한 그의 관심은 1909년 7월 기호학교의 교감으로 취임했던 데서도 여실히 드러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판소리계 소설의 계승&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해조는 판소리계열의 소설을 신소설로 재구성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는데, 당대의 국악인(명창 박기홍, 심정순, 곽창기 등)들과 밀접한 만남을 통해서 신소설의 주요한 창작 모티브를 얻었다. &amp;lt;옥중화&amp;gt;, &amp;lt;강상련&amp;gt;, &amp;lt;토의 간&amp;gt;, &amp;lt;연의 각&amp;gt;이 각각 '춘향전, 심청전, 별주부전, 흥부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친일행적&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친일파의 노골적 행보를 걸었던 이인직(1862~1916)과 달리 이해조는 뚜렷한 친일 행적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1920년 친일유생단체인 '대동사문회'에 관여하면서 보수적 유생으로 퇴행하는 측면을 보인 것이라든지, 1921년 친일 유생단체 유도진흥회의 기관지 &amp;lt;&amp;lt;유도&amp;gt;&amp;gt; 창간호에 &amp;lt;온고이지신&amp;gt;이란 글을 발표한 것 등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 애국계몽기에 보였던 근대적 인식과 일제 침략이 노골화되면서 보인 그의 근대적 인식 사이의 편차에 대해서는, 좀더 보완된 전기적 고찰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최근 경기도 포천시 포천중문의과대학교 세미나실에서 이해조의 문학세계에 대한 특강에서 홍정선 인하대 교수는 &quot;이해조는 한일합방 후 애국적 지식인들이 취하던 국외망명, 은둔, 자결 등의 행동 대신 현실과 타협해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기자로 일하며 열심히 작품을 썼다&quot;며 &quot;이는 이해조가 문필활동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확인하던 사람이었기 때문&quot;이라고 말했다. 그는 &quot;이 시기에 그가 쓴 글 중 일본을 의도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있다면 사정은 달라지겠지만 그렇지 않은 한 생계의 차원에서, 혹은 발표지면의 확보를 위해 일한 것을 두고 친일파로 단정하는 것을 논리적 비약&quot;이라고 지적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소설관&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해조의 &amp;lt;화의 혈&amp;gt; (1911) 서두와 끝에는 소설에 관한 그의 생각이 다음과 같이 언급되고 있다.&lt;/p&gt;
&lt;blockquote data-ke-style=&quot;style3&quot;&gt;&amp;nbsp;&amp;nbsp;&lt;br /&gt;무릇 소설은 체제가 여러 가지라 한 가지 전례를 들어 말할 수 없으니 혹 정치를 언론한 자도 있고, 혹 정탐을 기록한 자도 있고, 혹 사회를 비평한 자도 있고, 혹 가정을 경계한 자도 있으며, 기타 윤리, 과학, 교제 등, 인성의 천차만사 중 관계 아니 되는 자가 없나니, 상쾌하고, 악착하고, 슬프고, 즐겁고, 위태하고, 우스운 것이 모두 다 좋은 재료가 되어 기자의 붓 끝을 따라 재미가 진진한 소설이 되나, 그러나 그 재료가 매양 옛 사람의 지나간 자취나 가탁의 형질 없는 것이 열이면 팔구는 되는데, ...... , 이제 또 그와 같은 현금 사람의 실적으로 &amp;lt;&amp;lt;화의 혈&amp;gt;&amp;gt; 이라 하는 소설을 새로 저술할 새, 허언낭설은 한 구절도 기록치 아니하고 정녕히 있는 일동일정을 일호 차작 없이 편집하노니, 기자의 재주가 민첩치 못하므로 문장의 광채는 황홀치 못할지언정 사실은 적확하여 눈으로 그 사람을 보고 귀로 그 사정을 듣는 듯하여 선악간 족히 밝은 거울이 될 만할까 하노라.&lt;br /&gt;&lt;br /&gt;&amp;nbsp; 기자 왈, 소설이라는 하는 것은 매양 빙공착영(허공에 의지해 그림자를 잡는다)으로 인정에 맞도록 편집하여 풍속을 교정하고 사회를 경성하는 것이 제일 목적인 중, 그와 방불한 사람과 방불한 사실이 있고 보면 애독하시는 열위, 부인, 신사의 진진한 재미가 일층 더할 거싱요, 그 사람이 회개하고 그 사실을 경계하는 좋은 영향도 없지 아니할지라. 고로 본 기자는 이 소설을 기록하며 스스로 그 재미와 그 영향이 있음을 바라고 또 바라노라.&lt;/blockquot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해조가 여기에서 말하는 '빙공착영'은 소설의 허구성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허구성에 대한 인식은 '방불한 사람과 방불한 사실'이 있어야만 '풍속 교정'과 '사회 경성'이라는 소설의 목적을 달성 할 수 있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사실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가 &amp;lt;자유종&amp;gt;을 통해서 &quot;춘향전은 음탕 교과서요 심청전을 처량 교과서요 홍길동전은 허황 교과서라&quot;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도 이러한 소설관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이다. 또한 소설의 사회계몽이라는 도덕적 기능과 오락적 기능에 대한 동시적 인식 등은 최초의 근대적인 문학관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참고&amp;nbsp;문헌&lt;br /&gt;고명철&amp;nbsp;/&amp;nbsp;근대전환기&amp;nbsp;지식인으로서&amp;nbsp;이해조의&amp;nbsp;현실인식&amp;nbsp;/&amp;nbsp;경기문화재단&amp;nbsp;/&amp;nbsp;한울&amp;nbsp;/&amp;nbsp;2006&lt;br /&gt;이인직&amp;nbsp;/&amp;nbsp;소설100인&amp;nbsp;100선&amp;nbsp;1권&amp;nbsp;/&amp;nbsp;일송미디어&amp;nbsp;/&amp;nbsp;2006&lt;br /&gt;조동일&amp;nbsp;/&amp;nbsp;한국문학통사&amp;nbsp;/&amp;nbsp;지기산업사&amp;nbsp;/&amp;nbsp;2005&lt;br /&gt;김윤식&amp;nbsp;외&amp;nbsp;/&amp;nbsp;한국현대문학사&amp;nbsp;/&amp;nbsp;현대문학&amp;nbsp;/&amp;nbsp;2008&lt;br /&gt;가미야&amp;nbsp;미호&amp;nbsp;/&amp;nbsp;이해조의&amp;nbsp;&amp;lt;자유종&amp;gt;연구&amp;nbsp;:&amp;nbsp;계몽주의&amp;nbsp;작가로서의&amp;nbsp;근대의식을&amp;nbsp;중심으로&amp;nbsp;/&amp;nbsp;한국외국어대학원&amp;nbsp;석사&amp;nbsp;/&amp;nbsp;2004&lt;br /&gt;김종윤&amp;nbsp;/&amp;nbsp;&amp;lt;자유종&amp;gt;소고&amp;nbsp;/&amp;nbsp;육사논문집29&amp;nbsp;/&amp;nbsp;1985&lt;br /&gt;김택중&amp;nbsp;/&amp;nbsp;이해조&amp;nbsp;소설에&amp;nbsp;나타난&amp;nbsp;계몽의식&amp;nbsp;연구&amp;nbsp;:&amp;nbsp;&amp;lt;자유종&amp;gt;을&amp;nbsp;중심으로&amp;nbsp;/&amp;nbsp;대전어문학13집&amp;nbsp;/&amp;nbsp;1996&lt;br /&gt;고명학&amp;nbsp;/&amp;nbsp;이해조&amp;nbsp;소설의&amp;nbsp;공간구조&amp;nbsp;/&amp;nbsp;인천어문학16&amp;nbsp;/&amp;nbsp;2000&lt;br /&gt;신춘자&amp;nbsp;/&amp;nbsp;여성의&amp;nbsp;토론과&amp;nbsp;사회현실의&amp;nbsp;수용&amp;nbsp;:&amp;nbsp;토론소설&amp;nbsp;&amp;lt;자유종&amp;gt;을&amp;nbsp;중심으로&amp;nbsp;/&amp;nbsp;여성문제연구16&amp;nbsp;/&amp;nbsp;1988&lt;br /&gt;오현주&amp;nbsp;/&amp;nbsp;개화기&amp;nbsp;소설의&amp;nbsp;현실&amp;nbsp;대응&amp;nbsp;방식&amp;nbsp;연구&amp;nbsp;/&amp;nbsp;연세대&amp;nbsp;대학원&amp;nbsp;석사&amp;nbsp;/&amp;nbsp;1987&lt;br /&gt;전기철&amp;nbsp;/&amp;nbsp;개화기&amp;nbsp;논설,&amp;nbsp;토론의&amp;nbsp;문학화&amp;nbsp;&amp;lt;자유종&amp;gt;을&amp;nbsp;중심으로&amp;nbsp;/&amp;nbsp;숭의여자전문대학&amp;nbsp;/&amp;nbsp;1990&lt;br /&gt;강준철 / 몽배금태조 연구 / 한국어문교육학회 / 2002&lt;/p&gt;
&lt;/div&gt;</description>
      <category>교육자</category>
      <category>기자</category>
      <category>신소설</category>
      <category>이해조</category>
      <category>자유종</category>
      <category>친일행적</category>
      <category>판소리계 소설의 계승</category>
      <author>돈많은한량이꿈</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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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4 Jul 2023 17:07:2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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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신소설의 대두</title>
      <link>https://sora-2878.tistory.com/entry/%EC%8B%A0%EC%86%8C%EC%84%A4%EC%9D%98-%EB%8C%80%EB%91%90</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신소설은 대체로 &amp;lt;만세보&amp;gt;에 발표된 이인직의 &amp;lt;혈의 누&amp;gt;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소설은 &amp;lt;혈의 누&amp;gt;가 발표된 이후부터 근대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이광수의 &amp;lt;소년의 비애&amp;gt;나 &amp;lt;무정&amp;gt;, 현상윤의 &amp;lt;핍박&amp;gt;이 나오는 1917년까지의 10년 동안에 수많은 작품이 나와 개화기 문학의 융성을 가져온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신소설 대두 배경&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신소설 대두의 요인은 갑오경장 등 복잡하게 변화해 가는 국내 자체의 요인인 자생적 요인과 변화를 강요하는 외국의 영향인 타생적 요인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신소설 대두의 자생적 요인으로는 정치, 사회적 변화, 신문, 잡지의 창간, 국어국자에 대한 자각과 문사의 형성 등 세 가지 요인을 들 수 있다. 한편 타생적 요인으로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일본의 정치소설이나 근대소설 혹은 일본에서 번역된 서구 근대 소설의 영향, 서구 소설의 번안 등으로 나타나 신소설의 성장을 촉진하는 자극제가 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신소설의 개념&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신소설은 고소설에 대해서 단순히 새로운 소설이라는 뜻으로 쓰이다가 그러한 소설을 통칭하는 소설 장르의 명칭으로 굳어진 것이다. 그런데 개화기 문학의 가장 대표적인 장르인 신소설의 정의하는데 있어서 여러 가지 개념 설정이 있다. 그것은 신소설을 근대소설의 남상이라고 보는 견해와 고소설과 근대소설의 교량으로 보는 견해와 고소설의 전형으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신소설의 특징&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신소설은 개화기의 시대상황에 대한 인식과 그것을 어떻게 형상화했는가에 따라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니게 된다. 이 특성은 창작의 발원체인 작가의식과 그것을 형상화하는 기법의 형식면, 그리고 그 기법에 수용된 내용, 즉 주제면이라는 세 각도에서 살필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1. 신소설의 작가 의식&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작품의 서문이나 발문에 표현된 신소설 작가의 문학의식은 문학을 정의계발과 사회교화의 수단으로 보는 고소설의 입장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 하고 있다. 신소설 작가들은 대체로 인정을 계발하고 세도에 감계 될 전통적인 윤리의식에 의한 권선징악의 작가의식으로 작품을 쓴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2. 신소설의 허구적 성격&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신소설은 일반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에 의한 평면적 진행으로, 우연성이 많이 개재하며 해피엔딩이 대부분이고, 율문적 자취가 남은 서술 중심의 문체로 인물을 그리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 신소설은 각설로 시작되는 고소설의 전기적 로망의 영역을 넘지 못하고 다만 무대만 이 개화기로 설정되어 있을 뿐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3. 신소설의 주제&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신소설은 해피엔드적 플롯에 의한 권선징악적 주제로 일관되어 있지만, 그 주제의 내용은 개화기에 상응하는 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신소설은 자주독립과 신교육, 자유결혼, 인습의 비판, 미신타파 등 낡은 것을 비판하고 근대화에 의해 새로운 것과 자주적인 것을 고취시키는 주제를 드러낸다. 이것은 신소설이 요동하는 시대정신을 수용하고 있으며 시대와 호흡을 같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측면이지만, 한편으로 신소설은 전통적인 윤리의식에 기반을 두고 권선징악을 주제의 중심으로 삼고 있어 고소설과 깊은 연관성을 드러낸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신소설 작가와 작품&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 이인직&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인직은 지금까지 알려진 최초의 신소설을 쓴 작가이다. 이인직의 작품으로는 신소설의 효시로 간주되는 &amp;lt;혈의 누&amp;gt;를 비롯하여 &amp;lt;모란봉&amp;gt;, &amp;lt;귀의성&amp;gt;, &amp;lt;치악산&amp;gt;, &amp;lt;은세계&amp;gt; 등이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2. 이해조&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해조는 신소설 작가 중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작가이다. 그의 작품으로는 &amp;lt;자유종&amp;gt;을 비롯하여 &amp;lt;빈상설&amp;gt;, &amp;lt;구마검&amp;gt;, &amp;lt;원앙도&amp;gt;, &amp;lt;홍도화&amp;gt;, &amp;lt;모란병&amp;gt;, &amp;lt;화의 혈&amp;gt;, &amp;lt;구의산&amp;gt; 등의 신소설과 판소리 소설을 신소설로 개작한 &amp;lt;옥중화&amp;gt;, &amp;lt;강상련&amp;gt;, &amp;lt;토의 간&amp;gt; 등이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3. 최찬식&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최찬식의 작품으로는 &amp;lt;추월색&amp;gt;, &amp;lt;안의 성&amp;gt;, &amp;lt;금강문&amp;gt; 등이 있으며, 주로 애정문제를 중심으로 개화의식을 드러내고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4. 안국선&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안국선은 정치학을 전공한 지식인으로 &amp;lt;금수회의록&amp;gt;과 단편집 &amp;lt;공진회&amp;gt;를 썼다. 그는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amp;lt;금수회의록&amp;gt;에 의한 소설의 풍자와 우화성, &amp;lt;공진회&amp;gt;에 의한 단편의 시도는 신소설의 새로운 일면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5. 김교제&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김교제의 작품은 이인직이 상편만 쓴 &amp;lt;치악산&amp;gt;하편 &amp;lt;모란화&amp;gt;, &amp;lt;현미경&amp;gt; 등이 있다.&lt;/p&gt;</description>
      <category>권선징악</category>
      <category>신소설</category>
      <category>안국선</category>
      <category>이인직</category>
      <category>이해조</category>
      <category>전지적 작가 시점</category>
      <category>토의간</category>
      <category>해피엔딩</category>
      <category>혈의 누</category>
      <author>돈많은한량이꿈</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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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4 Jul 2023 08:58:1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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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윤흥길 소설 특징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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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소재의 다양성&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왕성한 작가활동과 병행하여 그의 제재 역시 상당한 다양성을 반영하고 있다. 가령 &amp;lt;기억 속의 들꽃&amp;gt; &amp;lt;황혼의 집&amp;gt; 같은 작품에서는 작자 자신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다분히 서정적인 톤으로 회상하고 있다. &amp;lt;장마&amp;gt;, &amp;lt;무지개는 언제 뜨는가&amp;gt; 등도 화자가 어린 시절을 서정적인 톤으로 회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어린 화자의 시선을 통하여 참담했던 시대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당대의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사실적으로 천착해 가고 있는 작품도 있다. 가령, 오늘날 커다란 사회문제를 대두하고 있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고아의 문제를 다룬 &amp;lt;순은의 넋&amp;gt;, &amp;lt;옛날의 금잔디&amp;gt; 등이 그것이다. 폭력배의 생태 내지 그 후일담을 다루고 있는 &amp;lt;비늘&amp;gt;, 이산가족의 참담한 생태를 다루고 있는 &amp;lt;무재&amp;gt; 등도 이 계열에 드는 작품이라 하겠다. 당대의 현실의 부정적 측면을 다분히 희화적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들도 있다. 얼굴에서 잃은 체면을 엉뚱하게 발에서 되찾고자 기를 쓰는 병적 자존심의 소유자의 행적을 다분히 희화적으로 추적하고 있는 &amp;lt;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amp;gt;, &amp;lt;직선과 곡선&amp;gt; 등을 비롯하여 제식훈련과정을 진술하면서 다름 아닌 당대 군사정권의 획일주의적 군사문화를 풍자하고 있는 &amp;lt;제식훈련 변천 약사&amp;gt; &amp;lt;날개 또는 수갑&amp;gt;, 그리고 완장 하나 두르고 거들먹거리는 한 시골뜨기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 현실 속에 완강히 뿌리 박혀있는 독재주의적 잔재를 풍자하고 있는 &amp;lt;완장&amp;gt; 등이 그것이다. 도시 소시민의 생태를 희화적으로 그리고 있는 &amp;lt;말로만 중산층&amp;gt;, &amp;lt;달국씨 일가의 꾀죄죄한 나날들&amp;gt; 같은 작품이 있는가 하면, 어느 한 시골 농가에 상황을 설정하여 그 가족들의 삶의 궤적을 차분하게 그리고 있는 &amp;lt;밟아도 아리랑&amp;gt; 같은 작품도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고유어의 사용&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는 또 우리의 고유어를 되살려 쓰려는 노력을 꾸준히 계속하고 있다. 오늘날 거의 잊혀져 있거나 완전히 사어가 되어 버린 분위기 짙은 우리말들이 그의 소설 공간 안에서 생생한 모습으로 되살아나고 있음을 흔히 볼 수 있다. 가령 '보리 깜부기 같은'이니, '암냥해서'니 하는 토속어가 적절한 상황에서 쓰이고 있는가 하면, '길래......'니 '이아침받다'니 하는 오늘날 사어가 되어버린 우리의 고유어들이 그의 문맥 속에서는 생기 있게 되살아나고 있다. 외래어가 거침없이 밀어닥치고 있는 오늘의 세태에 비추어 생각할 때, 그리고 작가는 무엇보다도 모국어를 소재로 하는 예술가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윤흥길이 지속하고 있는 이러한 노력은 분명 높이 평가해야 할 점이라 하겠다.&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사실주의의 평판성을 뛰어넘은 사실주의&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기법적인 면에서 볼 때 윤흥길은 한국 사실주의를 충실히 계승한 작가라 할 수 있다. 대현실적 자세에 있어서 그는 염상섭이나 박태원같은 전형적인 사실주의 작가에서 볼 수 있는 객관적 관찰자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면서도 그는 일련의 사실주의 작가들이 곧잘 드러내게 마련인 안이한 평판성을 효과적으로 극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재래의 사실주의 작가들의 한계를 효과적으로 뛰어넘고 있다. 그의 작중현실이 사실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종래의 사실주의가 곧잘 드러내는 평판성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되는 것은 그의 소설공간에는 거의 예외 없이 지극히 당돌한 환상적 요인이 장치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상적 요인은 범속하고 평판적인 작중현실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당돌하고도 충격적인 것이다. 이런 충격적 요인이 투입됨으로써 범속하고 평판적인 작중현실은 갑자기 전혀 차원이 다른 상징의 세계로 질적 비약을 이룩하게 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중편 &amp;lt;비늘&amp;gt;에는 무료진료를 해주기 위해 강원도 산골에 찾아온 작중화자가 한밤중에 길거리에서 김대장이라는 사나이와 맞닥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김대장이라는 사나이는 '짐승'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사나운 폭력배로서 술만 취하면 휘젓고 다니는 바람에 고장 사람들은 밤만 되면 문을 닫고 불도 끄고 자는 척할 정도이다. 그런데 화자는 이 고장에 도착한 첫날 밤에 절대로 밖에 나가지 말라는 친구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한밤중에 가만히 거리에 나와서 돌아다니다가 결국 그 김대장과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화자는 본의 아니게 사나이의 비위까지 거슬러서 그에게 멱살까지 잡혔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런 긴박한 상황을 진술하는 화자의 톤은 지극히 차분하다는 사실이다. 화자가 당면하고 있는 사태의 긴박함에 비하면 이를 진술하는 그의 톤은 훨씬 차분하고도 면밀하다. 화자는 사태의 긴박한 진행에 결코 편승하지 않고 차분한 관찰자의 자세를 견지한다. 전형적인 묘사가의 자세라 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동화적 요인&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비늘&amp;gt;에서 나타나는 도시의 일개 치과 의사와 한 고장을 쥐락펴락하는 폭력배의 한밤중의 맞닥뜨림. 이러한 상황이란 우리들의 일상현실의 자리에서 보면 지극히 예외적이요. 거의 황당무계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말하자면 그러한 상황설정은 사실주의적 차원의 것이 아니라 환상적 차원의 것이라는 말이다. 김대장과 치과의사는 각기 한 가지 점에서 작품속에 등장하는 일상적 흐름 속에 살고 있는 고장 사람들과 다르다. 김대장의 경우 '짐승'같은 면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거니와, 치과의사는 고장사람들이 '짐승'으로만 여기는 김대장의 내면에 간직되어 있는 의외로 수줍고 연약한 어린애다움을 간파할 수 있는 총명함의 소유자라는 점에서 그렇다. 김대장과 치과의사가 아슬아슬한 파국의 일보 직전에서 그런 나름으로 상호이해에 당도할 수 있게 된 것은, 김대장의 그 짐승스런 드러남의 내면에 간직되어 있는 어린애다운 연약함과 그 어린애다움을 간파할 수 있는 치과의사의 총명함이 서로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애다움을 통로로 하여 서로 만나질 것 같지 않은 이 두 사람은 극적으로 만나는 데 성공하는 것이다. 어린애다움을 기반으로 하여 공상의 날개를 펴는 것이 이른바 동화라 할 수 있을진대, 김대장과 치과의사는 분명 이 순간 고장사람들의 세계와는 다른 동화의 주인공으로 질적 비약을 이룩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윤흥길의 작품 가운데는 &amp;lt;어른들을 위한 동화&amp;gt;란 연작 단편들이 있다. 윤흥길의 문학세계에는 분명 이런 동화적인 면이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황혼의 집&amp;gt;, &amp;lt;장마&amp;gt; 등을 비롯한 많은 뛰어난 작품들이 동화의 주인공인 어린이를 작중 관찰자 내지 화자로 설정하고 있는 것도 이런 점에서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가령 &amp;lt;장마&amp;gt;에서 감나무에 기어오르는 구렁이를 매개로 한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사이의 극적인 화해, &amp;lt;무지개는 언제 뜨는가&amp;gt;에서 미친 여인과 부모를 잃은 애기와의 만남 등은 그런 예라 할 것이다. 어른이 작중 화자로 되어 있는 &amp;lt;비늘&amp;gt;을 비롯한 많은 작품의 경우에도 루카치의 이른바 '문제적 개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일련의 인물들이 거의 예외 없이 동화적 분위기를 짙게 풍긴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lef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어떻든 이런 동화적 요인이 작중 범속한 일상현실의 흐름 속에 투입됨으로써 흐릿하던 작중현실은 비로소 그 정체를 드러내고 실마리를 풀게 된다. &amp;lt;비늘&amp;gt;에서 김대장과 치과의사의 앞서 말한바와 같은 만남을 계기로 하여 이제껏 고장사람들에게 짐승으로 여겨져 오던 김대장은 비로소 유순한 어린애 같은 정체를 드러내게 되며 고장사람들은 왜소하고 겁 많은 편견의 소유자로 밝혀지게 된다. 그것은 일종의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아이러니야말로 윤흥길의 문학이 간직하는 소중한 매력의 하나라 할 것이다.&amp;nbsp;&lt;/p&gt;</description>
      <author>돈많은한량이꿈</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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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3 Jul 2023 20:48:3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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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윤흥길 소설의 특징</title>
      <link>https://sora-2878.tistory.com/entry/%EC%9C%A4%ED%9D%A5%EA%B8%B8-%EC%86%8C%EC%84%A4%EC%9D%98-%ED%8A%B9%EC%A7%95</link>
      <description>&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윤흥길의 소설에 나타나는 아이러니&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윤흥길은 치밀하고 섬세한 사실주의적인 묘사를 문학적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점에서 그는 얼핏 보기에 그다지 모험적이거나 실험적인 작가가 아닌 듯이 보인다. 그는 대개의 경우 일단 차분한 관조자의 자세를 취한다. 이는 그의 문장의 지배적인 톤이 요설이나 웅변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엄격하게 절제된 관조자의 그것이라는 사실과 긴밀히 관련되는 점이다. 확실히 그의 문장의 톤은 그것이 펼쳐내는 작중의 사건 그 자체의 질료에 비하면 예외 없이 한두 음계쯤 낮다. 말하자면 그의 문장의 톤은 언제나 작중현실의 사건이 빚어내는 탄력 속에 말려 들어가는 법 없이 일정한 거리를 엄격하게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작중 액션의 질료와 그것을 펼쳐내는 그 문장의 톤 사이의 음계의 편차로 말미암아 그의 작중 현실 안에서는 대개의 경우 일종의 아이러니가 빚어진다. 이러한 음계의 편차는 그의 작중의 분위기를 약간 흐릿하고 우중충한 것으로 빚게 하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그가 펼쳐내는 작중현실은 일단 그 윤곽이 부각되기는 하면서도 어딘지 아련한 안개같은 것이 거기에 서려 있는 듯하다. 그리하여 독자는 처음 다소 당혹감을 의식하게도 되지만, 또 그렇게 되기 때문에 모든 윤곽이 백일하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보다 어떤 신선한 여운을 느끼게도 되는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의 이러한 아이러니는, 특히 &amp;lt;황혼의 집&amp;gt; , &amp;lt;장마&amp;gt; 등과 같이 철없는 어린이의 시점으로 어른들의 세계를 진술하고 있는 일련의 작품들에 있어서의 아이러니는 얼핏 보기에 채만식의 &amp;lt;치숙&amp;gt; 등의 그것과 비슷한 면을 지니고 있다 할 것이다. 이런 작품들은 모두, 펼쳐지는 작중의 사건과 그것을 진술하는 화자의 톤 사이에 각기 일정한 음계의 편차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무식하고 어리석은 화자가 유식하고 진지한 작품상황을 진술함으로써 빚어내는 &amp;lt;치숙&amp;gt;의 아이러니는 자기가 그 진상을 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이의 시점으로 어른의 세계를 진술하고 있는 윤흥길의 일련의 작품들에 있어서의 아이러니와 마찬가지로 앞서 말한 음계의 편차에서 연유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윤흥길의 아이러니는 &amp;lt;치숙&amp;gt;의 경우처럼 의도가 원색적으로 드러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런점은 엄격하게 절제된 그의 관조자적인 문장이 톤과도 긴밀히 관련되는 점이라 할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아이러니는 윤흥길의 문학이 간직하는 매우 중요한 매력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러한 아이러니의 묘미는 &amp;lt;황혼의 집&amp;gt;, &amp;lt;장마&amp;gt;, &amp;lt;땔감&amp;gt;, &amp;lt;기억 속의 들꽃&amp;gt; 등과 같이 잔인하고 교활한 어른들의 세계를 순진한 어린이들의 시점으로 진술하고 있는 일련의 작품들에 있어서 뛰어나게 발휘되고 있거니와, 그것은 또 &amp;lt;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amp;gt;, &amp;lt;직선과 곡선&amp;gt;, &amp;lt;무제&amp;gt; 등과 같은 양식 있는 지식인의 시선으로 밑바닥 인생으로 전락한 시대현실의 소외자들을 관찰하고 있는 작품들에서도 볼 수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화해 지향의 문학&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장마&amp;gt;를 살펴보면 작품의 작중 현실의 시간과 그것을 진술하고 있는 시간 사이에 뚜렷한 간극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의 시점은 나이 어린 소년의 그것이다. 화자인 '나'가 자신의 과거사실을 회상하는 시점에 서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작중 모든 액션은 철 없는 어린이의 시점 안에 국한되어 진술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또 상당히 많은 시간적 거리를 둔 시점에서 진술되고 있다는 점에서 작중의 액션과 화자 사이에는 이중적인 거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작품 속에 펼쳐지는 장면 자체는 지극히 가혹한 비극성과 관련되는 것이지만, 화자의 진술은 그러한 비극성에 대한 하등의 언질을 누설함이 없이 그 자체의 구체성만 드러낸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작중 현실과 화자 사이에 이와 같은 이중적인 간격이 설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요컨대 당대 현실에 대한 작자 자신의 대응자세가 엄격히 묘사가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것은 6.25라는 비극적 사태에 대한 이 작가의 대응자세가 엄격히 객관적이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작가 윤흥길과 6.25라는 비극적 사태 사이에는 이중적인 정서적 여과장치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그의 6.25를 제재로 한 문학이 그의 선배작가인 1950년대 작가들의 이른바 전쟁(전후) 문학과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점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50년대의 전후문학은 한 마디로 말해서 아픔의 문학이요. 뜨거운 분노의 문학이었다. 전쟁터는 모든 사람들에게 삶이냐 죽음이냐를 결단케 하는 절박한 현장이었다. 이 가혹한 현장에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당대 작가들은 언제나 삶이냐 죽음이냐, 혹은 적이냐 우군이냐의 양자택일의 고비에 높여야 하였다. 따라서 그들의 문장은 항상 뜨겁게 고조된 톤으로 일관하였다. 그들은 6.25라는 민족 최대의 비극에 대하여 냉정한 관조자의 입장을 취할 수 없었다. 그것에 대한 대결자 내지 심판자의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1950년대 소설이 대체로 객관적 관찰자의 문학이 아니라 직선적 호소의 문학으로 기울었던 것도 이런 점에서 우연이 아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러나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소설에도 변화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특히 어린나이에 6.25를 겪은 작가들의&amp;nbsp; 6.25를 보는 시각에 두드러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들에게 6.25는 이미 당사자로서 체험한 6.25가 아니다. 당사자가 아니라 어린 목겨자로서 겪은 6.25문 학이며 이런 성격의 문학으로서 백미라 할 작품이다. &amp;lt;무지개는 언제 뜨는가&amp;gt;또한 뛰어난 작품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장마&amp;gt;의 모든 상황은 어린 목격자인 나의 집안에 집약되어 있다. 말하자면 6.25의 모든 요인들이 나의 집안에 집약되어 있는 셈이다. 이 집안에서의 6.25는 아들이 빨치산으로 들어간 친할머니와 아들이 국군으로 가서 전사한 외할머니 사이의 팽팽한 대결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대결의 양상을 더욱 악화시키는 사태가 빚어졌다. 밤중에 돌아온 빨치산 삼촌에 대한 이야기를 수사관에게 실토함으로써 아버지가 붙들려가서 곤욕을 치르고 나오게 된 것이다. 두 할머니의 대결양상이 극한으로 치달았을 때 뜻밖의 사태가 벌어진다. 아들이 돌아온다고 점쟁이가 말한 날, 아들은 오지 않고 큰 구렁이가 집안으로 들어오자 친할머니는 아들이 죽어 돌아온 것으로 믿고 실신하게 되는데 이때 외할머니가 이 반갑지 않은 손님을 전중히 뒷산으로 배송하는 데 성공하며, 이를 계기로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는 다 같이 아들을 잃은 늙은 어머니답게 서로 화해하게 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 작품에서 구렁이의 등장은 &amp;lt;비늘&amp;gt;에서 김대장과 치과의사의 한밤주으이 만남과 같이 작중현실에 전환점을 가져다주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작중의 일상적 차원을 환상적이고 상징적 차원으로 비약시키는 요인으로 된다는 말이다. 사실 이 구렁이의 등장을 고비로 하여 두 할머니 사이에 극적인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어떻든 이러한 화해의 양상은 1950년대의 6.25문학에서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어린 목격자의 시각으로 그려진 6.25문 학에서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빨치산에게 남편과 어린 자식을 살해당하고 미쳐버린 여인이, 우익 쪽 사람들에 의해 부모를 잃은 젖먹이 어린것을 소란 중에 살려내어 팅팅 불은 자기 젖을 물려주는 행위가 작품의 전환점이 되고 있는 &amp;lt;무지개는 언제 뜨는가&amp;gt; 역시 &amp;lt;장마&amp;gt;의 연장선상에서 읽을 수 있는, 어린 목격자에 의하여 그려진 화해 지형의 6.25 문학의 좋은 예라 할 것이다. 자수 간첩의 참혹한 후일담을 그리고 있는 &amp;lt;무제&amp;gt;역시 윤흥길의 화해 지향의 6.25 문학의 한 변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윤흥길의 화해지향성은 &amp;lt;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산내&amp;gt;, &amp;lt;직선과 곡선&amp;gt; 그리고 &amp;lt;꿈꾸는 자의 나성&amp;gt; 등 현실풍자적인 분위기가 짙은 일련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amp;lt;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amp;gt;, &amp;lt;직선과 곡선&amp;gt;의 주인공은 단적으로 말해서 그 자신의 말과 같이 '얼굴에서 잃은 체면을 발에서 되찾고자 기를 쓰는' 위인이다. 대학까지 나왔으나 못마땅한 현실에 저항을 하다가 감옥에도 갔다 오고, 그러노라니 자꾸 인생의 응달쪽으로만 뒤처지게 되어 마침내는 우연히 만난 늙은 창녀와 동반자살까지 기도하다가 실패한 끝에 비로소 삶의 의지를 되찾게 된다. 주어진 삶과의 싸움에서 패배만 거듭하던 그는 죽음이라는 고된 관문을 통과함으로써 삶과의 화해에 성공하는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풍자적 접근의 시도&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윤흥길의 문학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속성은 당대현실의 부정적 측면에 대하여 풍자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면이다. &amp;lt;제식훈련변천약사&amp;gt;, &amp;lt;날개 또는 수갑&amp;gt;, &amp;lt;빙청과 심홍&amp;gt;, &amp;lt;완장&amp;gt; 등이 그런 작품들이다. &amp;lt;제식훈련변천약사&amp;gt;에는 일제, 민군정, 대한민국을 거치면서 그 때마다 제식훈련의 동작이 여러 가지고 달라져왔는데, 이러한 제식 훈련의 변천양상은 결국 당대의 통치이념과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가를 추리하고 있다. 그 추리하는 문장의 톤이 다분히 풍자적이다. 그 충자의 표적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당대 군사정권의 획일주의적 통치방식이다. 간편하고 능력적인 업무수행을 위하여 제복을 입도록 하라고, 이는 대다수 사원들의 간절한 요청으로 결정된 것이니 절대로 이행해야 한다고 사원들에게 통고하는 어느 회사 사장의 모습을 통하여 군사문화의 한 특징인 획일주의를 풍자하고 있는 작품이 &amp;lt;날개 또는 수갑&amp;gt;이다. 완장을 팔뚝에 둘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깻바람을 일으키며 마을 사람들을 내려다보려는 한 시골 저수지 관리인을 통하여 뿌리 깊은 관료주의를 지적하고 있는 &amp;lt;완장&amp;gt;도 풍자적 색채가 짙은 작품이다. &amp;lt;빙청과 심홍&amp;gt;에서는 돌발적인 사고로 화상을 입었을 뿐인 한 병사를 전우애가 넘치는 영웅으로 조작해 냄으로써 영달을 누리려는 군 지휘자와 그와 결탁한 언론의 타락성을 풍자하고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한편 &amp;lt;말로만 중산층&amp;gt;, &amp;lt;달국씨 일가의 꾀죄죄한 나날들&amp;gt;을 비롯한 일련의 작품들은 소시민들의 일상을 다분히 풍자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앞서 작가 윤흥길은 차분하고 면밀한 묘사가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입장은 어린아이의 시점으로 그려진 작품들과 본격적인 삼인칭 시점에 입각한 작품들에서 그리고 당대현실을 풍자적으로 조명한 작품에서 동일하게 관철되어 있다. 이 점에서 윤흥길의 풍자는 가령 조세희 같은 작가의 그것 같지는 않다. 쉽게 말해서 조세희의 풍자가 어떤 실천적 전략을 기반으로 한 그것인데 반하여 윤흥길의 그것은 작중 현실이 스스로 말하게 하려는 방식으로 빚어지는 풍자이다. 이 점에서 그의 풍자는 오히려 해학에 가깝다. 소시민의 행태를 풍자한 일련의 작품들의 경우가 특히 그러하다.&amp;nbsp;&lt;/p&gt;</description>
      <author>돈많은한량이꿈</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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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3 Jun 2023 20:49:2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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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문구 소설 문체의 특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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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문체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지닌 이문구는 다양한 문학적 체험을 통해 소설적 지향과 소통환경, 그리고 개인적 취향 등에 걸맞은 문체를 효과적으로 창출함으로써 고유한 문학 세계의 건설에 성공한다. 때문에 그의 문학적 성과는 무엇보다도 독특한 문체에 힘입은 소설 미학의 확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문구 소설 문체의 형성 요인을 세 가지로 규정할 수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첫째, '작가의 품성'에 의해 결정되는 문체를 상정할 수 있다. '성장기의 이데올로기적 체험', '조부를 향한 그리움과 아버지에 대한 경외심', '고향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에 대한 낭만적인 태도'등은 작가의 품성을 이루는 바탕이 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둘째, '작가의 언어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문체를 예상할 수 있다. '1960년대의 문학적 환경', '어린 시절의 독서 체험', '스승 김동리의 문학적 가르침', '농촌 생활 및 밑바닥 삶의 체험' 등이 작가의 언어 환경으로 존재한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셋째, '소통의 목적과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문체를 생각할 수 있다. 문학적 소통과 목적과 조건을 이루는 '작가의 주체의식 확립'과 '시대적 환경'은 작품에서 어휘의 선택과 배열을 좌우하도록 이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러한 제반 요인들에 의해 형성된 이문구의 소설 문체는 '우회적인 표현', '비판적인 표현', '한문투의 의고체', '냉소적 표현', '낭만적이고도 감상주의적 표현', '탁월한 묘사체', '전통문체', '풍자와 해학의 표현', '토착어 중심의 글투' 등으로 그 특징을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문구 소설 문체의 의의는 '문체의 중요성 부각', '전통문체의 계승 발전', '해학과 풍자의 가치 재발견', '토착어 중심 문체의 중요성 강조', '순우리말 어휘의 복원과 창조', '서구적 문체의 전복을 위한 문체의 주체성 회복' 등을 통해 두루 확인할 수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문구의 소설 문체에 관한 논의에서 긍정적인 평이 그 주를 이루지만, 부정적 견해도 일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1970~1980년대의 이러한 논의 양상은 190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문구의 소설 문체를 긍정하는 방향으로 경사되며, 그 성격 또한 단순하거나 편협적인 양상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내용으로 심화되는 경향을 보인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작가의 품성&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한국전쟁으로 인한 가족의 파탄은 무엇보다도 정신적 상흔으로 남는데, 이는 작가의 품성 형성에 적잖은 영향을 미쳐 평생을 지배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작가의 품성을 이루는 '성장기의 이데올로기적 체험'을 그의 소설 문체 형성의 첫 번째 요인으로 규정할 수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문구는 9.28 수복이 되면서 좌익에게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빼앗길 뻔한 뼈아픈 기억을 지니고 있다. 과거의 어두움은 전쟁 후에도 계속되는데, 그는 미성년자임에도 좌익 활동을 한 부친의 영향으로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어 정부의 감시를 받은 일이 그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비극적 체험은 이문구로 하여금 공포심과 불안심리를 내면화하도록 이끈 측면이 강하다. 실제로 그는 언젠가 당할지 모르는 자신의 참화에 대비하기 위해 문학을 하겠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다음으로는 '조부를 향한 그리움과 아버지에 대한 경외심'이&amp;nbsp; 작가의 품성을 이룬다. 이문구는 조부는 청라면 옥계의 화암 서원의 직원과 보령 유림의 당세관을 지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양반 가문임을 유일한 자랑으로 삼았던 조부의 슬하에서 이문구는 언행일치를 강조하는 엄격한 전통적 가정교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특히 조부로부터 전수 받은 한문 교육의 영향은 &amp;lt;산 너머 남촌&amp;gt;과 &amp;lt;매울당 김시습&amp;gt;에 구현된 '한문투의 의고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고향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에 대한 낭만적이고도 감상적인 태도'를 꼽을 수 있다. 다시 말해, 고향과 고향 사람들에 대한 따스한 시설과 이들 존재의 변모 및 부재에 따르는 상실감은 낭만적이고도 감상적인 정서를 형성함으로써 작가의 품성에 이바지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렇듯 작가는 전통적 가치관을 지닌 고향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을 온정적이고도 낭만적인 차원에서 수용하는 데 비하여, 근대화로 인한 공동체적 삶의 해체를 박탈감 내지 '상실감'으로 인식하는 면모를 보인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작가의 언어 환경&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 이른바 '4.19세대 작가'로 불리는 이문구, 김승옥, 이청준, 서정인, 박태순, 박상륭, 홍성원, 김원일, 김용성, 이제하 등은 문학의 출발 시기를 공유한다. 그리고 이들 작가는 능숙한 한글 글쓰기를 바탕으로 하여 1960년대 문학의 흐름에 신선한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정규 교육을 통해 한글을 학습한 이들 작가가 한글의 유연성과 정밀성을 체득하여 각각의 개성적 문체를 성취한 사실을 가리킨다. 이로써 본격적인 한글세대에 속하는 이들의 글쓰기는 1950년대 전후 자기의 관념적 글쓰기에서 비로소 벗어나게 된다. 이러한 성과에는 '4.19 세대 작가들'이 정서적으로 일제 강점기의 자괴감과 한국전쟁 전후의 폐허의식 등과 거리를 확보함으로써 객관적인 현실 진단의 능력을 일정하게 갖추게 된 사실도 배제할 수 없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런데 '4.19세대 작가들'은 한글의 묘미를 살린 자유자재의 글쓰기를 보여 주는데에 머물지 않고, 개인과 사회에 대한 존재론적 탐색을 시도함으로써 주체적인 작가의식의 확장과 심연의 경지까지 나아간다. 때문에 이들 작가의 공통점은 대상의 세밀한 묘사를 통한 압도적인 미적 표현을 획득할 뿐만 아니라 근대화에 따르는 개인과 사회 공동체의 변화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데에서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이문구는 해체를 앞둔 농촌 공동체의 실체를 고발하는 과정에서 감각어를 정밀하게 사용함으로써 묘사의 대상에 대한 미적 질감을 유감없이 포착해 낸다. 근대화의 폐단을 고발하는 과정에서 한글의 유연성과 정밀성을 십분 발휘하는 이문구의 소설 문체는 소위 4.19세대 작가들의 그것과 상호 영향의 수수 관계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2. '어린 시절의 독서 체험'이 작가의 언어 환경으로 존재한다. 다시 말해, 언어 환경을 이룬 바 있는 어린 시절 독서 체험은 그의 문체 형성에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독서 체험은 판소리계 소설과 '고전소설'에 구현된 '전통문체'에 대한 관심을 가지도록 이끌었을 수 있다. 실제로 판소리계 소설만을 놓고 볼 때, 이문구의 소설과의 문체적 공통점을 발견하는 일이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내용은 &quot;작가의 감흥에 따른 자유롭지만 정교하지 못한 구성상의 특성, 청각을 중시한 이야기체, 등장인물의 장황한 설명적 제시, 핵심 내용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유사 표현의 연출, 속담을 비롯한 한자어와 고사성어 등으로 구현되는 관용어구의 빈번한 사용, 만연체 위주의 사설체 내지 오설체, 서사의 통일성에 벗어나 특정 상황을 중시하는 '부분의 독자성', 육두문자와 아어체를 넘나드는 이중적 표현, 늘어지는 문장 호흡과 가락&quot;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3. '스승 김동리의 문학적 가르침'이 작가의 언어 환경으로 존재한다. 이문구는 습작시절에 스승 김동리의 충고에 따라 국어사전을 여러 번 통독한 사실을 회고하고 있다. 그리고 그 노력은 순 우리말을 수반하는 대상의 정밀한 묘사체는 염상섭 소설의 특징인 세밀한 묘사체에서, 그리고 호흡이 긴 만연체와 풍자와 해학을 담은 글투는 판소리계 소설 문체를 계승한 채만식과 김유정의 문체에서 연유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이문구 소설 문체의 의의&lt;/h2&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이문구 문체적 의의는 판소리계 소설과 고전 소설의 문체를 지향하는 데에서 확보 할 수 있다.&lt;/li&gt;
&lt;li&gt;이문구의 문체적 의의는 '토착어'를 풍성하고도 능숙하게 사용하는 데에서 발견된다. 이런 사실은 이야기꾼으로 작품에 등장한 작가가 충청도 사투리와 현장어, 그리고 순우리말 등 토착어를 ㅈ우심으로 한 문체의 중요성을 강조한 일을 가리킨다.&lt;/li&gt;
&lt;li&gt;이문구의 문체적 의의는 &quot;기존의 사전에 오른 말 대신 창의적인, 개인적인 어휘를 폭넓게 사용&quot;한 점에서 발견할 수 있다.&lt;/li&gt;
&lt;li&gt;우리말 의식과 동떨어진 서구화된 문장의 전복을 꾀하여 문체의 주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점에서 이문구의 문체적 의의를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기존 문체의 틀을 과감히 던져 버린 이문구의 소설은 구성을 거의 무시하는 관계로 사건 및 행동의 일관성을 흐려 놓기도 한다.&amp;nbsp;&lt;/li&gt;
&lt;/ul&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 참고 문헌&lt;br /&gt;권영민 / 한국현대문학사 2 / 민음사 / 2007&lt;br /&gt;김윤식 외 / 한국현대문학사 / 현대문학 / 2006&lt;br /&gt;김상태 / 문체의 이론과 해석&lt;br /&gt;김만수(문학평론가) / 땅의 근본과 사람의 도리에 대한 성찰-이문구&lt;br /&gt;유승현 / 이문구 소설의 서술 특성 연구 - 관촌수필을 중심으로&lt;br /&gt;최용석 / 이문구 소설 문체의 형성 요인 및 그 특징 고찰&lt;br /&gt;고인환&amp;nbsp;/&amp;nbsp;이문구&amp;nbsp;소설에&amp;nbsp;나타난&amp;nbsp;근대성과&amp;nbsp;탈식민성&amp;nbsp;연구&lt;/p&gt;</description>
      <category>관촌수필</category>
      <category>유자소전</category>
      <category>이문구</category>
      <author>돈많은한량이꿈</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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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sora-2878.tistory.com/entry/%EC%9D%B4%EB%AC%B8%EA%B5%AC-%EC%86%8C%EC%84%A4-%EB%AC%B8%EC%B2%B4%EC%9D%98-%ED%8A%B9%EC%A7%95#entry29comment</comments>
      <pubDate>Wed, 24 May 2023 20:01:5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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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작가 이문구의 생애와 그에 대한 평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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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이문구의 생애&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41년 4월 12일 충청남도 보령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으며, 6.25 전쟁으로 아버지와 형들을 잃고, 이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15세 때 가장이 되었다. 1959년 중학교 졸업 후 상경해 막노동과 행상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1961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김동리, 서정주 등에게 수학했다. 단편 소설 &amp;lt;&amp;lt;다갈라 불망비&amp;gt;&amp;gt; (1963)와 &amp;lt;&amp;lt;백결&amp;gt;&amp;gt; (1966)이 김동리에 의해 &amp;lt;&amp;lt;현대문학&amp;gt;&amp;gt;에 추천되어 등단했다. 등단작품의 독특한 문장과 문체에 주목한 김동리는 추천사에서 '한국 문단은 가장 이채로운 스타일리스트'를 얻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우리말 특유의 가락을 잘 살려낸 유장한 문장으로 작가 자신이 경험한 농촌과 농민의 문제를 작품화함으로써, 소설의 주제와 문체까지도 농민의 어투에 근접한 사실적인 작품세계를 펼쳐 보여 농민소설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작가로 평가된다. 주요작품으로 &amp;lt;&amp;lt;이삭&amp;gt;&amp;gt; (1968), &amp;lt;&amp;lt;이 풍진 세상을&amp;gt;&amp;gt;(1970), &amp;lt;&amp;lt;암소&amp;gt;&amp;gt; (1970), &amp;lt;&amp;lt;해벽&amp;gt;&amp;gt; (1972), &amp;lt;&amp;lt;추야장&amp;gt;&amp;gt; (1972), &amp;lt;&amp;lt;관촌수필 1~3&amp;gt;&amp;gt; (1972), &amp;lt;&amp;lt;백면서생&amp;gt;&amp;gt; (1974), &amp;lt;&amp;lt;우리 동네 김 씨&amp;gt;&amp;gt; (1977), &amp;lt;&amp;lt;우리 동네 최 씨&amp;gt;&amp;gt; (1978), &amp;lt;&amp;lt;우리 동네 유 씨&amp;gt;&amp;gt; (1979), &amp;lt;&amp;lt;우리 동네 장 씨&amp;gt;&amp;gt; (1980), &amp;lt;&amp;lt;우리 동네 조 씨&amp;gt;&amp;gt; (1981), &amp;lt;&amp;lt;강동만필 1&amp;gt;&amp;gt; (1984), &amp;lt;&amp;lt;강동만필 2&amp;gt;&amp;gt; (1985), &amp;lt;&amp;lt;장곡리 고욤나무&amp;gt;&amp;gt; (1991), &amp;lt;&amp;lt;유자소전&amp;gt;&amp;gt; (1991), &amp;lt;&amp;lt;더더대를 찾아서&amp;gt;&amp;gt; (1994), &amp;lt;&amp;lt;장척리 으름나무&amp;gt;&amp;gt; (1994), &amp;lt;&amp;lt;장동리 싸리나무&amp;gt;&amp;gt; (1995), &amp;lt;&amp;lt;장천리 소태나무&amp;gt;&amp;gt; (1998) 등이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이문구라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평가&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 근대화, 산업화의 구호가 우리나라에 상륙한 지 40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벌써 근대화의 역기능이 도처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생태계의 파괴, 환경의 오염과 자원의 고갈은 물론, 세태 전반에 만연하는 각종 범죄라든지 물신숭배풍조라는 것도 모두 근대화의 부산물로 주어진 것들이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 이르러 과연 근대화와 산업화의 의미는 무엇이며 득과 실은 어떠한가라는 새삼스러운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 땅과 이 땅의 사람들이 자연과 공존하며 이웃과 화목하게, 인간의 도리와 이치를 존중하며 살아온 반만년의 역사에 비해 볼 때, 40년 남짓의 이 시간은 얼마나 ㅁ낳은 잘못과 시행착오에 놓여 있었던가. 현대사회의 병폐를 극복하기 위해 옛 것에 대한 재인식을 시작하는 요즈음, 농촌에서의 원형적인 삶과 땅의 근본 됨을 지속적으로 묘사해 온 것으로 평가되어 온 이문구의 소설을 다시금 읽을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문구는 농촌을 소재로 한 연작을 묶어 &amp;lt;&amp;lt;관촌수필&amp;gt;&amp;gt;(1977), &amp;lt;&amp;lt;우리동네&amp;gt;&amp;gt;(1981)라는 연작소설집을 간행함으로써 농민소설 작가로서의 독특한 위치를 굳힌다. 크게 보아 &amp;lt;관촌수필&amp;gt;은 1960년대 농촌의 궁핍을 그리고 있으며, &amp;lt;우리 동네&amp;gt; 연작은 새마을운동으로 부산했던, 그러나 실직적으로는 오히려 농촌의 피폐가 가속화된 1970년대 이 농촌현실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시대의 농촌을 정면적으로 문제 삼은 역작들이다. 십여 편 남짓의 단편들이 집약된 이 두 연작소설집은 그간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그간에도 김정한, 방영웅 등 여러 농촌 작가가 있었고, 그에 앞서 일제 식민지 시대의 작품에 소급해 살펴본다면 이광수의 &amp;lt;흙&amp;gt;과 같은 계몽주의적 작품, 프로작가들의 농민소설이 있었지만, 농촌의 문제를 근거리에서 관찰한 작품, 또 농민으로서의 체험이 담긴 작품을 찾아보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그에 비해 이문구는 자신이 경험한 농촌의 문제를 비교적 사실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갔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비판 일변도의 시각을 취한 것은 아니고 걸직한 입담과 넉넉한 해학가지 곁들여 가면서 농민들의 세계에 대한 비판과 애정의 양면을 골고루 펼쳐 보이고 있다. 더욱이 이문구의 소설은 작품의 주제는 물론, 문체까지도 농민의 어투에 근접해 있어 농민소설의 한 전범으로 기록되기에 충분하다. 이런 까닭에 이문구의 소설은 대부분 농민소설이라는 일반의 통념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작품세계는 단순히 농민들만의 세계는 아니다. 우리는 여기에 실린 여덟 편의 중단편을 읽으면서 그 의미를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첬재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대부분 농민이지만, 이 농민은 계층적, 경제적 관점에서 정리할 수 있는 보편적인 농민상이 아니라, 양반문화권 속에서 형성된 우리나라 특유의 농민상이다. &amp;lt;토지&amp;gt;의 작가 박경리는 어느 자리에선가 우리 농민의 삶의 자세를 양반문화의 그것으로 본 적이 있다. 논밭에서 땀을 흘리고 일하다가도 손님을 맞을 적에는 몸을 깨끗이 하고 의관을 정제하여 양반의 체모를 갖추는 모습에서 우리 농민의 특이한 한 모습을 암시한 적이 있다. 이문구의 소설을 읽으면 박경리의 이러한 연상이 그리 틀리지 않은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우리의 농민을 서구의 농노와 같은 신분적인 제약으로 그 본질을 설명하거나, 근대적인 자본의 논리로 설명하기에는 분명 무리가 따른다. 세계사의 보편론적인 관점에서 농민과 지주, 피착취와 착취의 도식으로 설명을 가할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부분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땅의 근본과 사람의 도리'라는 관점에서 읽어 보기로 하자.&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문구는 분명 그 세계를 아름답게 그려 내었다. 작품 속에 묘사된 농민들은 물꼬 싸움을 할 때면 야비할 정도로 집요하다가도, 대부분은 이웃을 생각하고 또 인정을 돌보는 양반의 도리를 잃고 있지 않는 것으로 묘사된다. 새마을운동이나 도시의 물질문명이 비난이 되는 것은 그것이 농촌경제를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비판의 이유는 그것이 양반의 문화를 송두리째 위협하는 천박한 상인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그가 묘사하고 있는 농민의 모습이 조선조의 양반에 대한 묘사와 섞일 때, 그 소설은 고루한 양반문화 예찬의 작품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과연 그런가, 그렇지 않다면 그가 보여 주고 있는 농민의 모습에서 긍정적인 부분은 어디일까라는 심사숙고가 필요한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둘째, 그의 소설을 구성하는 형식적 요소에 대한 검토이다. 그의 소설에는 이렇다 할 플롯이 발견되지 않는다. 볼품없는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격으로, 그의 소설은 마냥 뒤틀려 있고, 독자에 따라서는 그러한 요령부득의 스토리 전개에 질려 버릴 수도 있다. 분명 그의 소설은 서구적 개념의 소설과는 다르다. 서구 소설의 미학적 원리인 아리스토텔레스의 플롯 개념에서 그의 소설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그는 인위적으로 긴장을 조성하고 그것이 일사불란하고 효율적인 플롯을 취해 감동적인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식의 구성을 결코 취하지 않는다. 우매한 농민들의 딴전 피우는 듯한 넋두리, 그것을 아무런 절제 없이 따라 옮기는 서술자의 태도, 작품을 덮었을 때에도 종시 단일한 주제로 집약되지 않는 줄거리 등은 서구적인 플롯에 익숙한 요즘의 독자들에게 제대로 읽히기나 할 것인지 걱정이 앞설 정도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우리는 스토리나 플롯에 대한 개론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 스토리를 가장 예술적으로 집약하고 압축시킨 것이야말로 플롯이니, 플롯이 없는 소설은 상상하기 힘들다는 것도 이쯤 되면 당연한 지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긴박한 플롯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플롯의 '예술성'이란, 좀 야박한 표현을 쓰자면 '인위성'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문학은 독특한 플롯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예술을 대하는 태도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예컨대 판소리는 정교한 플롯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의 예술은 기층민중과 분리된 예술이 아니라, 민중들의 삶 속에서 그리고 그들의 노동과 삶의 애환에서 동떨어져 존재하는 '예술 그 자체'로서의 예술은 결코 아니었다. 그리 숙달되지 않는 비전문가에 의해 때로는 요령부득으로, 그리고 보다 중요하게는,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고도의 예술이라는 자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생성되어 온 것에 지나지 않았다. 분재가 일본 예술의 한 특징이라면 볼품없이 굽은 나무는 우리 문화의 한 특징을 시사하는 것이라는 비유로, 우리의 예술이 지닌 비인위성을 대신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볼 때, 이문구의 소설은 가장 우리 것에 가까운 플롯과 문체적 특징을 활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비표율적으로 보이는 구성상의 혼선, 읽기 힘든 요설체의 난무, 의지적인 주인공도 지적인 서술자도 등장하지 않는 소설적 구성 등은 그만의 특징이기도 하거니와, 잘 따져 보면 우리의 전통문화가 가지고 있는 어떤 힘이기도 한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셋째, 이문구 소설의 특징으로 문체를 꼽는 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문체의 남용이 산문의식을 약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지적이 그간에도 수차 있었고 필자도 그런 생각을 피력한 적이 있었다(&amp;lt;전래적 농촌에 대한 회고적 시각&amp;gt;, &amp;lt;&amp;lt;문학의 존재영역&amp;gt;&amp;gt;, 세계사, 1994, 212~213쪽). '모르쇠'할 수 없어서 한마디씩 나서서 일장성토한다는 장면은 이문구 소설의 곳곳에 드러나 있는 징풍경이거니와, 그것은 마치 말뚝이의 한바탕 난장이 오히려 대립을 희화화하고 무화하는 기능을 겸했다는 지적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 문체는 분명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것이 최근의 필자의 생각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넷째, 그렇다면 이문구 소설의 주제는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그의 작품을 읽어야 하는가. 그는 1970년대의 독재정치 시절에 가장 앞장서 반독재 투쟁을 주도해 갔던 작가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가 그때 한 일은 무엇이고, 지금 그가 하고 있는 일은 과연 1970년대의 그가 했던 일과는 어떤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그가 내세우고 있는, 그리 희망도 의지도 없는 농민들, 양반 행세에 바쁜 그들의 삶의 자세는 1970년대의 반독재 투쟁에, 또 1990년대의 새로운 사회현실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을까.&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2. 이문구의 초기작이라 할 수 있는 &amp;lt;관촌수필&amp;gt;, &amp;lt;암소&amp;gt;, &amp;lt;추야장&amp;gt;에는 궁핍한 농촌의 현실이 너무도 암담한 그것으로 담담하게 서술된다. 그 세계는 문명이랄까 지성의 몫이 결코 틈입할 수 없는 어둠의 세계를 이룬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추야장&amp;gt;은 그 단적인 예이다. 윤만이라는 청년이 있다. 능애라는 처녀를 사랑하여 결혼하고자 하나, 그야말로 집도 절도 없는 형편으로 신접살이할 만한 방 한 칸 구할 수 없다. 게다가 능애는 애를 임신하였으니, 읍내의 병원에 몰래 찾아가 임신중절수술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윤만은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난생처음으로 도둑질을 하는데 공교롭게도 능애는 그날 밤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다. 두 남녀의 길이 엇갈리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이 작품의 구성도 그 남녀의 사연 못지않게 산만하다. 윤만과 능애라는 젊은이들의 연애 이야기가 중점에 놓여 있긴 하나, 능애 어머니 뚝셍이댁이 모습이 너무 생생하고 해학적으로 그려져 있어 독자들도 뚝셍이댁의 재미있는 일화에 잠깐씩 한눈을 팔기 십상이다. 나이 오십에 가까우나 아직까지는 색탐을 버리지 못해 사이비 종교의 접신원이라는 사내와 같은 마을의 장만덕 사이에 오가는 뚝셍이댁의 모습은 가히 희화적이다. 이 작품에는 염전에 의존해 살아가는 인생들의 한심한 작태가 총집결해 있는데, 윤만과 능애도 그 같은 부류의 위인들이다. 작가는 귀뚜라미 길게 울고 사연이 많은 가을밤의 이미지 ) 제목 '추야장'이 그것이다)를 빌려 이들의 삶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는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여기서도 구성상의 산만함을 지적하는 일은 간단하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해 보면, 그는 이러한 암담한 고향의 현실을 그리는 데에 있어서 어떤 소설적 구성도 필요하지 않았었는지 모른다. 고향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 세계는 절절한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amp;lt;관촌수필&amp;gt;이 실린 이문구의 소설집 &amp;lt;&amp;lt;관촌수필&amp;gt;&amp;gt;, &amp;lt;우리동네&amp;gt;연작인 &amp;lt;&amp;lt;우리 동네&amp;gt;&amp;gt;는 모두 이러한 의식의 소산으로 보인다. &amp;lt;&amp;lt;관촌수필&amp;gt;&amp;gt;의 작품 후기를 통해 작가는 &quot;실화를 그대로 필기한 &amp;lt;화무십홍&amp;gt; 같은 것도 있고, &amp;lt;여요주서&amp;gt;, &amp;lt;월곡후야&amp;gt;처럼 지금도 그 자리에 살고 있는 동창생이나 친척의 이야기도 있으며, 후제 내 자식이나 조카에게 읽히기 위해 소설이니 문학이니를 떠나 눈물을 지어 가며 쓴 고인에 대한 추도문 &amp;lt;공산토월&amp;gt; 같은 글도 있다&quot;라고 말하고 있거니와, 소설을 쓰는 마당에 난데없이 추도문은 무엇이고 수필은 무엇이란 말인가.&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관촌수필&amp;gt;이 '소설이니 문학이니'하는 것보다, 내 자식이나 조카에게 읽히기 위한 글로 씌어졌다는 고백은 주목을 요한다. 이 연작소설의 제목이 드러내는 '수필'이 그러하고, 전의 양식을 차용한 &amp;lt;유자소전&amp;gt;도 그 일종이거니와, 소설의 형식적인 요건이나 배려를 애써 탈피하려는 작가의식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amp;lt;관촌수필&amp;gt;에 묘사된 고향 관촌리, &amp;lt;명천유사&amp;gt; 속의 최서방과 옹점이야말로 작가가 실제로 경험했던 삶 자체에서 한치도 어긋나지 않는 날것의 '사실'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amp;lt;명천유사&amp;gt;의 마지막 한 대목은 작가 이문구의 일생을 요약하는 데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amp;nbsp;&lt;/p&gt;
&lt;blockquote data-ke-style=&quot;style3&quot;&gt;&amp;nbsp;&lt;span style=&quot;font-family: 'Noto Serif KR';&quot;&gt; &amp;nbsp;나는 지금도 네 통의 허름한 편지를 생애의 큰 기념품으로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받은 순서대로 말하면 첫째가 그렇게 장터에서 만나 헤어지고 두어 달 후에 온 최서방의 편지요, 둘째는 &amp;lt;공산투월&amp;gt;의 주인공인 신석공의 편지요, 셋째는 나를 문단에 내보낼 무렵 동리 선생이 보낸 원고지 반 줄짜리의 편지이며, 넷째는 &amp;lt;변사또의 약력&amp;gt;의 주인공으로, 공사판에서 나와 오 년 동안 함께 일했던 변판술 영감의 엽서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Noto Serif KR';&quot;&gt;-&amp;lt;명천유사 490~491쪽&amp;gt;&lt;/span&gt;&lt;/blockquot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래서 &amp;lt;명천유사&amp;gt;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ㄱ오의 탄식은 소설이라는 '허구'보다는 날것의 '사실'로 우리에게 전달될 때 더 깊은 감명을 준다. 사실에 입각한 이러한 독백은 &amp;lt;유자소전&amp;gt;, &amp;lt;장곡리 고욤나무&amp;gt; 속에서 다시 되풀이되는 요소이거니와, &quot;아아, 그때는 왜 이까짓 단돈 몇 만 원도 내게는 없었던 것일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원통한 일이었다&quot;라는 작가의 육성이야말로 이 작품의 진실성을 보장해 주는 요소인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의 농촌 묘사에 나름의 울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보리쌀 한 되가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등등 예사로 등장하는 불만이 그것이거니와, 미곡수매와 농약과 농기구, 생활용품 구입에 미치는 행정편의주의, 통일벼와 노풍을 강권하고 무작정 퇴비증산을 외치는 관청과의 관민대립 문제, 바쁜 농사철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출석 부르는 데 한 시간, 담배 한 참에 한 시간씩 낭비하는 민방위교육의 허실, 가격정책의 부재에 따른 돼지파동, 유흥업의 농촌침투, 영농기계화의 허실, 농지의 자유로운 매매를 제약하는 제반 법률의 문제, 교육문제, TV공해에 이르기까지 농촌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언급은 매우 다양하다. 작가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작가 특유의 입담과 해학을 곁들여,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비교적 여유 있고 넉넉한 문체로 풀어 서술하고 있다. 특히 농민의 입장을 이해하고 돕기보다는 관청의 위세에 힘입어 그들을 닦달하기에 바쁜 관리들에 대한 불신과 적개심은 작품 곳곳에 깔려 있다. 밀주단속을 하기 위해 동네에 들이닥친 세무서원을 따돌리기 위해 이장 부인은 다음과 같이 거짓 방송을 하는데, 그 능청스럽고 천연덕한 모습은 예전부터 농민과 관리 사이에 내려왔을 해묵은 대립관계를 잘 요약하고 있다.&lt;/p&gt;
&lt;blockquote data-ke-style=&quot;style3&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Noto Serif KR';&quot;&gt;&amp;nbsp; 그녀는 생전 처음 마이크를 쥐어 보면서도 숫티라고는 없이 말씨부터 능청스러웠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Noto Serif KR';&quot;&gt;&amp;nbsp; &quot;시방 기별 온 것을 알려드립니다. 누가 와서 그러는디, 놔 멕이는 개를 찍어 간다고, 지금 막 우리게루 사람덜이 떠나더라구 헙니다. 개를 단단히 감추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quot;&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Noto Serif KR';&quot;&gt;&amp;nbsp; 거나하여 구들목에 늘어진 채 늑놀던 사람들이 방송도 꺼지지 전에 불 본 듯이 일어났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Noto Serif KR';&quot;&gt;&amp;nbsp; &quot;세무서에서 나온단다-&quot;&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Noto Serif KR';&quot;&gt;&amp;nbsp; 윤이 안으로 뛰어 들어가며 소리 질렀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Noto Serif KR';&quot;&gt;- &amp;lt;우리 동네 리씨 461~462쪽&amp;gt;&lt;/span&gt;&lt;/blockquot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도시와 농촌 간의 불평등관계와 이에 따른 농민들의 소외의식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는 것, 이를 작가는 씁쓸하면서도 희화화된 풍경을 통해 잘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작품들은 그러한 농촌의 궁핍에 대한 정치적 분노, 경제적 논리에 따른 도식보다는 보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태도로 바뀜을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농민 문제를 정치나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기보다는, 그리고 농촌을 도시의 대립공간으로 보기보다는 보다 통합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태도가 강하게 드러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여기에서 농촌의 문제는 비단 농촌의 경제적 위기와 연관된 것은 아니고, 우리 삶 전체를 지배하는 보다 근원적인 위기로 읽힌다. 농민의 타락은 결국 도시인의 심성의 타락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말하자면 최근의 작품은 예전 농촌의 지배적인 분위기였던 극도의 궁핍이 어느 정도 사라지고 농민의 의식도 한층 진전되어 그의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은 도시와 농촌을 동시에 비교할 수도 있게 되고, 관의 의례적인 절차가 지닌 허실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비판할 만한 안목과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 농촌의 피폐가 농민의 피해에 그치지 않고 도시인의 황폐와 나아가서는 문명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는 지적이 여기에는 포함되어 있다. 농약에 찌든 채소를 도시인이 먹어야 하는 것, 도시문화의 농촌침투로 농촌사람들의 심성이 무참하게 짓밟히고 있는 것은 작가의 관찰에 의하면,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농민의 세계관을 작가가 가조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도시의 발달이 농촌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는 지적 외에도 농촌의 희생이 결국은 도시와 인간의 파괴에까지 이른다는 경고를 작가는 중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문제의식 때문에 그의 관심은 농촌의 경제적 실상에 대한 고발의 차원에서 점차 인간의 도리에 대한 탐구로 바뀌어 간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3. &amp;lt;유자소전&amp;gt; (1991)을 보자. 이 작품의 앞머리에 애초에 심성이 맑고 깨끗하였으며 매사에 생각이 깊고 침착했던, 많은 문인들의 친구였고 충청도 어휘의 보고였다는 유재필의 일대기를 &quot;그의 생애는 풀밭에서 뚜렷하고 쑥밭에서 우뚝하였다&quot;라고 요약하고 있다. &quot;풀밭에 뚜렷하고 솔밭에 우뚝한 것&quot;은 과연 무엇일까.&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나무의 은유, 나무를 예찬하던 양반문화권의 수사법이지 않을까. 필자는 이문구 작품의 주제를 '나무의 상상력'을 통해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십 몇 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그가 동구 밖에 서 있던 토정 이지함이 심었다는 4백 년 전의 왕소나무가 베어져 없어진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고향의 몰락을 실감하는 것은 그 한 예이다. 그에게 있어 농민의 처지는 긍정적인 경우이건, 부정적인 경우이건 간에 곧잘 나무에 비견된다.&amp;nbsp;&lt;/p&gt;
&lt;blockquote data-ke-style=&quot;style3&quot;&gt;&amp;nbsp;&lt;span style=&quot;font-family: 'Noto Serif KR';&quot;&gt; &quot;두구 보니께 이 고욤나무만이나 쓸다리 읎는 나무두 드물레 그려. 과일나문가 허면 그게 아니구, 그게 아닌가 허면 그것두 아니구...... 어린것 같으면 감나무 접목허는 대목으로나 쓴다 건만, 그두저두 아니게 늙혀 노니께 까치나 꾀들어서 시끄럽지 천상 불땔감이더먼.&quot;&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Noto Serif KR';&quot;&gt;-&amp;lt;장곡리 고욤나무 511쪽&amp;gt;&lt;/span&gt;&lt;/blockquot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아무짝에도 없는 고욤나무를 바라보며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격, 이 땅의 농민의 처지가 바로 그러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보태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인물묘사에는 지주이건 농민이건, 심지어는 남로당 위원장이건 관계없이 나무의 상상력이 덧보태져있다. 땅이 곧 하늘인 미분리의 세계의 중심에 서 있는 나무, 계절의 변화에도 견디고 인간보다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나무가 상징하는 안정성과 불변성, 향일성과 수직성은 &quot;풀밭에서 뚜렷하고 솔밭에서 우뚝&quot;한 유재필로부터, 땅을 하늘로 알고 살아온 &amp;lt;우리 동네&amp;gt; 연작의 각성바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다. 그들은 나무들이 그러하듯, 넉넉한 풍자와 해학을 대표한다. 근본이 든든한 보수주의자로서의 그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이 이 대목이거니와, 그가 '나무'를 통해 보여 주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가 그리는 농촌이란 양반스러움과 순박함이 아직까지도 최고의 미덕으로 존중되어야 하는 공동체일 뿐이며, 농촌에 파급된 각종 문명의 이기라든지 제도조차도 그의 관점에 따르면 천박한 것에 지나지 못한다. 따라서 그는 농촌의 문제를 경제적인 동기에서 파악하지 않는다. 그가 정작 안타까워하는 것은 농업생산물이 터무니없이 싸서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든가 농정당국이나 농업협동조합이 제대로의 기능을 다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가 정작 안타까워하는 것은 농촌에서의 전원적인 삶의 파괴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염무웅이 그의 작품을 두고 &quot;잃어진 육친과 쫓겨난 고향에 대해 바치는 최대의 문학적 헌사요 낳아 길러 준 땅에 되돌리는 가장 귀한 갚음&quot; (&amp;lt;도시, 산업화시대의 문학&amp;gt;, &amp;lt;&amp;lt;민중시대의 문학&amp;gt;&amp;gt;, 창작과 비평사, 330쪽)이라고 말할 때에도 거기에는 봉건적인 질서의 와해에 대한 작가의 아쉬움 같은 것이 짙게 배어 있을 따름이다. 농촌의 급작스런 변모와 전통적인 질서의 해체과정을 통해 그가 정작 보여 주고자 하는 바는 인간의 도리에 대한 재각성, 시세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나름의 주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훈장의 가르침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복고주의자이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의 문체가 적절히도 보여 주는 것이지만, 그가 정작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사농공상으로 대표되는 질서의 와해, 농촌총각이 제 나이에 장가조차 들지 못하는 것 등등의 자연의 체질을 위반한 인공적인 질서에 대한 반감이다. 그 반감은 대부분 군자와 소인간의 대립에서 유래한 것처럼 보이는데, 물론 작가가 서 있는 곳은 군자의 자리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4.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전래적 농촌에는 '잉여'의 부분이 없다. 길가의 개똥도 퇴비로 혹은 약으로 사용되는 것이며, 사람 또한 그가 불구자이든 혹은 생활력이 없는 노인이든 상관없이 다 나름의 몫을 가지고 있다. 같은 이치로서 농촌에는 실업자 또한 없다. 노름과 술로 겨울을 나는 경우가 있다하더라도, 굳이 따진다면 그것은 계절적 실업의 형태일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잉여의 몫이 담당해야 할 긍정적인 측면이 도시에는 없다. 도시에는 '효율'만 남아있을 뿐이다. 당장 일하지 ㅇ낳으면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되며, 일자리가 없는 자들은 범죄자나 타락자로 인정된다. 농촌에서의 '잉여'는 도시에서는 '비효율'로 단죄된다. 인정을 기반으로 하는 농촌사회의 윤리와는 전연 판이하게, 효율만으로 인간을 가름하는 도시의 논리는 이처럼 냉혹하며 반인간적이다.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효율 중심사회인 근대에 대한 비판을 읽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인위성을 강조한 효율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강요와 폭력으로 귀결된다. 군대사회, 도시 사회야말로 효율 중심 사회 아니던가. 작가 이문구는 그 효율이라는 허울 아래 희생되는 땅의 근본과 사람의 도리에 대한, 거대한 반성의 자리를 마련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상 대충 살펴본 바와 같이 그의 작품은, 문체는 물로 ㄴ구성에 이르기까지 대단히 탈논리적이다. 예전의 우리 문체가 그렇게 논리적인 것은 아니었고, 그러니 현재의 소설 또한 그러한 자연스러운 문체를 따르면 되는 것이지 그리 논리적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라는 것이 그의 문체론적 의식이니, 문체가 구수하다면 그 냄새를 맡고 문체가 흥겹다면 그 노래를 들으면 그만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에서 좋은 것이라곤 문체밖에 없다는 식의 비약으로 이어지는 것은 온당치 못할 것이다. 이문구가 내세우고자 하는 주제 또한 문체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성격의 것이어서 일단 그 이문구식의 문체를 통과하지 않으면 작품의 이해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 참고 문헌&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권영민 / 한국현대문학사 2 / 민음사 / 2007&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김윤식 외 / 한국현대문학사 / 현대문학 / 2006&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김상태 / 문체의 이론과 해석&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김만수(문학평론가) / 땅의 근본과 사람의 도리에 대한 성찰-이문구&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유승현 / 이문구 소설의 서술 특성 연구 - 관촌수필을 중심으로&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최용석 / 이문구 소설 문체의 형성 요인 및 그 특징 고찰&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고인환 / 이문구 소설에 나타난 근대성과 탈식민성 연구&lt;/p&gt;</description>
      <category>관촌수필</category>
      <category>농민소설</category>
      <category>문체</category>
      <category>우리동네~씨</category>
      <category>이문구</category>
      <author>돈많은한량이꿈</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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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sora-2878.tistory.com/entry/%EC%9E%91%EA%B0%80-%EC%9D%B4%EB%AC%B8%EA%B5%AC%EC%9D%98-%EC%83%9D%EC%95%A0%EC%99%80-%EA%B7%B8%EC%97%90-%EB%8C%80%ED%95%9C-%ED%8F%89%EA%B0%80#entry28comment</comments>
      <pubDate>Wed, 24 May 2023 11:29:42 +0900</pubDate>
    </item>
    <item>
      <title>홍명희 &amp;lt;임꺽정&amp;gt; 줄거리 및 핵심정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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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줄거리&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임꺽정은 경기도 양주골 백정인 임돌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놈'인데 부모를 걱정시킨다고 '걱정'이라고 하던 것이 '꺽정'으로 되었다. 꺽정을 열 살 때 갖바치의 아들과 결혼하 누이를 따라 서울로 와서 갖바치와 같이 살면서 그에게 글을 배운다. 양주팔은 본래 학식이 높은 데다 묘향산에 가서 도인 이천년에게 천문 지리와 음양 술수를 배우고 와서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학문에 두루 통달하여 당대의 명망 높은 조광조 등과 교유한다. 꺽정이는 글공부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검술을 익힌다. 이때 박유복과 이봉학은 임꺽정과 의형제가 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갖바치는 기묘사화를 보고 나서 혼란스런 정국을 예견하고 임꺽정을 데리고 전국을 유랑한다. 꺽정은 곳곳에서 백성들의 고난에 찬 삶의 모습들을 접하게 되며 백두산에 가서 황천왕동이 남매를 만나고 황천동이의 누이 운총과 결혼하여 양주로 돌아와 아들 백손을 낳고 평범하게 산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러나 임꺽정은 서른 다섯 살이 되자 여러 도적과 합세하여 봉산 황주 도적이 되며, 38세 때, 6명의 산적 두령과 함께 의형제 결의를 맺는다. 그들은 황해도 산적들의 소굴인 청석골을 차지해서 도적질을 하면서 평산에서 관군과 접전해서 승리한다. 그러는 가운데 한양 나들이를 갔다가 여러 첩을 맞이하여 방탕하게 지낸다. 그러다 다시 청석골로 돌아왔는데, 부하와 부인이 관군에게 잡히는 위기를 당한다. 전옥을 파괴하고 부하와 부인을 구출한 꺽정은 위험을 느끼고 소굴을 여러 군데로 분산시킨다. 그 해 관군과의 접전을 벌인 평산 싸움에서 관군이 패하고 임꺽정이 승리한다. 이것이 이 작품의 마지막 대단원으로, 임꺽정이 잡혀 처형되는 생애의 마지막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핵심정리&lt;/h2&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성격 : 현실비판적&lt;/li&gt;
&lt;li&gt;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lt;/li&gt;
&lt;li&gt;공간적 배경 : 조선조 황해도 청석골&lt;/li&gt;
&lt;li&gt;시간적 배경 : 조선 중기 (명종조)&lt;/li&gt;
&lt;li&gt;제재 : 소외된 하층민의 삶&lt;/li&gt;
&lt;li&gt;주제 : 소외된 하층민의 저항과 사회적 모순을 타파하려는 한 인간의 삶과 의지&lt;/li&gt;
&lt;/ul&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등장인물&lt;/h2&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임꺽정 : 신분제도의 타파와 신분 상승의 추구라는 모순된 양면성을 지닌, 초인적인 힘과 의지를 가진 산적 두목&lt;/li&gt;
&lt;li&gt;돌이 : 꺽정의 아비, 풍병 든 노인&lt;/li&gt;
&lt;li&gt;운총이 : 꺽정의 아내&lt;/li&gt;
&lt;li&gt;섭섭이 : 꺽정의 손위 누이&lt;/li&gt;
&lt;li&gt;백손이 : 꺽정의 아들, 운총이가 백두산에서 낳아가지고 온 아이&lt;/li&gt;
&lt;li&gt;팔삭동이 : 꺽정의 이복동생, 절름발이&lt;/li&gt;
&lt;li&gt;황천왕동이 : 꺽정의 처남, 걸음 재기로 유명한 사람&lt;/li&gt;
&lt;li&gt;이봉학 : 종실의 서자로 옥당 하인이 된 이학년의 아들&lt;/li&gt;
&lt;li&gt;박유복 : 농부의 유복자로 꺽정이 친구&lt;/li&gt;
&lt;li&gt;배돌석 : 경상도 김해 사람, 돌팔매 잘 치는 사람&lt;/li&gt;
&lt;li&gt;박연중 : 김덕순의 처 유모의 아들로 장사로 이름 있음. 기묘 옥사 중에 김덕순과 같이 망명하였다가 아내 황해도 평산 운달산에서 화적 괴수 노릇을 함&lt;/li&gt;
&lt;li&gt;생불스님 : 경기도 죽산 칠장사의 중, 속인 성명은 양주팔, 본래 함흥 고리백정인데 이 장곤의 연줄로 서울에 와서 동소문 안에서 갖바치 노릇을 함&lt;/li&gt;
&lt;li&gt;&amp;nbsp;윤원형 : 왕대비 동기. 당시 권세 있던 인물&lt;/li&gt;
&lt;li&gt;정난정 : 윤원형의 첩&lt;/li&gt;
&lt;/ul&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amp;lt;&amp;lt;임꺽정&amp;gt;&amp;gt;의 등장인물&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임꺽정은 조선 후기 실존했던 화적패의 우두머리로, 당대의 사회적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인물이다. 임꺽정과 여러 두령들의 신분은 백정, 양반의 서자, 상민의 유복자, 역졸 신분의 싸움패, 도망 관노의 자식 등 천대받고 억압당하던 하층 민중이다. 작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사회적 상황과 민중들의 삶을 기록하고자 한 것이다. 이 작품은 민중과 지배층과의 싸움을 세밀하게 그려 내면서 우리의 민족적 정서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문학사적 의의&lt;/h2&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당시 사회 변동의 전모를 그림으로써 역사 소설의 독특한 성격을 강력하게 반영하고 있다&lt;/li&gt;
&lt;li&gt;&amp;lt;&amp;lt;임꺽정&amp;gt;&amp;gt;은 방대한 분량의 장편 소설로서 인물 설정과 세부 묘사가 1930년대의 다른 소설과는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lt;/li&gt;
&lt;li&gt;조선 시대 민중들의 사람에 대한 의식과 정조를 일관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lt;/li&gt;
&lt;li&gt;상층 사회의 타락에 대한 반성과 하층 사회의 변혁 의지를 통한, 사회 개혁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하는 작가의 민중 의식이 드러난 작품이다&lt;/li&gt;
&lt;li&gt;토속어의 구사가 뛰어나며, 근대 서구 소설적 문체가 아닌 이야기식 문체를 사용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1930년대에 성행한 한국 역사 소설을 현실 도피나 비유적 장치, 복고주의로만 특징지을 수 없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또한 이 작품의 리얼리즘 정신은 1970년대에 들어서 &amp;lt;&amp;lt;장길산&amp;gt;&amp;gt; 이나 &amp;lt;&amp;lt;객주&amp;gt;&amp;gt;등의 장편 역사 소설로 계승되었다.&lt;/li&gt;
&lt;/ul&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amp;lt;&amp;lt;임꺽정&amp;gt;&amp;gt;의 성과와 한계&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 작품은 불투명한 역사의식을 드러냈던 일제 강점기의 많은 역사 소설과는 달리, 현재 역사의 구체적 전신으로서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다룸으로써 상황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제시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는다. 이 시기 역사 소설들이 왕후장상과 그 주변 인물들을 소재로 하여 이들을 역사 발전의 주체인 것처럼 그림으로써 과거와 현재의 역사적 연속성을 망각한데 비해, 이 작품은 하층 계급을 주인공으로 하여 민중사 중심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 성과&lt;/p&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의식 : 조선인의 삶과 조선 민중의 의식과 희망을 드러냄&lt;/li&gt;
&lt;li&gt;소설형식 : 전통적인 인물 열전 방식과 강담(강연이나 강의식의 말투로 이야기함. 또는 그런 이야기)방식을 혼합함&lt;/li&gt;
&lt;li&gt;문체 : 정밀한 세부 묘사&amp;nbsp;&amp;rarr; 조선의 민간 풍속, 설화, 속담, 고어, 토속적 어휘&lt;/li&gt;
&lt;/ul&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한계&lt;/p&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반복적이니 사건에 대하여 너무 정밀한 묘사를 시도하여 구성이 산만함&lt;/li&gt;
&lt;li&gt;임꺽정과 청석골 밖 민중들과의 관계가 거의 형상화되지 않음&lt;/li&gt;
&lt;li&gt;임꺽정의 투쟁 목표와 명분을 분명히 부각시키지 못함&lt;/li&gt;
&lt;li&gt;일부 두령들의 입산 계기를 사회 계급적 면에서 분명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개인적이고 우연적인 것으로 처리함&lt;/li&gt;
&lt;/ul&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amp;lt;&amp;lt;장길산&amp;gt;&amp;gt;과 &amp;lt;&amp;lt;임꺽정&amp;gt;&amp;gt;의 비교&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의적 소설의 계보는 &amp;lt;&amp;lt;홍길동전&amp;gt;&amp;gt;&amp;nbsp; &amp;rarr; &amp;lt;&amp;lt;임꺽정&amp;gt;&amp;gt; &amp;rarr; &amp;lt;&amp;lt;장길산&amp;gt;&amp;gt; 으로 이어진다. &amp;lt;&amp;lt;장길산&amp;gt;&amp;gt;과 &amp;lt;&amp;lt;임꺽정&amp;gt;&amp;gt;은 우선, 신분적으로 천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결코 좌절하지 않는 민중들의 생명력을 표현함으로써 역사의 주인으로서의 민중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둘째, 민중 의식의 관점에서 과거를 평가하고 이를 도구화함으로써 현재를 조명하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 셋째, 역사의 해석에 있어 민중의 가치고양이 뚜렷하고 반란과 반역의 정치학에 근거하고 있으며, 넷째 역사의 조망법이 사실의 실증법을 넘어서 계급적인 이분법과 대립의 극대화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amp;lt;&amp;lt;임꺽정&amp;gt;&amp;gt;에 대한 평가&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 작품에 대해서 이광수는 천하의 기서이고 조선을 있는 그대로 사생한 것이며 조선의 모습을 레코드한 것이라고 했다. 한설야는 우리 문학의 최대 수확이며 조선어의 보고라 했고, 이기영은 작품의 방대한 규모와 수준에서 최고의 성과를 거둔 작품이라는 점, 시대양심이 살아있는 것과 풍부한 어휘의 문제 등을 특징으로 지적했다. 이효석은 조선문학의 큰 전적으로, 박명희는 우리 문학 초유의 걸작이며 세계문학의 자랑거리로 평가하였고, 박종화는 바다와 같은 풍부한 어휘, 묘사, 구상 등이 조선적 특질을 갖는 것으로 크게 평가한 바 있다. 이들 외에도 정인보, 김남천, 김동환, 김윤경, 김상용 등이 한결같이 찬사를 아끼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당시 좌우의 문학인이나 독자들이 이 작품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러나 임화는 &amp;lt;세태소설론&amp;gt;을 근거로 하여 &amp;lt;&amp;lt;임꺽정&amp;gt;&amp;gt;의 문학적 성과와 이념의 방향에 대해 다소 비판적 입장을 취하였다. 임화는 1930년대 우리 소설의 주요한 경향의 하나로 세태소설을 꼽고 있다. 그는 &amp;lt;&amp;lt;임꺽정&amp;gt;&amp;gt;역시 &quot;우리들과 같은 성격이나 우리가 탐내는 뚜렷한 성격도 없고 그 성격과 환경과의 생동하는 갈등도 없으며 따라서 작품을 관류하는 일관된 정열도 없다. 단지 &amp;lt;&amp;lt;임꺽정&amp;gt;&amp;gt;의 매력은 그 시대의 여러 가지 인물들과 생활상의 만화경과 같은 전개에 있다&quot;라고 하여 세태소설의 범주에 드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임화는 '세태소설'의 개념을 명확하게 설정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대체로 사상성의 감퇴, 내성의 소설과 대비 되는 것, 즉 외향적인 소설을 가리킨다고 한다. &quot;더 자세히 말하자면 작가가 주장하려는 바를 표현할려면 묘사되는 세계가 그것과 부합되지 않고 묘사되는 세계를 충실히 살리려면 작가의 생각이 그것과 일치할 수 없는 상태&quot;의 소설이 세태소설이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quot;작가의 내부에 있어서 말하려는 것과 그리려는 것과의 분열&quot;을 통해 생산되는 것이 그것이라는 뜻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세태소설의 개요는 그러니까 사상이 빈약한 외형적 소설을 우선 뜻한다. 그리고 &amp;lt;&amp;lt;임꺽정&amp;gt;&amp;gt;도 채만식이나 백태원의 소설과 같이 세태소설의 범주에 든다. &amp;lt;&amp;lt;임꺽정&amp;gt;&amp;gt;에는 뚜렷한 성격을 가진 인물도 없고 성격과 환경과의 생동하는 갈등도, 작품을 관류하는 정열도 없다. 그리고 그러한 결함을 말하려는 것과 그리려는 것 사이의 분열에서 유래한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벽초</category>
      <category>소외된 하층민의 삶</category>
      <category>의적 소설</category>
      <category>임꺽정</category>
      <category>장편 역사 소설</category>
      <category>전지적 작가 시점</category>
      <category>현실비판적</category>
      <category>홍명희</category>
      <author>돈많은한량이꿈</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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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sora-2878.tistory.com/entry/%ED%99%8D%EB%AA%85%ED%9D%AC-%EC%9E%84%EA%BA%BD%EC%A0%95-%EC%A4%84%EA%B1%B0%EB%A6%AC-%EB%B0%8F-%ED%95%B5%EC%8B%AC%EC%A0%95%EB%A6%AC#entry27comment</comments>
      <pubDate>Wed, 24 May 2023 09:16:46 +0900</pubDate>
    </item>
    <item>
      <title>작가 벽초 홍명희의 생애와 사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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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홍명희의 출생과 그의 가계&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벽초 홍명희는 경술년에 국치를 당하자 자결한 열사 홍범식과 은진 송 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충북 괴산에서 1888년 7월 3일(음력으로 5월 23일)에 태어났다. 벽초는 불행하게도 세 살 되던 해에 생모인 은진 송 씨와 사별한다. 그의 어머니는 벽초를 출산한 뒤 산후에 병을 얻어 삼 년을 앓다가 1890년에 병사하였다. 그의 부친은 이듬해 한양 조씨가로부터 재취를 하여 그 사이에서 다시 3남 2녀를 얻는다. 이들 이복 남매 중에서 특히 바로 밑의 아우인 성희는 벽초와 우애가 싶어 3.1 운동, 언론계 생활, 신간회 활동 등을 함께하며 동지적 관계를 유지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유년기와 문재의 발견&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벽초는 다섯&amp;nbsp; 살 되던 해에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나 그 전에 이미 조부로부터 쪽지글을 받아 배우며 쉬운 글자는 익힌 뒤였다. 그 무렵부터 소년은 탁월한 식별력과 기억력을 통해 재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응석받이로 자란 데다가 잔병치레를 심하게 해서 집중적으로 공부에 몰두하지는 못한다.&amp;nbsp; 그가 여덟 살 되던 해 비로소 &amp;lt;소학&amp;gt;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quot;글 짓는다고 다섯 자 모아 만드는 것&quot; 즉 한시 짓기를 시작한다. 벽초는 열한 살이 되면서 소설에 맛을 들이기 시작한다. '한문만을 배우다가 소설을 읽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lt;/p&gt;
&lt;blockquote data-ke-style=&quot;style3&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quot;&gt;&amp;nbsp; 소설은 그해 정월 노는 때에 대고모부의 집에서 &amp;lt;&amp;lt;삼국지&amp;gt;&amp;gt; 한 권을 빌려다 놓고 첫권서부터 두서너 권은 집안 노인 한 분과 같이 보았다느니 보담 배웠고, 그다음 십여 권을 나 혼자서 배웠다. (중략) 그 뒤로는 길래 소설 보기에 반하여 &amp;lt;&amp;lt;논어&amp;gt;&amp;gt;, &amp;lt;&amp;lt;맹자&amp;gt;&amp;gt; 보다도 &amp;lt;&amp;lt;동주열국 전&amp;gt;&amp;gt;, &amp;lt;&amp;lt;서한연의&amp;gt;&amp;gt; 등속을 탐독하게 되었던 것이다&lt;/span&gt;&lt;/blockquot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 뒤 상경해서 학교를 다니면서도 친구들에게 &amp;lt;&amp;lt;수호지&amp;gt;&amp;gt;, &amp;lt;&amp;lt;서유기&amp;gt;&amp;gt;, &amp;lt;&amp;lt;금병매&amp;gt;&amp;gt; 등을 빌려 '밥 먹을 줄도 모르고' 소설 읽기에 열중했다 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결혼과 신지식의 습득&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열세 살이 되던 해인 1900년 벽초는 참판을 지낸 민영만의 딸과 어린 나이에 결혼하게 된다. 비록 처재당숙이기는 하나 을사년에 자결한 민영환도, 경술년에 자결한 그의 부친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벽초에게 유사한 정신적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만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벽초는 1901년 14세에 신학문을 배우기 위하여 상경을 하여, 15세가 되던 이듬해 중교의숙에 입학한다. 벽초가 다닌 중교의숙은 전통적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시대적, 사회적으로 매우 긴급한 기초 학문을 가르치던 시무 교육기관이었고 지배관료층이 운영하는 사립학교였던 것으로 보인다. 벽초의 &amp;lt;자서전&amp;gt;에서 중교의숙의 일어과를 졸업했다는 대목도 보이지만, 그곳에서 일어 및 수학 등 초보적인 근대학문 몇 가지를 배운 것 같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벽초가 중교의숙을 졸업하고 나서 괴산으로 귀향한 것은 18세가 되던 1905년 봄이다. 벽초의 마을에 일본인 부부가 양잠기술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그는 부친의 허락을 받아 그들로부터 일어회화를 배울 기회가 생긴다. 그것을 계기로 하여 벽초는 동경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동경 유학시절과 근대문학의 섭렵&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05년 말경 동경에 도착한 것으로 보이는 벽초의 동경 유학은 이듬해 봄 동경상업학교예과 2학년에 편입하면서 시작된다. 건성으로 대학에 들어가 속성으로 간판을 따는 많은 유학생들의 경우와 달리, 벽초는 &quot;일본말을 철저하게 배우고 신학문을 기초부터 시작하기 위해&quot; 중학교 진학부터 준비한다. 허세를 배격하고 실질을 존중하는 그의 성격이 여기서도 잘 나타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07년 그는 대성중학 3학년에 편입하여 1910년까지 같은 학교에 다닌다. 그의 독서는 대성중학 3학년 2학기 때, 즉 스무 살의 청년이 된 1907년 가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 무렵 그는 프랑스, 러시아, 일본, 영국 문학 등 동서고금의 걸작들을 가리지 않고 섭렵한다. 그러나 독서를 계속하면서 &quot;명랑하고 경쾌한 불란서 문학&quot;보다는 &quot;침통하고 사색적인 로서아 작품&quot;이 더 기질이 맞는다든지 같은 러시아 작품이라 하더라도 &quot;꼭 어떤 노인이나 선생이 설교하는 것&quot;같은 톨스토이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amp;lt;&amp;lt;죄와 벌&amp;gt;&amp;gt;이나 &amp;lt;&amp;lt;백치&amp;gt;&amp;gt;가 더 좋다든지 하는 문학적 기호를 나타내기 시작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는 일본 작가 중에서 나즈메 소세키의 작품을 좋아하여 그의 작품을 거의 다 읽었다고 한다. 시마자키 도송, 다야마 가타이, 도쿠토미 로카, 마야마 세이카, 마사무네 하쿠소오 등 주로 자연주의 계열의 작품을 독파해 나간다. 그러다 보니 당시 일본사회가 풍기문란으로 단속했던 자연주의 계열의 금서들도 많이 읽게 되었다. 벽초는 이때부터 자연주의 계열의 '색정적' 소설류와 무정부주의 사상서 등을 접하기 시작한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가장 배척하는 악마주의 또는 자연주의 계열의 문학을 벽초가 청년시절에 몰두했다는 것도 흥미롭고, 좌파사상가들의 금서를 일찍부터 읽었다는 사실도 주목되는 대목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동경시절의 교유관계&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벽초의 유학시절에 문일평, 이광수, 최남선 등 우리나라 신문학, 신문화에 큰 업적을 남긴 선구자들과 교우가 이루어졌다. 호암 문일평은 뒤에 민족사학자와 언론인으로 명성을 떨친 사람이다. 그리고 특히 이광수, 최남선과의 만남은 그들이 바로 우리 신문학의 개척자들인 점에서 그들을 함께 일러 우리나라의 삼천재로 부르게 된 점에서 더욱 흥미로운 일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amp;lt;후레자식 구락부&amp;gt;와 자유정신&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10년 이미 23세의 청년이 된 벽초는 깊은 회의와 번민에 빠져 귀국을 단행한다. 그의 번민은 1905년 이후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한 조국의 정치적 운명과도 무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비록 일본 땅이라고는 하지만 대가족의 장손으로 겪어야 했던 의무감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었고, 유교적 수신의 엄격주의로부터도 벗어나 바이런과 자연주의 작품과 금서를 읽는 자유를 누릴 수도 있었다. 유학시대의 벽초는 무한대의 자유정신 속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인습, 무지, 편견, 사대부가의 가통, 예절 따위를 대담하게 벗어나 보기도 하고, 그런 것들을 객관화하거나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혁명적, 반역적 사상도 경험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는 고루하고 고통스런 인습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amp;lt;후레자식 구락부&amp;gt;를 만들겠다고 했다. '막 자라고 배운 게 없어 버릇없는 놈'이라는 후레자식이 되겠다는 것은 청년시대에 한 청년이 가졌던 반항정신의 극치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오로지 어른을 섬기는 일(일부소학)이나 양반의 체통을 따지는 일 (양반조신)에만 젊은이들을 가두어 두는 전통사회 속에서 차라리 '후레자식'이 될지언정 순응하는 명문가의 모범생이 되기를 거부하고 싶었을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부친의 순국과 독립운동&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병조약이 체결되어 회의와 절망 그리고 번민에 빠져 지내던 벽초는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생일대 그의 삶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에 직면한다. 그의 부친인 홍범식이 경술국치를 당하여 자결한 것이다. 부친의 순국은 벽초에게 있어서 그가 식민지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그 방향이 되었고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었으며 생의 기본적인 원칙이 되었다. 아래의 글은 그의 아버지의 유서이다.&lt;/p&gt;
&lt;blockquote data-ke-style=&quot;style3&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Noto Serif KR';&quot;&gt;&amp;nbsp; 기울어진 국운을 바로잡기엔 내 힘이 무력하기 그지없고 망국노의 수치와 설움을 감추려니 비분을 금할 수 없어 스스로 순국을 길을 택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피치못해 가는 길이니 내 아들아. 너희들은 어떻게 하나 조선사람으로서의 의무와 도리를 다하여 잃어진 나라를 기어이 찾아야 한다.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말아라.&lt;/span&gt;&lt;/blockquot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벽초의 모든 사상과 행동의 선택에는 그의 부친이 기준이 되었따. 이를테면 그는 홍범식주의자였던 셈이다. 그는 부친의 삶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부친의 정신을 자신의 삶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그러므로 벽초의 문학, 사회사상, 정치적 선택 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결코 이 점을 스쳐 지나가선 안된다. 그가 소설을 쓰고, 평양을 가고 각종 애국운동을 전개한 배경에는 언제나 홍범식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며 홍범식의 아들로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하는 원칙에 따라 그의 모든 행위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잘 이해해 둘 필요가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벽초의 망명시대&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삼년상을 마친 벽초는 은둔생활을 끝내고 1912년 서간도를 거쳐 상해로 떠난다. 벽초가 상행 도착한 뒤, 동경 유학 시절의 막역한 벗이었던 문일평을 만나고 동제사의 총재인 박은식과도 처음 만난다. 일생 동안 서로 공경한 단재 신채호와의 만남을 비롯하여 조소앙, 한흥, 송전도 등과도 만나고 그의 아우인 홍성희와도 재회한다. 특히 창강 김택영과 예관 신규식 등 지도자적 입장에 있던 애국지사들과의 만남 역시 의미가 깊은 일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 당시에 무엇을 하였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모종의 독립운동을 시도하거나 적어도 개인적으로든 민족적으로든 미래를 궁리하고 걱정하며 살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벽초의 귀국과 만세시위&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벽초는 6년의 해외생활을 마감하고 같은 해 7월 19일 봉천을 떠나 귀국길에 오른다. 귀국 이후 약 반년 간이 벽초에게는 아주 평온한 마음으로 가족들과 오붓하게 생활할 수 있었던 시기로 보인다. 그러나 1919년 3월 1일 전국적으로 기미만세 사건이 발발하면서 벽초의 고난은 다시 시작된다. 그해 3월 19일 벽초는 고향인 괴산읍에서 만세시위를 이끌다가 일정에 피검, 투옥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서울생활과 언론계 투신&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20년 만기 출소한 벽초는 병약한 몸에 가난과 가족의 흉사와 혼사 등을 함께 겪는다. 괴산에서 더 이상 가족을 이끌 수 없게 된 벽초는 솔가 하여 상경한다. 그 해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창간되었는데 이듬해인 1921년 동아일보가 경영남에 봉착하자 주식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400여 명의 창업 주주가 참여한다. 이 속에는 벽초의 이름도 있다. 그러나 신문사에 자리를 잡은 것은 뒤의 일이고 그가 상경해서 먼저 직장을 정한 곳은 휘문고보와 경신고보였던 것 같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23년에는 조선도서주식회사에서 근무하고 1924년 1월 이광수가 쓴 사설 &amp;lt;민족적 경륜&amp;gt;이 &quot;일제 식민지 통치에 타협적인 자치운동노선을 시사함으로써 각계의 격렬한 성토와 동아 불매운동이 야기&quot;되자 동아일보는 안팎으로 일대 위기를 맞아 그 수습책으로 이승훈(사장), 벽초와 같은 민족주의자로 망명이 높은 인사를 이광수와 대체시킨다. 이들이 취임하면서 동아일보의 논조도 비타협적인 방향으로 진전된 결과 일제의 검열에 압수된 기사가 그전에 비하여 네 배 가깝게 늘어나기도 했다. 이 무렵에 벽초는 민족해방운동의 한 방향으로 신사상 즉 사회주의 사상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1923년 7월 홍명희, 홍성희, 이재성 등 16명이 '신사상연구회'를 창설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이론적으로 탐구하는 기회를 갖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24년 10월 29일 '신사상연구회'는 마르크스의 생일이 화요일이라는 데 근거해서 '화요회'로 명칭을 바꾸었고 회원도 점점 늘었다. 1925년 '화요회'가 중심이 되어 조선 공산당이 극비리에 결성된 점에 유의해 보더라도 벽초와 그의 아우 홍성희가 비록 소극적으로 참여했다고는 하나 상당기간 사회주의 운동을 계속했던 것으로 보인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벽초가 동아에 부임한 이후 가장 고나심을 쏟은 곳은 문학 분야인 것으로 확인된다. 1925년 1월에는 한국 신문 사상 최초로 신춘문예제도를 실시하여 한국문학의 미래를 개척하는 데 앞장섰다. 또한 개인적인 작업으로는 1926년에 단행본으로 간행된 &amp;lt;&amp;lt;학창산화&amp;gt;&amp;gt;가 1924년 6월 9일부터 동아에 산발적으로 발표된 것을 들 수 있다. &amp;lt;월요만화&amp;gt;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던 이 칼럼은 자신의 호에서 벽자를 파자한 백옥석이라는 필명을 사용한다. 뒤에 칼럼의 제명이 &amp;lt;학창산화&amp;gt;로 바뀌었는데, 문학, 역사, 자연과학을 위시하여 곤충학, 동물학, 의학 등에 이르기까지 박물학적 지식이라 부를만한 해박한 지식을 짧은 글에 담아 당시 독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벽초가 동아일보에 재직함녀서 있었던 단재와의 이야기를 두 가지만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벽초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단재의 역사연구물들과 &amp;lt;낭객의 신념나필&amp;gt; 같은 문예시론이 게재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동아일보가 민족개량주의적 타협노선으로 기울자 벽초에게 퇴사를 권유한 사실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amp;lt;조선사정조사연구회&amp;gt;의 가입과 벽초의 비타협적 민족주의&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25년 9월에는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이 중심이 된 &amp;lt;조선사정조사연구회&amp;gt;에 벽초도 가입한다. 당대 조선사회의 현실을 과학적,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창립된 이 연구회는 그러나 극좌적 사상을 거부하면서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이른바 준비론적 민족주의에 가까운 성격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 단체 말고도 벽초는 성격이 다른 여러 단체에 가입한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그의 사회참여 형식이 매우 모순되는 듯한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아 그가 관여한 단체가 성격이 상반되는 경우가 있으나 벽초가 선택한 기본 원칙인 민족해방투쟁과 그것을 추진하기 위해 필요했던 민족적 통합이라는 측면을 고려해 본다면 그것이 좌에 의해 추진되었는가 우익 인사들에 의해 구성되었는가 하는 점은 그에게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듯하다. 그의 일관된 원칙은 민족해방과 국권회복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25년 4월 동아의 방향 전환에 따라 벽초는 시대일보로 직장을 옮긴다. 매우 의욕적으로 일을 시작한 벽초는 동지들을 모두 불러들여 동아, 조선과 함께 삼대 민족지의 경합시대를 열었으나 재정난에 봉착하나 1926년 8월부터 휴간하고 끝내 폐간 조치를 당하고 만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26년 1월에는 그해 창간된 카프의 기관지 &amp;lt;&amp;lt;문예운동&amp;gt;&amp;gt;창간호에 &amp;lt;신흥문예의 운동&amp;gt;을 발표하였고 제2호에는 &amp;lt;예술기원론의 일절&amp;gt;을 발표하였다. 이로써 벽초는 카프의 맹원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박영희의 말대로 &quot;카프운동에 대한 동정자&quot;였다는 사실 정도는 확실하게 보여준 셈이 되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amp;lt;신간회&amp;gt; 활동과 &amp;lt;&amp;lt;임꺽정&amp;gt;&amp;gt;의 연재&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27년 1월 19일 벽초를 위시하여 문일평, 신채호, 안재홍, 한용운 등 28인의 이름으로 신간회 창립이 공표된다. 벽초의 지시에 따라 신간회의 강령, 규약 등 실무를 맡았던 사람은 이승복과 홍기문이었다. 신간회라는 회명의 작명자도 벽초였는데, 처음엔 신한회라고 했으나 총독부가 '신한'을 반대하자 '한'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간으로 바꾸어 '신간회'가 되었다 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신간회의 창립기(1927.02.15창립후~1929.06까지)를 주도한 사람은 조직부 총부간사 벽초였다는 것이 통설이다. 창립 일주년이 되던 1928년 2월 신간회는 지부가 123개에, 회원이 2만에 이르는 거대한 조직으로 성장한다. 조직의 상층부에서 지역지회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구성은 당시의 좌, 우, 중도세력 모두가 뜻을 합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권회복의 대도에 분파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벽초가 주동이 되어 이념과 분파를 벗어나 반제, 민족해방에 뜻을 같이하는 모든 그룹과 제휴한 것이 신간회 운동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신간회의 회원의 4할이 조선공산당원들이었고 1928년 공산당 검거사건으로 인해서 이들의 성향이 세상에 노출되자 신간회는 점차 비타협적 민족주의 경향으로 노선을 전환하게 되었고 마침내 1931년 5월 일제의 탄압으로 해체되고 만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런 풍파를 겪으면서도 1928년 11월 21일부터 그는 대하장편소설 &amp;lt;&amp;lt;임꺽정&amp;gt;&amp;gt;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백정 출신에 불과한 임꺽정이 주인공이 된데다 못된 양반층과 벼슬아치들을 혼내주면서 물건도 빼앗고 처첩을 거느리기도 하는 사건 자체가 반항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소설에 많은 논의와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런 점에서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작가는 학식과 문학적 재능에서 당대 제1의 평판을 들으면서도 실제 작품을 쓴 적이 없던 사람이었고 보면 그의 작품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을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해방과 월북&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벽초는 1945년 시 &amp;lt;눈물 섞인 노래&amp;gt;로 해방의 기쁨을 노래하였고 1945년 12월 15일에 결성된 조선문학가동맹의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해방 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흐름은 미군정 - 정치그룹의 난립 - 친일 부역자들의 부활 - 이승만 정권의 수립을 향해 전개되고 있었다. 당연히 단죄되어야 할 친일세력들이 되살아나 권력의 핵심 속에 서서히 자리 잡아가면서 그들의 세상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런 점에서 서울과 평양은 대조적이었다. 벽초에게 모든 행위와 삶의 기준, 원칙은 일본 식민통치에 대한 거부와 국권 회복이었다. 친일파가 득세하는 서울의 정치적 흐름을 보았을 때 벽초의 월북 선택은 당연한 것이었을 것이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대하장편소설</category>
      <category>벽초</category>
      <category>신간회</category>
      <category>월북</category>
      <category>임꺽정</category>
      <category>홍명희</category>
      <author>돈많은한량이꿈</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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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sora-2878.tistory.com/entry/%EC%9E%91%EA%B0%80-%EB%B2%BD%EC%B4%88-%ED%99%8D%EB%AA%85%ED%9D%AC%EC%9D%98-%EC%83%9D%EC%95%A0%EC%99%80-%EC%82%AC%EC%83%81#entry26comment</comments>
      <pubDate>Tue, 23 May 2023 21:04:0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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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작가 김정한의 생애와 문학세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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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김정한의 생애와 문학관&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요산이 농민소설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음은 1930년대 소설사의 주류가 농민소설이었음과 더불어 그 자신이 농촌출신이라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요산이 태어난 당시의 동래군 북면 남산리는 농촌이었으며 그 자신 중농의 아들이었다. 그는 생애의 상당기간을 농촌에서 보냈다. 집 부근의 범어사에서 설립한 명정학교를 마치고 서울의 중앙고보에 진학했지만 한 학기 뒤에는 고향의 동래고보로 전학했다. 동경 유학 중에도 그는 당시 학생들과 지식인들이 고향의 농민 조합에 가입하는 관례대로 동래농민조합의 조합원으로서 32년 양산농민조합 봉기사건의 피해조사와 농조 재건 등의 목적으로 개입하기도 했다. 이때 일 때문에 학업을 그만둔 요산이 7년간 교편을 잡은 곳이 경남 남해였다는 사실도 그에게 농촌과 농민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킬 수 있었던 근거가 된다. 아울러 외가와 처가가 모두 부산 인근의 농촌이라는 점에서 그에게 농촌, 농민의 삶은 친숙한 대상, 작가로서 배경과 인물들을 리얼하게 그릴 수 있는 세계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농촌에 기반을 둔 요산의 작가의식의 성격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요산이 일제시대에 인식한 농촌을 지역적 개념이 아니라 근대 문명을 앞세운 제국주의에 대립되는 민족적인 근거지로서의 농촌이라는 역사적 개념으로 볼 때, 당시 식민지 모순을 농촌문제에서 찾으려고 한 요산의 작가의식은 현실적 타당성을 획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가 부산시내에서 생활을 한 시기는 40년 11월 경상남도 면포조합에서 일하기 시작했을때 부터이다. 40년과 41년, 요산은 남해시절을 배경으로 한 &amp;lt;월광한&amp;gt;과 &amp;lt;낙일홍&amp;gt;을 발표하고, 사찰(범어사)을 배경으로 하였다는 점에서 &amp;lt;사하촌&amp;gt; 계열에 속하는 &amp;lt;추산당과 곁사람들&amp;gt;과 &amp;lt;묵은 자장가&amp;gt;를 썼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해방기 동인의 정치활동을 바탕으로 요산은 &amp;lt;옥중회갑&amp;gt;(1946)과 &amp;lt;설날&amp;gt;(1947)을 발표했는데 두 작품 모두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모스크바삼상회의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동안 우익의 습격을 받는 이야기를 다룬 &amp;lt;옥중회갑&amp;gt;은 K도 인민위원회 사무실을 공간으로 한정하고 있을 뿐 도시적 배경은 제시되지 않는다. 이에 비해 10월 인민항쟁 뒤의 좌익 지도자 가족의 형편을 내용으로 하는 &amp;lt;설날&amp;gt;은 10월 인민항쟁 이후 처음 맞는 설날의 지방도시 T시의 모습을 거리와 골목, 다리, 감옥, 공동묘지라는 장소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두 작품은 미군정하에서 수난을 당하는 좌익 지도자와 그 가족의 형편을 지방도시를 배경으로 해서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6.25전쟁 시 국민보도연맹으로 죽음의 고비를 넘긴 요산이 침묵 끝에 부산 근교 낙동강 하구의 작은 섬에 사는 반농 반어민 가족의 이야기인 &amp;lt;모래톱 이야기&amp;gt;를 통해 제기하였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급격하게 산업화되어 가는 도시 변두리 농촌이 30년대 일제 이후에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의식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요산이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문단 고착 이후의 자유당 친일 반공독재와 60년대 개발독재도 민족모순의 연장선상에서의 폭력이면서, 농촌을 타자화한 도시화, 인간부정의 근대화라는 작가의식이 유효했음을 뜻한다. 따라서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재개한 66년 이후 그의 작중인물들이 대부분 일제시대를 체험한 인물이라는 점은 요산자신의 연륜과 더불어 요산 작품세계의 주조, 주제가 근.현대사의 역사적 맥락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설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부산이라는 도시와 근교 농촌을 배경으로 한 요산 소설의 특성은 문학 일반적인 '도시소설'로 범주화 하기 힘든 요인이 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우리 현대소설의 문학적인 실천을 통해 나타나는 도시소설의 형태나 도시에의 관심의 차원을 두고 이재선이 분류한 6개의 유형을 빌려 요산소설을 살펴볼 때 그의 소설이 딱 들어맞게 적용되는 경우를 찾기는 어렵다. 앞서 살펴본 바대로 요산소설에는 사회변동기에 있어서의 노인문제를 다루는 노년학적 소설 유형, 사회적인 구성으로서 집단과 개인의 분절을 다루는 분열형 소설, 미리 짜여진 도시 이미지틀이나 유동성과 관계된 이미지 소설 내지 유동상태의 소설, 도시성 전반을 총괄적으로 제시하는 총괄형 소설에 해당하는 작품이 없다. 뿐만 아니라 도시 입성의 경험 소설의 범주에 든다고 볼 수 있는 &amp;lt;지옥변&amp;gt;도 차돌이의 일제시대의 체험과 관계된 친일파 교장의 재등장과 아버지와 울산이 아저씨의 대일청구권문제, 나아가 자유당 말기의 정치상황이 서사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완전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는 요산이 도시문제를 자신의 일관된 작품세계의 자장 안에서 다루었음을 말하면서 동시에 도시보다는 도시 근교 농촌에 더 익숙한 작가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즉 요산은 농촌과 농민에 바탕한 초기의 작가 의식을 60년대 이후 민중의식으로 바꾸면서 일관된 작품세계를 지속시킨 작가인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김정한의 초기 소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김정한은 &amp;lt;사하촌&amp;gt;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기 이전 두 편의 작품을 썼다. 그런데 첫 작품인 &amp;lt;구제사업&amp;gt;(1931)은 제목만 실리고 전문 삭제당하여 우리가 볼 수 있는 사실상의 첫 작품은 &amp;lt;&amp;lt;문학건설&amp;gt;&amp;gt;에 실렸던 &amp;lt;그물&amp;gt;(1932)이란 작품이다. 이 작품을 쓸 당시 김정한은 교원생활을 그만둔 뒤 문학을 할 것을 결심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와세다 대학 부속 제일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이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귀국한 뒤 양산농민봉기사건에 개입했다가 검거되어 결국은 학업을 중단하게 되었으며 10월경 &amp;lt;그물&amp;gt;을 발표했다. 이 작품에서 김정한은 소작인 송또쭐과 지주 박양산 및 마름 기주사와의 갈등을 다루고 있는데 특히 마름의 가혹한 소작인 착취를 보여 주고 있다. 마름 기주사의 횡포로 인해 소작을 부치던 논을 빼앗기게 된 송또쭐은 주재소로 가서 시비를 가리나, 여기서도 마름의 편을 들자 복수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이러한 소작인과 지주, 마름의 갈등관계는 &amp;lt;사하촌&amp;gt;에서는 보광사 승려지주와 소작인들 간의 갈등으로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농민들의 궁핍과, 이미 세속에 물들었을 뿐만 아니라 '천황폐하 만세' 따위를 외치는 사찰지주의 횡포, 그리고 이에 맞서는 농민들의 저항을 매우 직접적으로 보여 준다. &amp;lt;그물&amp;gt;에서도 등장했던 또쭐이라는 인물과 들깨를 중심으로 한 성동리 주민들의 위에 군림하고 있는 보광사 승려지주들은 단순한 지주일 뿐만 아니라 소위 황민화운동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터이라 식민지 지배체제의 논리를 전파하는 지배계층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들 지주계층과 함께 마을 주민이면서도 면소에 근무하며 마름일을 맡아보는 농사조합 평의원이자 마을 진흥회장인 진수와 교풍회장인 이주사는 가뭄에도 불구하고 혹독한 소작료를 정하는 횡포를 부린다. 이에 주민들은 보광사 농사조합으로 지불 연기를 호소하러 가지만 오히려 조합 이사에게 귀찮거든 논을 부치지 말라는 협박만 듣고 물러난다. 결국 소설 마지막에서 소작인들은 차압 취소와 소작료 면제를 탄원해 보려고 보광사로 찾아가게 된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지주와 마름의 횡포를 통해 당대 농민들의 절망적 상태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소작농과 지주 내지 마름의 대립이 식민지사회의 구조적이고 근원적인 대립구조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들 지주, 마름들의 직분 수행이란 다름 아닌 식민지 지배논리의 관철이라는 것을 제시함으로써, 농민들로 하여금 지주와 마름의 횡포가 개인적 간교함을 넘어선 식민지 체제하의 구조적 모순이라는 현실에 대한 인식을 가지게 만들고 그들의 분노를 집단적 항거라는 방식으로 표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같은 해에 발표한 &amp;lt;옥심이&amp;gt;의 이야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소작농의 절대 궁핍과 절망적 상태를 묘사한 이 ㅈ가품에서는 가난에 따르는 성의 문제 즉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윤리도 내팽개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 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러한 작품들 속의 당대 농민들의 삶에 대한 핍진한 묘사는 무엇보다도 그 자신의 체험을 철저히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생생하다. &amp;lt;사하촌&amp;gt;이 게재되자마자 김정한의 본가에 중들이 찾아와서 집에 불을 놓겠느니 하는 위협을 가했는데, &amp;lt;사하촌&amp;gt;에 나오는 몇몇 장면이 고향의 범어사와 거기에서 일어났던 일과 비슷한 데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이를 증명한다. &amp;lt;낙일홍&amp;gt;(1940)에서는 작가 자신의 벽지로의 전근과 그 동안 목격했던 조선인 교사에 대한 차별을 보여 준다. 이처럼 철저한 체험의 세계를 바탕으로 한 그의 작가적 자세는 한마디로 역사 속에서 가려진 부분을 드러내고 그것을 회복하려는 노력의 소산이다. 소외된 계층을 역사 속으로 끌어들이고 그들의 인간성을 회복시킴으로써 진정한 인간의 삶을 찾아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왜 문학을 자신의 업으로 삼게 되었는가 하는 이유에서도 알 수 있다. 그가 동래고보 4,5 학년 시절 처음으로 문학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이 아니고 민족적 울분에서 자연스럽게 발양된 것이라고 한다. 그는 문학을 택하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quot;작가나 시인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겪어야 했던 그 억울한 심정을 일기나 글로써 적곤 했다.......(중략)...... 남해보통학교 교사 시절부터 문학에 대한 뜻을 굳혔다. 항일일선에 못 나설 바엔 하다못해 글로써나 고발해 보겠다고&quot; 일제의 수탈과 억압이 심할 때 조국을 잃은 청년으로서 과감히 독립운동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그러한 자책감의 표현으로 농민 내지 민중의 한 맺힌 이야기를 하지 ㅇ낳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문학 자체가 삶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거나 혹은 해결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현실의 가려진 부분을 정확히 볼 수 있게 하며 또한 그러한 인식을 할 수 있을 때에만 이 민족의 독립이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문학을 선택하게 된 경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작품세계를 형성하는 가장 근원적인 것은 인간으로서의 양심적인 문제이며 인간의 기본적인 삶에 대한 염원이다. 그는 이념이나 논리 혹은 이상을 말하기 전에, 먼저 현실의 고통스러운 삶을 보여 주고 그러한 고통의 원인인 억압에 맞서 싸우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한 본연적인 인간으로서의 양심과 생활의 회복에 대한 강조는 그러나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울분의 토로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농민들에 대한 애정 더 나아가 민족의식의 차원으로 고양된다. 그 첫 단계가 바로 식민지하에서 고통받는 농민을 비롯한 민족적 현실의 고발인 것이다. 그가 고향에서 혹은 교원생활을 하면서 보고 겪었던 구체적 농촌현실과 식민지교육의 문제에 대한 고발은 단순히 어느 한 사건에 대한 증언으로 끝나지 않고 이후의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즉 식민지시대의 지주 - 농민의 갈등과 모순을 그린 작품으로부터 해방공간을 거쳐 1960, 1970년대에도 계속해서 그러한 모순이 연속되고 누적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발한다. 그래서 그의 문학은 강렬한 현실에 대한 증언으로 가득 차 있다. 바로 이처럼 모순의 극복을 위한 출발점으로서 억압받는 인간의 고통과 그에 대한 투쟁을 드러내는 것이 김정한 문학이 민족적 위기의식을 담고 있는 민족문학적 미덕을 가지게끔 하는 첫 항목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하지만 그는 거창하게 문학을 통해 어떤 모순을 제거하겠다거나 하는 거창한 이상을 꿈꾸지 않는다. 그의 문학 속에는 다만 농촌사회의 모순과 그러한 모순 속에서 살고 있는 농민들의 고난의 삶이 존재할 뿐이며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보여 주는 것을 최대의 미덕으로 설정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문학에서는 어설픈 기교라거나 낭만적인 이상을 쉽사리 찾아볼 수 없다. 우회적 표현이나 상징이라거나 돌려 말하는 법이 없다. 농촌을 소재로 한 작품이면서도 &amp;lt;흙&amp;gt;이나 &amp;lt;상록수&amp;gt;처럼 지식인적 계몽을 설파하거나 목가적 농촌을 그려내지도 않는다. 그에게 비친 농촌은 아름다운 것도 아니며 지식인의 계몽을 설파할 만안 대상도 아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김정한은 1929년 2월 교원을 그만두고 문학을 하겠노라고 동경으로 건너가서 와세다에 입학 후 독서회에 가입하면서 비로소 사회과학에 눈뜨고 안막, 이원조 등을 사귀면서 마르크스주의에 접하게 된다. 이때에 습득한 사회과학적 의식은 이후 현실을 고발하는 것에 주목적을 두고 있는 그의 문학관을 형성하는데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지만, 그의 작품 속에는 정해진 타입에 따라 작품을 써내는 도식적인 요소가 들어 있지 않다거나 어떤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공식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문제해결을 위한 이념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 등에서 그의 소설은 1930년대 프로문학 계열의 농민소설과도 일정하게 구분된다. '문학하는 사람이 무슨 단체냐'고 일본의 코프나 조선의 카프에 가입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문학을 통해서 조직을 형성하고 현실개혁의 방안까지 생각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그가 일본 유학 중 마르크스주의를 접하고 사회주의 지식인들과 교류한 것은 어디까지나 민족 문제를 해결하려는 고뇌에 찬 모색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오히려 &amp;lt;항진기&amp;gt;(1937)에서 &quot;네 말마따나 기생집에 누워서 축음기 소리에 눈물이나 흘리는 그게 사회주의인가? 개오줌 같은 눈물이지!&quot;라는 말을 통하여 실천과 유리된 유약하고 비현실적인 사회주의 지식인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하고, 현실적 모순의 극복은 주의나 이상이 아닌 철저한 현실적 인식을 바탕으로 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김정한의 문학은 단순히 이념이나 기교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으며 어디까지나 그의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현실을 철저히 인식하려는 리얼리즘적 태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교원생활을 그만두고 맡았던 동아일보 지국 경영은 더욱 어려워지게 되었고, 일제의 억압이 그 돌르 더해 감에 따라 &amp;lt;낙일홍&amp;gt;을 쓰고 나서는 붓을 꺾기로 결심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1960년대 이후 문학세계로의 재등단&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40년대 절필 후 1966년 &amp;lt;모래톱 이야기&amp;gt;로 다시 문단에 복귀할 때까지 공백기간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amp;lt;옥중 회갑&amp;gt;(1946), &amp;lt;설날&amp;gt;(1947), &amp;lt;병원에서는&amp;gt;(1951), &amp;lt;농촌 세시기&amp;gt;(1954~1955), &amp;lt;액년&amp;gt;(1956) 등의 ㅈ가품이 존재하고 있어서 결코 공백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이들 작품들은 1930년대의 작품들이 거둔 성과에 비교될 정도는 아니지만 그의 문학적 근원인 부정적 현실의 고발이라는 리얼리즘적 자세를 유지하고 있어 1960년대의 문단 복귀로 이어진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역사적 혼란과 제도적 모순에 의한 토지 소유의 이전과정을 통해 개인적 삶의 불행을 제기한 &amp;lt;모래톱 이야기&amp;gt;(1966)와 &amp;lt;유채&amp;gt;(1968), 가난으로 인해 초라한 병동에서 죽어 가야 하는 변두리 인생을 다룬 &amp;lt;제3병동&amp;gt;(1969), 독립운동으로 선대들이 희생된 몰락해 가는 위정척사파 양반 집안의 며느리 가야부인의 삶과 친일파이자 친미파인 이와모토 참봉네의 대조를 통해 식민지 상황과 미군정 시절의 모습이라는 근대사의 부침을 극심히 보여 주는 &amp;lt;수라도&amp;gt;(1969), 민족분단이 초래한 이데올로기의 폐해로 인해 순박한 일가족인 결단이 나는 모습을 그려 낸 &amp;lt;뒷기미 나루&amp;gt;(1969), 사회사업이라는 미명 아래 행해지는 부조리와 부정을 보여 주고 독립운동의 경력을 지닌 나환자가 해방이 된 사회에서 어떤 고통을 받는가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인간적인 삶은 무엇인가를 말하는 &amp;lt;인간단지&amp;gt;(1970), 해방 후의 친일배와 독립유공자 후손의 대조적인 삶의 양상을 통해 진정한 해방의 의미를 묻는 &amp;lt;산거족&amp;gt;(1971)과 &amp;lt;산서동 뒷이야기&amp;gt;(1971), 일제시대 피체와 구금의 대상이었던 인물이 해방 뒤에도 도피와 체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민족사의 고난을 그린 가장 최근의 &amp;lt;슬픈 해후&amp;gt;(1985)에 이르기까지 활발한 작품활동을 보여 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들 작품들에서도 김정한은 소재나 배경, 인물의 형상화, 주된 갈등을 한 개인의 내면적 갈등이나 심리에 의해 전개되기보다는 사회와의 갈등에서 묘사하는 점 등 1930년대의 작품들과 유사성을 보여 준다. 당대 농민들의 삶의 근원적 문제로서의 토지 문제를 제기하고 농민의 궁핍화과정이나 소작쟁의, 이농 등 현실적 고통을 형상화하여, 구조적이고 근원적인 모순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으며 어떻게 심화, 확대되었는가를 주인공들의 인식변화의 과정을 통해 제시한다. 또한 이들 작품에서는 독립운동, 민족지도자라는 공통된 전력과 해방 후 진보적 지식인으로서 현실적 고난을 당하는 이야기를 통해 빼앗긴 농토의 회복과 분배 문제, 일제하 핍박받았던 인물들의 복권 문제, 친일분자의 처리 문제, 일제하 정신적, 육체적 보상 문제 등을 제기함으로써 1960년대 사회의 모순을 불러온 근원이 되는 해방의 의미를 묻고 있다. 이러한 작품은 식민지시대의 본질적 모순이 대부분 해방 후까지 온존해 있으며 일부는 분단시대 특유의 병폐까지 겹쳐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이 땅의 본질적인 모순이 농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 모든 곳에 조직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철저한 민족의식은 단지 농촌사회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도시 속에서의 모순적인 삶에까지 그 증언의 폭을 넓힘으로써 당대의 본질적 모순을 포착할 수 있게 해 주고, 나아가 현재의 역사의식을 계발해 준다. 즉 현단계의 과제를 직접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자세를 지녀야 할 것인지를 시사해 주는 것이다. 이것이 그를 단순히 농민소설 작가로 여길 수 없게 하는 까닭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작가의 이러한 민족의식은 작품 속의 인물들에게 투영되어 각 작품 속의 인물들이 시대의 전형으로서 작용할 수 있도록 한다. 권력의 압력과 테러리즘에 맞서며 생명의 희생조차 서슴지 않는 인물들(&amp;lt;모래톱 이야기&amp;gt;의 갈밭새 영감, &amp;lt;인간단지&amp;gt;의 우중신 노인, &amp;lt;산거족&amp;gt;의 황거칠 노인 등)은 그들의 고통이나 싸움, 희생은 개인적인 것이면서도 한 개인의 생활 속에서의 결과로 끝나지 않고 집단적인 것으로 고양됨을 보여 준다. 예컨대 척사위정파 선비 특유의 미덕과 한계를 일거에 집약함으로써 높은 전형성을 획득하고 있는 &amp;lt;수라도&amp;gt;의 오봉선생이나, 양반층이지만 오봉선생의 한계를 뛰어넘어 평민과 호흡을 같이하는 새로운 차원의 인간상으로 부각되어 설득력 있는 역사적 대안을 제시하는 가야부인의 형상 등은 김정한의 작품을 단순한 농촌을 소재로 한 작품의 수준을 넘어선 뛰어난 예술적 성과를 거둔 민족문학적인 차원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러한 인물의 형상화와 함께 그의 작품 속에서 주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거칠면서도 수식과 가식이 없는 부정적인 문체이다. 그는 자신의 소설이 기교나 언어의 사치성을 배격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quot;나는 이러한 작품에 있어서는 기교 - 기발한 구성이라든가 소위 재치 있는 표현 같은 건 처음부터 안중에 두지 않았다. 그저 농촌 출신의 사람이면 이해할 수 있고 그들의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소설을 쓰고자 노력했다. 그것은 외양과 기교보다 항상 소박한 것을 좋아하는 성벽을 가졌기 때문이다. 도시적인 것, 허식적인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일종의 혐오까지 느끼고 있는 것이다. 사건이라든가 장면을 되도록 그들의 체험 범위 안엣것들을 선택한 것은 나의 그러한 의도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quot; 이처럼 그는 고도로 세련되고 승화된 현대예술이나 도시 소시민의 자의식을 그리는 문학을 배격하였는바, 허식을 거부하는 그의 이러한 태도는 당대 사회의 절박함을 보다 생생하게 전달해 주는 효과를 지닌다. 즉 문체나 상황 전달이 긴박하고 메마른 것은 당시 사회의 메마름을 그대로 전달해 주며 자신의 체험을 강조함으로써 이야기를 더욱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러한 성과가 값진 것은 단순히 책상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문학적 성과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현실을 보고 느끼려는 철저한 노력과 자세가 뒷받침되고 있다. &amp;lt;사하촌&amp;gt;을 쓸 무렵 스스로 우리말과 토착어 사전을 만든 사실이라든지 &quot;신문내용의 확대된 분석이나 비판은 사실주의 문학의 본도가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꿈같은 생각만으로 글을 쓴느 버릇을 배우지 못했다. 발로써 쓰고 싶다. 낙동강물이 공장폐수로 시커멓게 변해 가는 것을 보고서도 입 딱 닫고 있으라 해도 검은 것은 검다고 써야 직성이 풀린다&quot;는 언급이 이를 대변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김정한의 소설이 농민문학의 진수라거나 1960년대에 유행하던 도시의 소시민문학에 대비하여 의미 있다는 것은 물론 그가 단순히 농민생활을 소재로 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농촌사회의 모순과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는 의미에서이다. 그것은 권력의 부당함과 불법적인 힘에 맞서는 힘없는 자의 대항을 보여 준다. 이러한 현실고발은 물론 그의 체험을 묘사함으로써 허황된 이념이나 허식을 경계하는 태도에서 나온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예술세계를 체험의 세계 속에 가두어 버림으로써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 발전시키는 것을 가로막는 점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김정한의 문학을 평가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시대적으로 우리 ㅁ니족의 위기이던 1930년대, 1960년대에 강력한 현실고발 정신을 내세움으로써 문학의 사명감을 환기시켰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사명감을 바탕으로 1930년대 말 전향과 자연에의 침잠 등으로 민족정신이 기울어 가던 무렵, 작가는 약자 편에 서지 않을 수 없고 그들의 대변자가 되어야 한다는 기본적 진리를 환기시킬 수 있었다. 또한 그가 살고 있는 낙동강 유역의 농민과 도시빈민의 생활상을 통해 사회구조적 모순의 근원을 고발하면서 문단에 복귀하여, 지식인의 자의식만을 드러내는 도시 중심의 소시민문학적 편향으로 기울어지고 있던 1960년대 문학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던 것이다. 특히 &amp;lt;모래톱 이야기&amp;gt; 이후 일련의 작품들은 우리 근대사의 무침을 뛰어난 현실묘사로 보여 줌으로써 1960년대 후반 리얼리즘론의 기반을 제공하기도 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러한 의미에서 그의 농민문학적 성격이나 리얼리즘적 특성은 궁극적으로 민족문학론이라는 틀 속에 포괄되어 이야기 될 경우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민족의 생존권 자체가 위협받는 식민지적 상황이나, 식민지시대의 본질적 모순이 대부분 해방 후까지 지속되고 일부는 분단시대 특유의 병폐까지 겹쳐 악화된 상황 속에서 우리 문학에 요구되는 것은 그러한 현실적 조건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는 민족문학이 안리 수 없다. 김정한의 소설은 바로 이러한 모순들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즉 김정한의 문학은 1950년대 이후 우리 문학사에서 실종되었던 민족적 삶의 문제를 1960년대 이후 복원함으로써 우리 문학의 중심회복을 가능케 하였으며 민족문학론이라는 문학사의 중심 언술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 참고 문헌&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조갑상 / 요산 김정한 소설과 부산 / 2007&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강진호 / 김정한 - 대쪽같은 삶과 문학 / 새미 / 2002&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권영민 / 한국현대문학사 / 민음사 / 2006&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김윤식 외 / 한국현대문학사 / 현대소설 / 2006&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배경열 / 김정한 초기소설의 특질&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박재범 / 김정한 소설의 진보담론 연구-1960년대 이후 민족문학론과의 관련 양상을 중심으로&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송명희 / 김정한의 &amp;lt;수라도&amp;gt;에 나타난 여성원리&lt;/p&gt;</description>
      <category>김정한</category>
      <category>농민소설</category>
      <category>모래톱 이야기</category>
      <category>문학사</category>
      <category>민족문학론</category>
      <category>사하촌</category>
      <category>사회와의 갈등</category>
      <category>수라도</category>
      <category>요산</category>
      <author>돈많은한량이꿈</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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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3 May 2023 20:09:1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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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성한 &amp;lt;개구리&amp;gt; 줄거리 및 핵심정리</title>
      <link>https://sora-2878.tistory.com/entry/%EA%B9%80%EC%84%B1%ED%95%9C-%EA%B0%9C%EA%B5%AC%EB%A6%AC-%EC%A4%84%EA%B1%B0%EB%A6%AC-%EB%B0%8F-%ED%95%B5%EC%8B%AC%EC%A0%95%EB%A6%AC</link>
      <description>&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줄거리&amp;nbsp;&lt;/h2&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개구리들은 제멋대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날짐승들이 독수리를 왕으로 모시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얼룩이는 우리도 지도자를 뽑아서 질서를 가진 동물이 되자고 제안하지만 초록이는 이에 반대한다. 그러나 사자를 위시한 산짐승들의 떼를 보고 개구리들은 올림푸스 산의 제우스신에게 가서 개구리의 지도자를 보내달라고 한다. 그러나 제우스는 개구리의 그러한 생각이 노예근성에서 나온 것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개구리들이 계속 지도자를 원하자 보내주겠다고 한다. 그 후 연못에 통나무가 굴러온다. 초록이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도가 아니라, 편의라면서 통나무 위에서 즐겁게 지낸다. 그러나 이에 불만을 가진 얼룩이는 다시 제우스를 찾아가 개구리의 총의를 조작해서 고하고 황새를 지도자로 데려온다. 얼룩이는 재상이 되어서 개구리들을 황새의 먹이로 바치고 자신은 동족 개구리의 찌꺼기 살을 먹으면서 황새에게 온갖 아첨을 하며 지낸다. 초록이는 수배자가 되어서 연못 깊숙이 숨어 있다가 검둥이와 함께 제우스를 찾아간다. 황새를 쫓아달라고 애원하는 초록이에게 제우스는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에게 이기는 것이 자연의 힘이라고 하면서 섬기지 않고 굽신거리지 ㅇ낳고는 견디지 못하는 노예근성과 의식의 비극을 개탄한다. 제우스는 개구리들에게 자신을 물어뜯을 것을 명령한다. 주저하던 개구리들이 제우스를 물어뜯자 제우스와 신전이 있던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고 풀과 나무만이 있을 뿐이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등장인물&lt;/h2&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얼룩이 : 동료 개구리들의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의 안락과 영화만을 중요시하여 스스로 황새에게 구속되기를 자청하는, 권력욕과 노예근성에 사로잡힌 존재다&lt;/li&gt;
&lt;li&gt;파랑이 : 무지하고 둔한 인물로, 의존적이고 귀가 얇아 남의 말에 잘 홀린다&lt;/li&gt;
&lt;li&gt;초록이 : 개구리 사회를 존중할 줄 알고 자유와 편리에 최상의 가치를 두며 구속하거나 억압받는 것을 싫어한다. 영리하여 얼룩이의 잘못된 모습을 질책할 줄 알며 모든 개구리들을 위해 어려움을 무릅쓰고 헤쳐 나가려는 모습에서 용감한 기질이 엿보인다&lt;/li&gt;
&lt;li&gt;제우스 : 개구리들에게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선구자적인 풍미가 느껴지며 결국 죽음으로써 개구리들에게 세상의 참모습을 깨우치게 하려 희생하는 존재다&lt;/li&gt;
&lt;li&gt;황새 : 지배욕을 갖고 개구리를 괴롭히는 못된 성격을 소유하고 있다. 왕이라는 칭호에 맞지 않게 자신의 임무를 다하지 못하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여준다&lt;/li&gt;
&lt;/ul&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작품의 특징&amp;nbsp;&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개구리라는 동물의 삶을 통해 인간의 삶을 풍자하는 우화소설로, 작품의 주제가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천착으로부터 발현되기보다는 개구리라는 동물을 등장시켰기 때문에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성격을 지닌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절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의식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함을 말하고 있다. 작가의 생각이 반영되게 된 시대는 광복 후 한국의 반공 이데올로기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맹목적인 반공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당시 사회를 비판함과 아울러 자유에 대한 옹호의 의미를 독자들에게 되새기고자 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이해와 감상&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 작품은 사회의 모습을 직접 사람들에 빗대어 비판하지 않고, 개구리라는 동물로써 풍자하고 있다. 초록이라는 자유지향적인 개구리와 얼룩이라는 권력욕과 노예근성을 동시에 지닌 개구리를 대조시키고 있다. 처음에는 얼룩이를 간사하고 치사한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초록이는 자유스럽고 당당한 주인공으로 설정한다. 당시 사회를 비춰 볼 때 이는 남과 북의 모습을 빗대었다고 보인다. 남한인의 눈으로 보여지는 간사한 얼룩이의 모습의 북한사회와 자유스러운 남한사회. 하지만 이런 두 가지의 절대성이 없다고 보는 쪽으로 흘러간다. 노예근성에 싸여 있는 두 주인공은 결국 노예의 주인인 제우스가 죽음으로 인해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존재는 없음을 보인다. 절대적인 것에 대하여 불신을 가지고 반항하는 모습이 보여지는데, 이는 자유에 대한 옹호로 나타나게 된다. 결국 작가는 1950년대 반공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당시 사회의 맹목성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이 작품은 절대적인 것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사회에 대한 풍자로 개구리를 주인공에 설정한 것이 매우 특이하고 약간은 추상적인 면이 없지 않으나 이 작품에 나오는 노예근성이 바로 의식의 조작에 있다는 점은 생각해 볼 만하다. 우리들 마음속에 항상 자리 잡고 있는 의식 속에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고 더 심하면 그것이 노예근성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 참고문헌&lt;br /&gt;권영민 / 한국현대문학사2 / 민음사 / 2007&lt;br /&gt;김윤식 외 / 한국소설사 / 문학동네 / 2005&lt;br /&gt;이현직 / 김성한 소설의 서술기법 연구 /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 / 2007&lt;br /&gt;이혜정&amp;nbsp;/&amp;nbsp;김성한&amp;nbsp;단편소설의&amp;nbsp;인물&amp;nbsp;연구&amp;nbsp;/&amp;nbsp;동아대학교&amp;nbsp;교육대학원&amp;nbsp;/&amp;nbsp;2003&lt;/p&gt;</description>
      <category>개구리</category>
      <category>김성한</category>
      <category>남과 북</category>
      <category>대조</category>
      <category>우화소설</category>
      <category>인간 풍자</category>
      <category>풍자</category>
      <author>돈많은한량이꿈</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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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3 May 2023 19:00:34 +0900</pubDate>
    </item>
    <item>
      <title>김성한 &amp;lt;오 분간&amp;gt; 줄거리 및 핵심정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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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줄거리&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코카서스의 바윗등에 묶여 있던 프로메테우스는 녹슨 쇠사슬을 이천 년 만에 끊어버렸다. 이때 신이 보낸 천사가 그에게 다가와서 신에게 가자고 한다. 신을 프로메테우스가 쇠사슬을 끊는 것을 보고 그와 담판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였다. 신은 인간 세계의 유명한 자들의 얼을 잡아먹고 있었다. 신의 흉계를 알아차린 프로메테우스는 신에게 중립 지대에서 만나자고 제의한다. 신과 프로메테우스가 자리를 함께 하는 동안 지구상에서는 온갖 종교를 부르짖는 인간들이 날뛰고 있는데 사르트르는 신을 부정하는 열변을 토하였다. 일본의 수상이었던 길 전무는 명치신궁 앞에서 소원을 빌고, 고딘 디엠에게 파면당한 바오다이는 첩을 끼고 놀고 있고, 종로의 기생은 노래를 불러댔다. 김 국장은 허 사장과 거래를 하였다. 신은 지상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일들을 바라보고 탄식을 하지만 프로메테우스는 오불관언의 자세다. 히로히토는 목욕하다가 음모의 길이를 재 본다. 성격 분열증에 걸리 이정민은 종로 3가에서 여자를 찾고 있다. 김 목사는 강 전도사와 교회 뒷간에서 키스를 하였다. 법관은 죄수가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다. 덜레스는 성명을 발표하여 중공의 침략 행위를 경고하였다. 네루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부르짖었다. 네바다에서는 원자탄이 또 터졌다. 신과 프로메테우스는 침묵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무한과 영원이 교차하는 점에서 구원의 정적을 간직한 침묵이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침묵이 싫었고 네바다에서 터지는 원자탄 소리에 신이 났다. 하지만 신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탄식한다. 이정민은 엉덩이가 크고 못생긴 여자를 골라잡았다. 대학생들은 비밀 댄스홀에서 춤을 추다가 지껄여대고 있다. 지상에 질서를 부여하기를 원하는 신의 제안에 프로메테우스는 신이 자기의 부하가 되라고 말한다. 결국 그들의 회담은 오 분만에 끝나고 각자 자기 고향으로 가버렸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핵심 정리&lt;/h2&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갈래 : 단편소설&lt;/li&gt;
&lt;li&gt;배경 : 신의 세계와 지상의 세계의 중간지대로, 인간 세상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높은 곳&lt;/li&gt;
&lt;li&gt;성격 : 비판적&lt;/li&gt;
&lt;li&gt;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lt;/li&gt;
&lt;li&gt;구성 : 신과 프로메테우스가 서로 마주 앉아 담판을 벌이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담판 도중에 부도덕하고 부조리한 인간 세계의 단면을 주로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인간들의 파렴치한 행위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lt;/li&gt;
&lt;li&gt;주제 : 인간의 극한적 삶과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풍자&lt;/li&gt;
&lt;li&gt;출전 : &amp;lt;&amp;lt;사상계&amp;gt;&amp;gt; (1955)&lt;/li&gt;
&lt;/ul&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인물의 특징&lt;/h2&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프로메테우스 : 신의 독선과 잔인성을 증오하고 그에 반항하는 인물이다&lt;/li&gt;
&lt;li&gt;신 : 자신의 창조물에 대한 회의에 빠져 간다. 신적 속성을 가져 인격 부여가 불가능하나, 부조리한 인간상을 형상화하기 위해 작가는 인격을 부여하고 있다.&lt;/li&gt;
&lt;/ul&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작품의 특징&lt;/h2&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대화 형식이 갖는 장점 : 대화 형식은 생생한 인상 제시, 객관적인 서술, 독자의 능동적 참여 유도를 통해 판단을 독자에게 맡기는 효과를 가진다&lt;/li&gt;
&lt;li&gt;대화 형식이 갖는 단점 : 대화 형식은 분량의 증가로 자칫 지루할 수 있으며, 집중감 없이 산만할 수 있다&lt;/li&gt;
&lt;li&gt;프로메테우스와 이정민의 삶의 자세 비교 : 프로메테우스는 신의 섭리에 대하여 소극적이며 순응적인 인간형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반항하는 모습이다. 그는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의 수호를 위하여 과감히 행동하려는 유형이다. 그러나 이정민은 상처투성이의 당시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에 대하여 반항도 타협도 아닌 좌절의 자세를 보이고 있다.&lt;/li&gt;
&lt;li&gt;기법상의 특징 : 이 작품이 갖는 기법상의 특징은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동시에 제시하는 동시 묘사법을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이중노출의 방법으로 화면 처리되는 이러한 방법은 신에게 도전한 프로메테우스의 세계와 온갖 부정부패, 비리, 권모술수, 불륜의 행각 등이 구별 없이 벌어지고 있는 지상 세계를 대비시켜 줌으로써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lt;/li&gt;
&lt;li&gt;오분 간의 의미 : 이 작품은 신과 프로메테우스가 대화를 나누는 5분 동안을 스토리 시간으로 갖는다. 그 5분 동안 지상은 온갖 부정과 비도덕이 판을 치는 세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작품에서 그려지는 인간사의 모든 부정과 혼란이 신과 프로메테우스에게는 단지 5분의 시간으로 주어져 있다는 사실은 인간 세상이 결국은 물리적 시간으로 측량할 가치도 없는 비리의 연속임을 역설적으로 드러내 주는 것이다.&lt;/li&gt;
&lt;/ul&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이해와 감상&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 작품은 1955년 &amp;lt;&amp;lt;사상계&amp;gt;&amp;gt; 5월호에 발표된 작품으로, 그는 이 작품을 써서 1958년 자유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국토가 분단된 상태의 한국이 민족상잔의 전쟁으로 인하여 극한적이고 고통의 땅이 되어 있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즉 인류의 심각한 위기가 눈에 띄는 상황을 한 편의 소설 속에 응축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를 등장시켜 이러한 비극적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작가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죄 값으로 가혹한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는 무질서와 혼동의 와중에서 실망하고 좌절하는 인물이 아닌 적극적인 삶의 의지와 실천적 행동형의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한 프로메테우스는 근대인의 표상이다. 그는 신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쟁취했다는 의식이 있다. 때문에 발에 묶인 쇠사슬을 끊고 하늘과 땅의 중간에 있는 구름 위에서 신과 마주 앉아 대결한다. 신과 프로메테우스는 구름 위에서 지구의 곳곳의 불의를 내려다본다. 이 지구 위의 혼돈 속에는 한국의 종로 사창굴에서 자기모멸을 짓씹고 있는 이정민이라는 인텔리 주인공도 있다. 이 소설에서 결론은 찾아지지 않았지만 부조리의 실상에 대한 첨예한 인식을 촉진한 성과가 있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 소설은 다분히 주지적인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정서적 충동을 주기보다는 인식을 촉진하는 풍자적 수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풍자란 것은 평온한 시대에 있어서는 정통적 수법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사회의 모순과 갈등이 격심한 시대에 있어서는 매우 효과 있는 수법이 되기도 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 작품은 김성한의 소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품이다. 현실의 부조리를 신화적 요소와 결합시켜 해석해 냄으로써 인간 사회의 부조리의 근원, 나아가 인간의 근원적 속성을 해명해보려는 작가 나름의 시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즉 현실에서 전통적 신의 개념이나 신의 정의라는 굴레를 인간들이 벗어던짐으로써 세상은 인간 욕망의 실현장으로 변하게 되었고, 그것이 인간을 인간됨에서 더욱 멀어지게 하는 요인이 된다는 점을 암시한다. 신과 프로메테우스 사이의 오분 간의 회담은 별 소득 없이 끝나고 신은 '제3의 존재'를 기다리겠다고 말하면서 한탄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 참고문헌&lt;br /&gt;권영민 / 한국현대문학사2 / 민음사 / 2007&lt;br /&gt;김윤식 외 / 한국소설사 / 문학동네 / 2005&lt;br /&gt;이현직 / 김성한 소설의 서술기법 연구 /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 / 2007&lt;br /&gt;이혜정&amp;nbsp;/&amp;nbsp;김성한&amp;nbsp;단편소설의&amp;nbsp;인물&amp;nbsp;연구&amp;nbsp;/&amp;nbsp;동아대학교&amp;nbsp;교육대학원&amp;nbsp;/&amp;nbsp;2003&lt;/p&gt;</description>
      <category>김성한</category>
      <category>대화형식</category>
      <category>불</category>
      <category>비판적</category>
      <category>신</category>
      <category>오 분간</category>
      <category>이정민</category>
      <category>전지적 작가 시점</category>
      <category>프로메테우스</category>
      <author>돈많은한량이꿈</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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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2 May 2023 17:26:37 +0900</pubDate>
    </item>
    <item>
      <title>김성한 &amp;lt;바비도&amp;gt; 줄거리 및 핵심정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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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줄거리&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5세기 초엽 헨리 4세 치하의 영국은 라틴어 성경을 통해 지식을 독점하던 교회의 부패가 극에 달하고 있었다. 한편 위클리프의 영역 복음서를 몰래 읽는 영국 백성들 사이에 성직자와 교회에 대한 불신은 날로 커져 간다. 재봉 직공 바비도는 영역 성경 비밀 독회에서 돌아와 깊은 생각에 잠긴다. 교회의 사제들은 성경의 해석을 독점하고 평범한 빵과 포도주를 성찬이라고 하면서 온갖 구실을 붙여 제 뱃속만 채우기에 급급한 현실이 환하게 불린다. 자신의 권위가 훼손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교회 세력은 민중들을 의식화하는 영역 복음서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순회 종교 재판소를 열어 저항 세력을 차단한다. 바비도는 분을 참지 못해 어느 귀족이 주문한 옷에 오줌을 갈긴다. 재판정에선 바비도는 사교의 유혹을 뿌리치고 죽음을 선택한다. 형장에 선 바비도에게 태자 헨리가 나타나 마음을 돌릴 것을 권하지만, 바비도는 세상사의 부조리를 지적하며 뜻을 굽히지 않는다. 바비도는 태자의 간곡한 만류와 사람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분형으로 최후를 맞는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핵심 정리&lt;/h2&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갈래 : 단편소설, 역사소설, 종교소설&lt;/li&gt;
&lt;li&gt;시간적 배경 : 15세기 초&lt;/li&gt;
&lt;li&gt;공간적 배경 : 영국&lt;/li&gt;
&lt;li&gt;경향 : 자유주의 옹호&lt;/li&gt;
&lt;li&gt;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부분적으로 1인칭 주인공 시점이 드러남)&lt;/li&gt;
&lt;li&gt;표현 : 직설적, 추상적, 관념적&lt;/li&gt;
&lt;li&gt;주제 : 불의한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정의로운 인간의 삶, 신념에 충실한 인간의 강인한 의지&lt;/li&gt;
&lt;li&gt;출전 : &amp;lt;&amp;lt;사상계&amp;gt;&amp;gt; (1956)&lt;/li&gt;
&lt;/ul&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작품의 특징&lt;/h2&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인물의 성격을 '보여주기' 방법에 의해 제시하고 있다&lt;/li&gt;
&lt;li&gt;자유주의를 옹호하고 있다&lt;/li&gt;
&lt;li&gt;강건한 문체를 사용하고 있다&lt;/li&gt;
&lt;/ul&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amp;lt;바비도&amp;gt;의 시대적 배경 - 중세적 지식 독점의 종말&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소설의 배경이 되는 15세기 초 영국 사회는 기독교 사제들의 부패가 극에 달한 시기이다. 이것은 이들이 라틴어로 지식을 독점했기 때문이다. 작품 내 라틴어와 영어의 대립은 단순한 언어 차이가 아니라 당대의 권력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당대 교회 조직과 제도의 횡포에 대항하여 진정한 신앙,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를 지키고자 한 재봉 직공 바비도의 삶을 통하여, 현대라는 시대 상황에서 지식인의 역할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15세기 영국의 재봉사 이름은 원래 바드비였으나, 작가의 착오로 바비도가 되었다.) 즉 지도층 인사들이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신념을 헌신짝 버리듯 변절하는 시대에 최하층에 속하는 직공이 자기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용기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lt;/p&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라틴어 성경 : 중세의 성직자들만이 배워 읽던 것으로서 여기에 근접할 수 없는 민중들을 윽박지르고 성직자들의 부패를 은폐하는 수단이 되었다.&lt;/li&gt;
&lt;li&gt;영역 복음서 : 14세기 영국의 종교 개혁가 위클리프가 라틴어를 모르는 일반 민중들을 위해 영역한 성격이다. 성직자들에 의한 중세적 지식 독점을 끝내고 종교 개혁의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lt;/li&gt;
&lt;/ul&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등장인물의 성격과 상징성&lt;/h2&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바비도 : 양심과 강직한 신념을 지닌 재봉 직공이다. 교회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죽음을 택하여 종교 개혁을 일으키는 민중의 의지를 상징한다. 성격의 변화가 없다는 점에서 평면적 유형의 인간이다. 신념을 굽히지 않고 분형대의 연기로 사라진 그 시대의 독실한 신자를 대표한다는 점에서는 전형적 인간이고, 주인공이므로 주동적 인물이다. 그리고 사건 자체가 비극적으로 맺어지므로 비극적 인물이다.&lt;/li&gt;
&lt;li&gt;사교 : 중세의 부패한 기독교의 앞잡이이다. 도덕과 양심이 마비된 존재로서 종교 개혁에 의해 물러나게 될 부패한 중세 권력을 상징한다. 권위주의적이고 위선적인 성직자의 한 사람으로, 그 시대의 부패한 성직자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평면적이고 전형적인 인물은 소설의 주제를 극명하게 부각시키는 장치로 작용한다.&lt;/li&gt;
&lt;li&gt;태자 : 교회와 결탁한 중세의 세속 권력자이다. 인간적인 경지에서 바비도를 인정하고, 진정한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지만 자신의 집단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신념을 굽히는 인간형이다.&lt;/li&gt;
&lt;li&gt;구경하는 사람들 : 현실에 순응하며 불의의 세력에 항거할 생각이 없다. 바비도와는 대조적으로 권위에 아부하는 모습이 보인다.&lt;/li&gt;
&lt;/ul&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amp;lt;바비도&amp;gt;의 역사 소설적 특성과 관념성&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김성한의 &amp;lt;바비도&amp;gt;는 역사적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소설이지만, 역사적인 연관성 속에 놓인 인간의 삶이 아니라 부패와 불의에 대한 저항이라는 역사를 초월한 보편적 인간의 신념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 역사 소설과는 거리가 있다. 이는 이 작품의 관념적 속성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이 전후의 비참한 사회 현실 속에서 나왔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 정도의 성취도 값진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창작 시기와 작중 배경의 관련성을 통해 본 &amp;lt;바비도&amp;gt;의 의미&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 작품은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조명하려는 태도, 즉 알레고리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알레고리란 엉뚱한 다른 것을 말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문맥 속에 감추어진 어떤 진리를 우회적으로 깨닫게 하는 표현 형식이다. 작가는 1400년대의 영국 사회를 말하고 있지만, 독자들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1950년대의 한국 사회에 대한 일말의 시사를 얻을 것이다. 이를 통해 &amp;lt;바비도&amp;gt;는 진정한 삶의 의미가 무엇이며, 불의의 시대에서 어떻게 사는 삶이 가치 있는 삶인가 하는 심각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고 있다.&lt;/p&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창작 시기 : 한국 전쟁 직후 사회 지도층의 부패와 혼란, 이승만 독재 정권의 민주화 세력에 대한 탄압이 있던 시기&lt;/li&gt;
&lt;li&gt;작중 배경 : 종교 개혁 직전의 구교 성직자 세력의 부패와 위선, 민중들의 자각에 대한 탄압이 있던 시기&lt;/li&gt;
&lt;li&gt;관련성 : 부패하고 위선적인 상층 계급이 새로이 자각하는 하층민을 탄압하던 시대적 배경이 공통적이다&lt;/li&gt;
&lt;/ul&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1950년대 한국 사회의 우의적 비판&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소설의 서두에 제시되어 있듯이, 이 작품은 역사상 실재했던 인물인 바비도가 살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전개된다. 헨리 4세 치하의 영국은 밖으로는 백년전쟁, 안으로는 종교 개혁의 거센 파도가 일던 격동기로, 당연히 당시 교회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썼던 시기이다. 이는 '권력의 유지를 위한 부조리'라는 측면에서 1950년대 한국의 상황과 비슷하다. 1950년대 한국 사회란 한편으로는 일제 치하에서 상실된 민족정기를 회복하고, 6.25 동란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으로 말미암은 사회적 부조리를 제거하고 근대적 시민 사회를 건설하여야 했던 책임을 지니고 있었지만, 미국을 위시한 새로운 외세의 유입으로 인해 그 역사적 과제가 심각하게 왜곡되기 시작한 시대이다. 이로 인해 정의를 구현하는 지식인 계층의 대다수는 붕괴되고 정치적 압력에 굴복하며 적절히 순응했다. 따라서 정치인의 정의에 입각한 윤리 감각을 회복시키고 지각하게 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로 인식되던 시기였다. 1950년대 한국 전후 작가들의 문제작들이 주로 어둡고 무기력하며 허무적인 분위기를 띠는 가운데서도 인간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잃지 않는 작가 김성한의 작품은 색다른 빛을 발한다. 작가는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영국을 배경으로 하여, 정치적인 것을 종교적 소재로 바꾸어 우의적으로 당대 현실을 비판하고 지식인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다른 대상을 이용하여 표현함으로써 독자들이 문맥에 감추어진 진리를 깨닫게 하는 우의적 성격이 강한 우의 소설이라 볼 수 있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존엄성과 정의를 지키고자 하는 주체적 의지와 생존 의지가 대립할 때 인간 실존의 행동방식에 대한 소설적 접근을 분명하고 명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처럼 김성한은 개인의 자유와 진리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전제로 적극적으로 반항하는 인간을 자주 그리고 있다.&amp;nbsp;&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문학사적 의의&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김성한은 이 작품에서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자의 목숨을 허락하지 않는 폭압적 체제 속에서 신념을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는 고결한 인간상을 제시한다. 그 도덕성의 본질은 용기인데, 이 소설을 통해 자유의 전제 조건은 용기임을 웅변한다. 그는 인간의 인간됨의 조건에 대한 탐구와 아울러 그것을 저해하는 위압적 상황에 대한 고발, 그리고 인격의 존엄성을 포기하고 시대적 흐름의 변덕에 편승하여 자신의 영달만을 추구하는 군상들에 대해 싸늘한 냉소를 보이고 있다. 이 작품은 바비도의 생애라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권력의 부패와 독선이 판을 치던 1950년대의 혼란스러운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도덕적 인간상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바비도&amp;gt;는 두 가지 점에서 문제적이다. 하나는 풍자의 전통이 허약한 우리 소설에 뚜렷한 풍자 소설의 한 모범을 보였다는 것. 다른 하나는 대중의 한 속성에 대한 깊은 비판적 통찰. 특히 후자는 대중은 우중이라는 확고한 선입견 위에 서서 그 안쪽에 대한 탐구를 시도조차 하지않는 엘리트주의와 대중의 선한 본성과 역사창조력에 대한 굳은 확신 위에 서 있는 민중주의의 두 편향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에서 그 사적 의미는 대단히 크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 참고문헌&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권영민 / 한국현대문학사2 / 민음사 / 2007&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김윤식 외 / 한국소설사 / 문학동네 / 2005&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현직 / 김성한 소설의 서술기법 연구 /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 / 2007&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혜정 / 김성한 단편소설의 인물 연구 / 동아대학교 교육대학원 / 2003&lt;/p&gt;</description>
      <category>1950년 한국</category>
      <category>김성한</category>
      <category>바비도</category>
      <category>알레고리</category>
      <category>역사 소설</category>
      <category>전형적 인물</category>
      <category>줃종적 인물</category>
      <author>돈많은한량이꿈</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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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sora-2878.tistory.com/entry/%EA%B9%80%EC%84%B1%ED%95%9C-%EB%B0%94%EB%B9%84%EB%8F%84-%EC%A4%84%EA%B1%B0%EB%A6%AC-%EB%B0%8F-%ED%95%B5%EC%8B%AC%EC%A0%95%EB%A6%AC#entry22comment</comments>
      <pubDate>Mon, 22 May 2023 16:57:44 +0900</pubDate>
    </item>
    <item>
      <title>작가 김성한의 생애와 활동</title>
      <link>https://sora-2878.tistory.com/entry/%EC%9E%91%EA%B0%80-%EA%B9%80%EC%84%B1%ED%95%9C%EC%9D%98-%EC%83%9D%EC%95%A0%EC%99%80-%ED%99%9C%EB%8F%99</link>
      <description>&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작가소개&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19년 1월 17일 함경남도 풍산에서 출생하였다. 함흥 함남 중학을 거쳐 일본 야마구치 고교를 졸업하고 도쿄 대학과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서 수학했다. 광복과 함께 귀국하여 언론계에 투신하여 &amp;lt;사상계&amp;gt; 주간 및 &amp;lt;&amp;lt;동아일보&amp;gt;&amp;gt; 논설위원 등을 역임하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50년 단편 &amp;lt;무명로&amp;gt; 가 &amp;lt;&amp;lt;서울신문&amp;gt;&amp;gt;에 당선되어 등단한 이래 단편 &amp;lt;김가성론&amp;gt;, &amp;lt;암야행&amp;gt;, &amp;lt;제우스의 자살&amp;gt; 등의 문제작을 잇달아 발표했다. 1954년에는 양문사에서 단편집 &amp;lt;&amp;lt;암야행&amp;gt;&amp;gt;을 발간하였고, 1955년에는 &amp;lt;바비도&amp;gt;를 발표하였다. 1955년 제1회 동인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1957년 &amp;lt;귀환&amp;gt;으로 한무숙, 박남수 등과 함께 제5회 자유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단편인 &amp;lt;바비도&amp;gt;, &amp;lt;오분 간&amp;gt;, &amp;lt;개구리&amp;gt; 등이 있으며, 장편으로는 &amp;lt;&amp;lt;요하&amp;gt;&amp;gt;, &amp;lt;&amp;lt;이성계&amp;gt;&amp;gt; 등이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작품경향&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50년대에 발표한 그의 소설은 소극적이며 순응적인 인간상을 배제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의 구현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행동적 인간형을 창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1950년대의 작가들과 구별된다. 그의 작중 인물들은 대개 비판적인 지식인이며, 어두운 사회의 면을 묘사하는 리얼리티가 뛰어나다. 초기 작품들은 1950년대의 한국의 역사적, 사회적 상황을 배경으로한다. 그 당시의 한국 사회란, 한편으로는 일제 치하에서 손상된 민족정기를 회복하고 6.25로 인한 상처를 치유해야 하며, 다른 한 편으로는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으로 말미암은 사회적 부조리를 제거하고 근대적인 시민 사회를 건설하여야 했던 책임을 지니고 있었지만, 미국을 위시한 새로운 외세의 유입으로 인해 그 역사적 과제가 심각하게 왜곡되기 시작한 시대였다. 간결하고 지적인 문장을 쓰며, 때로는 풍자적이고 우화적인 소설을 쓰기도 하였다. 전후 문학이 일반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인간의 내적 갈등보다 행동 지향적인 면을 일깨워 인간의 외적 가치를 추구하는 성향이 짙어 고발하고 증언하는 작품이 많다. 당대적 현실성에 우회적인 접근을 꾀하고 있는 그의 작품은 기법의 파격성과 그 지적 분위기로 인하여 평단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작가의 현실에 대한 치열한 대결 의식은 1960년대 후기에 이르면서 역사 소설의 방향으로 변화한다.&amp;nbsp;&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김성한 소설의 서술기법 연구-이현직&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김성한의 1950년대 단편소설에 나타나는 주제의식은 한마디로 '거리두기'의 다양한 기법을 통한 혼란과 부정적인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고, 이러한 주제의식을 형상화하기 위한 방법이 바로 풍자와 알레고리 그리고 몽타주 기법이다. 즉 김성한은 전쟁으로 인한 혼란한 사회상이라는 특수한 작가적 상황을 비교적 냉정하게 탐색하여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주제를 드러내고자 했다. 또한 김성한은 문학의 현실 참여를 통한 비판적이고 교훈적인 기능을 중시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또한 김성한의 1950년대 단편소설에 나타난 특징은 전후의 상황을 이탈하여 인간사회의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즉 소설의 영역이 신의 세계와 동물의 세계뿐만 아니라 이국적 역사와 인물 등으로까지 확장됨을 보여주고 있다. 주로 알레고리적 기법을 채택한 작품들이 이러한 경향을 드러낸다. 이는 구체적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둠으로써 현실에서 ㅁ러어지는 동시에 다양한 기법의 채택을 보여주고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는 시간이나 풍토를 초월한 보편적인 주제와 공감을 지향했다. 그래서 그의 소설에서는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면서도 정작 구체적인 현실 문제는 외면된다. 바로 이러한 특성이 다양한 기법의 채택으로 나타난다. 또한 시간성과 공간성 및 인물 설정에도 1950년대 전쟁 직후라는 작가적 현실을 벗어나 소설의 영역이 확장됨을 알 수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50년대의 전쟁 상황에서 김성한이 현실과 거리를 유지하며 근본적인 문제에 천착하고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엇던 것은 김성한의 특수한 상황과 관련된다. 1950년대 문인들이 전쟁의 직접적인 자극 속에 있을 때 다른 문인들보다 그는 비교적 전쟁과 거리를 유지하며 살 수 있었다. 김성한은 다른 작가들처럼 전쟁의 혼란에 직접적으로 휘말리지 않았기 때문에 시대에 대해 비교적 냉정할 수 있었고, 근본적인 문제를 탐색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고 판단된다. 이런 상황이 그의 소설이 1950년대 소설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하나의 요인으로서 작용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 참고문헌&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권영민 / 한국현대문학사2 / 민음사 / 2007&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김윤식 외 / 한국소설사 / 문학동네 / 2005&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현직 / 김성한 소설의 서술기법 연구 /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 / 2007&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혜정 / 김성한 단편소설의 인물 연구 / 동아대학교 교육대학원 / 2003&lt;/p&gt;</description>
      <category>1950년대</category>
      <category>개구리</category>
      <category>김성한</category>
      <category>바비도</category>
      <category>오 분간</category>
      <category>작품경향</category>
      <author>돈많은한량이꿈</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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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sora-2878.tistory.com/entry/%EC%9E%91%EA%B0%80-%EA%B9%80%EC%84%B1%ED%95%9C%EC%9D%98-%EC%83%9D%EC%95%A0%EC%99%80-%ED%99%9C%EB%8F%99#entry21comment</comments>
      <pubDate>Sun, 21 May 2023 17:19:30 +0900</pubDate>
    </item>
    <item>
      <title>박영준 &amp;lt;모범경작생&amp;gt; 배경, 주제, 시점, 문체</title>
      <link>https://sora-2878.tistory.com/entry/%EB%B0%95%EC%98%81%EC%A4%80-%EB%AA%A8%EB%B2%94%EA%B2%BD%EC%9E%91%EC%83%9D-%EB%B0%B0%EA%B2%BD-%EC%A3%BC%EC%A0%9C-%EC%8B%9C%EC%A0%90-%EB%AC%B8%EC%B2%B4</link>
      <description>&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배경의 특징&amp;nbsp;&lt;/h2&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circle;&quot; data-ke-list-type=&quot;circle&quot;&gt;
&lt;li&gt;시간적 배경 : &amp;lt;모범경작생&amp;gt;은 봄과 가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봄날 모내기를 즐겁게 했으나 가을에 흉년이 들면서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당시 농민들의 어려움과 사회구조적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가을에 농민들이 겪는 어려움을 나타내기 위해 그전 계절의 생활은 가난하지만 평화롭게 나타내고 있다.&lt;/li&gt;
&lt;li&gt;공간적 배경 : 박영준 농민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구체적이지 않으나, 평안남도 강서군의 어느 농촌으로 볼 수 있다. 평안도 방언이 사용되었고 작가의 고향이 평안남도 강서군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작품이 작가의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쉬운 것과 작가의 관심은 그 생활 근거지에 자연 짙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공간적 배경은 범위가 그리 넓지 않으며 폐쇄적이다. 한 마을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그 마을에서 사건이 끝이 난다. 이러한 폐쇄성은 농촌이라는 공간 자체가 한 마을 단위로 독립되어 있으며, 마을 단위로 노동이 진행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또한 한 마을의 상황이 그 주변 마을의 상황과 비슷하므로 어느 농촌을 배경으로 하든지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lt;/li&gt;
&lt;/ul&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주제 의식&amp;nbsp;&lt;/h2&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 작품의 근본적인 제재는 가난이다. 가난한 농촌의 현실에서 열심히 살고자 하는 농민들에게 일제가 자신의 앞잡이를 내세워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다른 소재를 살펴보면, 소리(모내기 할 때 부르는 노래), 모내기, 사랑, 윷놀이(이웃에 모임), 불경기, 호경기, 호세, 소작료 등 농민들의 일상생활에서 소재를 택해 소설을 이루고 있다. 농민들의 이런 평화로운 생활에 일제의 농간이 개입하고, 그 농간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한 농민으로 인해 마을이 황폐화되어 가는 과정을 이 소설은 잘 나타낸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마을 사람들의 운명은 나와 있지 않지만, 농민들의 삶이 더욱 힘들어졌을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게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 소설의 결말에서 성두를 중심으로 한 마을 사람들은 현실의 부조리에 순응하지 않고 대응하는 자세를 보인다. 처음에는 순박한 사람들이었으나 자신의 삶을 위협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의지를 보인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식의 변화가 나타난다. 그래서 이 소설의 주제는 '일제하 농촌 현실의 부조리와 가진 자에 대한 저항'이라고 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제목&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모범경작생&amp;gt;이라는 제목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말이다. 길서라는 부정적인 인물을 지칭하는 말인데, 일제가 농업 진흥책을 추진하기 위해 만든 꼭두각시이다. 일제의 정책을 농민들에게 선전하고 일제와 결탁하여 많은 혜택을 누리면서 농사를 지어 해마다 돈을 버는 인물이다. 농민들은 해가 갈수록 가난에 허덕이게 되는데, 그는 농사를 잘 짓는 '모범 경작생'이 되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모범경작생'은 현실의 부조리를 풍자하는 것으로, 농민들이 현실의 모순을 인식하고 저항하는 행동을 할 때 '모범경작생'은 도망가는 신세가 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시점&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3인칭 전지적 시점이다. 이 시점은 화자가 무제한의 초능력을 구사할 수 있다. 작가가 3인칭 전지적 시점을 사용한 이유는 작중 인물들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고, 소설의 전개를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의도와 사고가 소설 속에 자연스럽게 개입될 수 있는 시점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문체&lt;/h2&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circle;&quot; data-ke-list-type=&quot;circle&quot;&gt;
&lt;li&gt;묘사가 많다 : 심리 묘사가 많아서 전개가 느리고 지루한 느낌이 들어 소설의 재미를 반감하기도 하지만, 작가의 의도가 현실을 그대로 전달하고자 했으므로 재미와는 다른 의의를 가질 수 있다.&lt;/li&gt;
&lt;li&gt;현재형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lt;/li&gt;
&lt;li&gt;비유법을 많이 사용한다 :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이게 하는 방법&lt;/li&gt;
&lt;li&gt;말줄임표를 많이 사용한다 :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개가 냉소적이고 소극적인 인물이며 시대 상황이 부정적이고 절망적이기 때문에 말줄임표를 무의식적으로 ㅁ낳이 사용했을 수도 있다.&lt;/li&gt;
&lt;li&gt;비속어가 많이 사용되었다&lt;/li&gt;
&lt;li&gt;평안도 사투리가 많이 사용되었다&lt;/li&gt;
&lt;/ul&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 참고 문헌&lt;br /&gt;오양호 / 1930년대 초기 농민소설 고찰 / 현대소설연구 / 1995&lt;br /&gt;박윤자,&amp;nbsp;박영준&amp;nbsp;/&amp;nbsp;농민소설연구&amp;nbsp;/&amp;nbsp;창원대&amp;nbsp;교육대학원&amp;nbsp;/&amp;nbsp;2005&lt;/p&gt;</description>
      <category>3인칭 전지적 시점</category>
      <category>가난한 농촌</category>
      <category>농민소설</category>
      <category>모범경작생</category>
      <category>박영준</category>
      <category>비유법</category>
      <category>심리 묘사</category>
      <category>심리묘사</category>
      <category>풍자</category>
      <category>현실의 부조리</category>
      <author>돈많은한량이꿈</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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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sora-2878.tistory.com/entry/%EB%B0%95%EC%98%81%EC%A4%80-%EB%AA%A8%EB%B2%94%EA%B2%BD%EC%9E%91%EC%83%9D-%EB%B0%B0%EA%B2%BD-%EC%A3%BC%EC%A0%9C-%EC%8B%9C%EC%A0%90-%EB%AC%B8%EC%B2%B4#entry20comment</comments>
      <pubDate>Mon, 15 May 2023 20:55:12 +0900</pubDate>
    </item>
    <item>
      <title>박영준 &amp;lt;모범경작생&amp;gt; 인물의 특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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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모범경작생&amp;gt;의 인물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농민의식을 대변하는 긍정적인 인물, 작품의 표면에 드러나면 전개에 따라 변화하는 인물, 소작료와 소작권으로 농민에게 횡포를 가하는 부정적인 인물 등의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농민 의식을 대변하는 긍정적인 인물인 마을 사람들은 그 존재가 그림자처럼 소설 속에 스며있어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고, 부정적인 인물인 지주에 대해서도 탐욕스럽거나 소작권으로 횡포를 부리는 등 몇 줄에 언급되어 있는 정도이다. 주로 조명이 되는 인물은 표면에 등장하여 변화하는 인물이다. &amp;lt;모범경작생&amp;gt;에서 변화하는 인물은 현실 인식이 없다가 현실 인식을 하게 되어 저항하는 인물인 '성두'와 부정적인 인물에서 긍정적인 인물로 변화하는 인물인 '길서'이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성두는 소극적인 인물에서 적극적인 인물로 변화하는 인물이다. 성두는 소작농으로 열심히 일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신망이 두텁고, 과묵하면서도 힘이 있는 농민의 전형을 보여준다. 소작료 문제로 지주 서재당을 찾아갈 때 중심 역할을 한다. 처음에는 현실에 순응하기만 하고 현실의 부조리에 대해 비판하거나 고민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살아가려는 인물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하지만 길서가 모범경작생으로 농사를 잘 짓는 것에 대한 부러움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왜 길서만이 그런 혜택을 누려야 하고 누릴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 현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운명론적인 생각이 몸에 밴 순박한 농부의 모습이다. 길서가 강습회에서 배운 것을 얘기할 때도 성두는 아무런 의문이나 질문을 하지 않으며, 지주와 교섭이 필요할 때도 길서에게 부탁하자고 말해 의타심을 보인다. 성두는 인정 있고 순박한 농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러나 가을이 되어 흉년이 들고 뽕나무 값과 호세가 오르는 절망적인 상태가 된다. 여름철에는 보리밥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처지인 마을 사람들에게 가을의 이러한 상황은 절망적이다. 성두는 먼저 '아마 북간도나 만주로 바가지를 차고 떠나야 하는가 보다'라는 절망적인 생각을 하지만 마을 사람들과 함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행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성두가 농촌의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보통 농사꾼의 인물형이지만, 절망적이고 부조리한 현실에 직면했을 때 현실의 부조리를 극복하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기억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모범경작생&amp;gt;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비판적인 인물이 기억이다. 기억은 소설 속에서 적극적이고, 직설적이며, 활달한 성격을 보인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길서를 칭찬할 때 사촌형뻘이 되면서도 길서를 시기하고 속으로 미워하는 인물이다. 또한 비료를 뿌려도 소작료가 올라가면 농민에게 혜택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길서가 강습회에서 배운 내용을 전달할 때 비판적으로 질문을 한 사람도 기억이다. 불경기, 호경기에 대한 인식도 길서보다는 더욱 현실적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전달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렇게 말하는 기억의 말을 길서의 말보다 더 그럴 듯하게 마을 사람들은 생각한다. 기억은 자신이 길서보다 못하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으며, 자신도 상황이 되면 길서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억의 거침없는 말과 비판적인 생각은 '성두'와 마을 사람들에게 '소작쟁의'를 일으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부정적인 인물에서 긍정적인 인물로 변화하는 인물인 길서는 동네 전체로 보아 보통학교 졸업을 혼자 했고, 군청과 면사부소에 혼자서 출입하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에게도 지지않을 만큼 동네 사람들을 가르치며 지도한다. 나이 젊은 사람으로 일을 부지런히 해서 돈도 해마다 벌며, 저축을 하는 마을의 진흥회니 조기회니, 회마다 회장을 도맡고 있어 동네에서는 뛰어난 사람이요 동네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길서의 이러한 행적을 볼 때 길서가 당시 일제의 농업진흥책의 앞잡이가 된 인물임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길서는 자작농이지만 면사무소와 보통학교의 도움이 없으면 언제 소작농으로 운명이 바뀔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받는 혜택을 버릴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양심에 꺼림이 있어도 일제에 이용당하는 꼭두각시로 혜택을 누리며 살다가, 마을 사람들이 소작쟁의를 일으켰을 때 도망가는 신세가 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변화하는 인물인 길서는 좋은 면도 가지고 있다. 농사꾼으로서 그는 매우 부지런하고, 근검절약하는 생활이 몸에 배어 있으며 마을 사람들 앞에서 솔직하다. 그리고 면사무소나 보통학교의 힘을 빌어 동네에서 권세를 장악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다. 다만 먹고살기 위해 노력할 뿐이므로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성격으로 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면장이 호세를 올리겠다고 했을 떄, 선뜻 그렇게 하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믄요 근심이 조금도 없다고야 할 수 없지마는 무던한 편은 됩니다'라고 애매하게 말을 한다. 마을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마을의 형편보다 자신의 형편을 먼저 살피는 것은 우리의 정서에 부합되는 것은 아니나 이것은 현실적인 행동으로 보인다. 절대 가난 속에서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보면서 선뜻 그 가난 속으로 뛰어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길서가 마을의 이익보다는 개인적인 이익을 먼저 생각함으로써 마을 사람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지만, 길서가 탐욕스럽고 악해서라기보다는 시대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갔다고 보인다. 똑똑하나 순박한 청년 길서는 일본의 교묘한 수탈, 지배 정책에 이용당하여 마을을 더욱 어려운 형편으로 전락시키는 역할을 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모범경작생&amp;gt;에서의 저항은 집단적인 저항이다. 소설의 결말에서 마을 사람들 모두가 소작료 문제로 지주의 집으로 찾아간다. 1930년대를 전후해서 소작쟁의가 크게 증가했고 쟁의에 참가한 농민의 수도 배로 늘었다. 이 소설은 그러한 사회 현실을 반영하며, 현실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농민들의 자세를 보여준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 /&gt;※ 참고 문헌&lt;br /&gt;오양호 / 1930년대 초기 농민소설 고찰 / 현대소설연구 / 1995&lt;br /&gt;박윤자,&amp;nbsp;박영준&amp;nbsp;/&amp;nbsp;농민소설연구&amp;nbsp;/&amp;nbsp;창원대&amp;nbsp;교육대학원&amp;nbsp;/&amp;nbsp;2005&lt;/p&gt;</description>
      <category>긍정적 인물</category>
      <category>농민소설</category>
      <category>모범경작생</category>
      <category>박영준</category>
      <category>부정적 인물</category>
      <category>인물의 변화</category>
      <category>인물의 특징</category>
      <author>돈많은한량이꿈</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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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sora-2878.tistory.com/entry/%EB%B0%95%EC%98%81%EC%A4%80-%EB%AA%A8%EB%B2%94%EA%B2%BD%EC%9E%91%EC%83%9D-%EC%9D%B8%EB%AC%BC%EC%9D%98-%ED%8A%B9%EC%A7%95#entry19comment</comments>
      <pubDate>Mon, 15 May 2023 20:26:44 +0900</pubDate>
    </item>
    <item>
      <title>박영준 &amp;lt;모범경작생&amp;gt; 서사구조의 특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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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모범경작생&amp;gt;은 193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1월에 조선일보에 게재된 단편소설이다. 농촌경제가 붕괴 위기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일제 식민통치 당국이 고안해 낸 농업 진흥책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야기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lt;/p&gt;
&lt;ol style=&quot;list-style-type: decimal;&quot; data-ke-list-type=&quot;decimal&quot;&gt;
&lt;li&gt;마을 사람들이 길서를 부러워함&lt;/li&gt;
&lt;li&gt;길서와 의숙 만남&lt;/li&gt;
&lt;li&gt;길서가 강습회에서 배운 것을 마을 사람들에게 전달함&lt;/li&gt;
&lt;li&gt;길서와 의숙 만남&lt;/li&gt;
&lt;li&gt;길서가 면장, 면서기 등과 야합하여 마을 사람들의 부담을 늘림&lt;/li&gt;
&lt;li&gt;길서가 마을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고 일본으로 떠남&lt;/li&gt;
&lt;li&gt;길서가 면장과 야합한 사실을 알고 분노하여 길서 논의 팻말을 깨뜨림&lt;/li&gt;
&lt;li&gt;화난 마을 사람들이 지주 서재당 집으로 몰려감&lt;/li&gt;
&lt;li&gt;의숙을 만나러 간 질서가 성난 성두를 피해 도망감&lt;/li&gt;
&lt;/ol&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모범경작생&amp;gt;의 결말은 '성두'를 중심으로 한 농민들이 사회의 부조리를 인식하고 지주에게 대항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일제와 야합한 길서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더욱 어려움에 처하게 되고, 마지막에 성두가 충혈된 눈으로 뛰어 들어오는데, 이것으로 소작쟁의가 패배로 끝났음을 알게 한다. 이처럼 결말의 상황이 처음보다 나빠졌으므로 하강적 구조를 보이고 있고 하강적 미의식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또한 노만 프리드만의 플롯 유형으로는 '애상적 플롯'으로 볼 수 있다. 이 유형은 자신의 잘못이 없는데 불운을 겪고 있는 공감적인 주인공이 나오는 플롯을 말한다. 하강적 구조는 시대 상황이 암울하여 인물의 행복이나 보다 나은 상황을 바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1930년대의 시대 상황을 생각하면 당연한 귀결로 보인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 소설에서 갈등은 소설의 중반부까지도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다. 궁핍한 생활이었지만 마을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고 평화스러운 분위기이다. 또한 소설 초반에는 길서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감정이 긍정적이었고, 길서는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이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러나 길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면장, 면서기가 마을의 호세를 울리는데 동의하고 뽕나무 값을 잘 받기 위해 그들과 야합했다. 갈등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동네 사람들은 길서를 존경하고 자랑할 만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길서는 동네 사람들의 편에 서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들의 처지를 돌아보지 않는다. 먹을 것도 없어 허덕이는 농민들에게 호세를 올리는 것은 절망적인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지만, 길서는 '근심이 조금도 없다고야 할 수 없지마는 무던한 편'이라고 말하며 호세 올리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본격적인 갈등은 가을에 발생한다. 강충이가 먹어 예년에 비해서 절반도 곡식을 거둘 수가 없었지만, 소작료는 전과 같이 내야 했기 때문이다. 흉년이 들어 지주와 교섭을 해야 할 때,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서 가장 똑똑하고 말도 잘하는 길서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길서는 '자기와 관계없을 뿐 아니라', '소작쟁의'와 같은 일은 당치 않다고 거절했다. 그리고는 일본 시찰단으로 떠나 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믿고 있던 길서에게서 이런 거절을 당하게 되자 당황했지만 스스로 지주 서재당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지주는 소작권으로 소작농을 더욱 위협하고 교섭은 무산되었다. 길서의 동의하에 뽕나무 값이 엄청나게 비싸진 것과 호세가 오른 것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길서를 미워하게 된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주와 담판을 지을 각오로 온 동네 사람들이 지주의 집으로 몰려간다. 이 부분에서 마을 사람들 즉 농민들의 현실에 대한 인식이 생겼음을 보여주는데, 달라진 농민의 모습이 나타난다. 당시의 많은 소작쟁의가 소작표 때문이었음을 감안할 때, 이 소설은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모범경작생&amp;gt;은 1930년대 초반의 농촌계몽운동의 영향으로 농민의 의식이 표면에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후의 작품들은 농민의식이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미미하게 언급되지만 그 존재는 분명히 알 수 있으며, 농촌 현실과 이물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잇따. 농민 의식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은 일제의 탄압이 심해진 시대적 상황과 관련이 있다고 보인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농민들은 소작료도 낼 수 없는 상황에 뽕나무 값과 호세가 오르자 농사는 둘째 치고라도 더 이상 살 수 없는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성두가 '아마 북간도나 만주로 바가지를 차조 떠나야 하는가 보다.'라는 생각을 하는데, 이것은 마을 사람들의 공통된 심정일 것이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태에서 농민들은 지주에게 저항을 하지 않을 수 없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모범경작생&amp;gt;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소설로, 갈등 구조는 가진 자(지주)와 가지지 못한 자(소작농)의 대립으로 볼 수 있다. 주된 갈등의 원인은 소작료 문제이고, 뽕나무 값과 호세 등 일제의 농간에 의한 경제적인 부담도 원인이 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 소설은 농민의 의식이 전면에 드러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리고, 현실 인식에 따른 농민들의 집단적인 행동도 나타난다. 흉년이 들었는데 소작료를 그대로 내야 한다는 것은 누가 생각해도 모순이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농민의 힘을 합해 저항하는 것이다. 이러한 농민의 문제의식은 농민소설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모범경작생&amp;gt;에서 길서와 마을 사람들의 갈등도 나타난다. 길서는 마을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었는데, 일제의 농업 진흥책이 계속 진행되는 동안 일제의 앞잡이인 본모습을 확연히 드러낸다. 길서가 본모습을 드러내면서 농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진다. 여기서 일제의 농업 진흥책이 얼마나 유명무실한지를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길서는 지주가 아니다. 길서도 이전에는 '가지지 못한 자'였지만, 일제가 정책적으로 길서가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볼 수 있다. 길서와 마을 사람들의 형편은 세월이 흐를수록 양극화되는데, 이는 1930년대 시대 상황에서 다룬 바 있다. 그러므로 &amp;lt;모범경작생&amp;gt;의 갈등은 크게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갈등이라고 볼 수 있으며, 갈등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가난이고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소작료의 문제이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소설의 전개 과정에서 대립의 한 편에 있는 지주는 거의 언급이 되지 않는다. &amp;lt;모범경작생&amp;gt;의 갈등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와의 갈등인데, 대부분의 이야기가 가지지 못한자들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고 가진 자인 지주는 몇 줄밖에 언급이 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작가의 시선이 농민들의 생활과 시대 현실에 더 많이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이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내용의 전개 양상을 살펴보면, 1~5까지는 느리고 밋밋하게 진행된다. 일상적인 일에 대한 잡다한 생각과 심리 묘사, 그리고 경치에 대한 묘사도 나타난다. 그러다가 6~9까지는 급박하게 진행된다. 갈등이 본격화되는 소설의 결말 부분에 가서는 갑자기 다급해지면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한다. 강충이가 먹은 것, 길서에게 교섭을 부탁하는 것, 마을 사람들이 서재당을 찾아가는 것, 뽕나무 값과 호세가 오른 것 등 마을 사람들은 소작쟁의라는 투쟁의 길을 선택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렇듯 처음에는 완만하게 진행되다가 끝 부분에 가서는 몰아붙이는 식의 진행을 한다. 결과로 소작쟁의가 발생하지만, 소작쟁의에 대한 자세한 상황은 묘사되지 않는다. 이는 시대적인 상황으로 인해 소작쟁의에 대한 언급을 할 수 없었고, 묘사를 하지 않더라도 독자들이 그 상황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마지막에 '충혈된 눈'으로 성두가 뛰어들자, 길서가 도망간다. 성두를 중심으로 한 마을 사람들의 소작쟁의는 지주와 소작농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소작농의 일방적인 패배로 끝이 난 것을 알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급박하게 몰아붙여 사건을 일으키고 난 뒤 인물의 운명을 밝히지 않고 끝을 맺어 버리는데, 이런 플롯을 '열린 플롯'이라 한다. 인물들의 운명을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는 것이다. 인물의 운명을 밝히지 않더라도 독자들은 길서와 성두,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1930년대 사회 상황이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어 누구나 결말을 예측할 수 있고, 현실적으로 인물의 운명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플롯의 사용은 소설과 현실을 하나로 느끼게 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결말 부분의 소작쟁의 말고 &amp;lt;모범경작생&amp;gt;에는 이렇다 할 사건이 등장하지 않는다. 다른 사건들은 짧은 설명으로 언급만 하고 지나간다. 그러므로 결말 부분에서 일어나는 사건(소작쟁의)이 초점이 되는 양상이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모범경작생&amp;gt;의 시간적 흐름은 순차적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농민들의 생활을 압축하여 나타내고 있어 &amp;lt;&amp;lt;일 년&amp;gt;&amp;gt;을 단편소설화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내용의 전개가 논리적으로 무리가 없다. 그러나 길서와 의숙의 연애담이 내용의 전개상 필요한 부분으로 보이지 않는다. 연애담이 힘겨운 농촌 현실에 낭만과 재미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농촌의 현실을 더 핍진하게 느낄 수 있는 소재가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연애담이 들어감으로써 전개를 산만하게 하고 사건의 필요성을 떨어뜨린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 참고 문헌&lt;br /&gt;오양호 / 1930년대 초기 농민소설 고찰 / 현대소설연구 / 1995&lt;br /&gt;박윤자,&amp;nbsp;박영준&amp;nbsp;/&amp;nbsp;농민소설연구&amp;nbsp;/&amp;nbsp;창원대&amp;nbsp;교육대학원&amp;nbsp;/&amp;nbsp;2005&lt;/p&gt;</description>
      <category>1930년대</category>
      <category>3인칭 전지적 시점</category>
      <category>농민 의식</category>
      <category>농민문학</category>
      <category>농촌계몽운동</category>
      <category>모범경작생</category>
      <category>박영준</category>
      <category>배경의 특징</category>
      <category>열린 플롯</category>
      <author>돈많은한량이꿈</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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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5 May 2023 19:09:2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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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작가 박영준의 생애와 1930년대 농민문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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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박영준의 생애&amp;nbsp;&lt;/h2&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만우 박영준은 1911년 3월 3일 평남 강서군 함종면 발본리 688번지에서 기독교 목사인 박석훈과 하석애의 차남으로 출생했다. 아호는 만우로 청전 이상범 선생이 대구 피난 시절에 지어 주셨는데, '너는 소 같다. 부지런하나 빠르지 않고 느릿느릿 일을 한다. 소 가운데서 느린 소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박영준의 유년시절은 그의 자전적 소설인 &amp;lt;전사시대&amp;gt;에 잘 나타나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19년(9세)에 부친이 3.1 운동에 가담하여 투옥되었고, 박영준은 서당에서 1년간 한학을 수학했다. 이 때의 한문 공부가 박영준으로 하여금 유교적인 윤리의식을 갖게 한 것으로 보인다. 서당에서 교재로 삼은 것은 유교의 경전이며 내용은 윤리에 관한 것이므로,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나이에 그 영향을 많이 받았으리라고 짐작이 되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고된 유년기 시절을 보낸 탓에 정서적으로 외로움이 컸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20년(10세)에 함종 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부친은 독립운동으로 피검되어 평양 형무소에 투옥되었다가 복역 중 사망하였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가정 살림은 늘 궁핍하여 바지저고리에 초신(짚신)을 신고 다니고, 학교에 다녀와서는 어머니를 도와 장작패기, 빨래하기, 김치 담그는 일까지 했다고 한다. 이러한 가난의 체험이 나중에 농민소설을 쓸 수 있게 한 원천이 된 것을 그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다. 박영준의 농민소설에서 아버지의 인물형은 무능하거나 부재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 또한 그의 가정사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최초의 단편집인 &amp;lt;&amp;lt;목화씨 뿌릴 때&amp;gt;&amp;gt;의 서문에서 '나는 가난 속에서 낫고 가난 속에서 자랏고 또 장차 가난 속에서 죽으리라 믿는다. 내가 아는 사람도 내가 본 사람도 역시 가난한 이들뿐이었다. 그 속에서 나온 내 소설이 가난이 아닐 수 없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가난을 직접 체험한 그의 농민소설은 이광수와 같은 관념적 농민소설이 아니라 이무영과 같은 실천적 농민소설로 보아야 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24년(14세)에 함종 공립보통 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숭실중학교에 입학하였다가, 1926년(16세)에 평양 광성 고등보통 학교 3학년으로 편입하였다. 박영준이 어려운 형편에서도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선교사 자녀 육성기금과 고학 때문이었다.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활발한 교우관계가 없었고, 이 시절에 최인준(아동문학으로 출발하여 후에는 소설을 씀)에게서 문학에 대한 자극을 받아 문학에 심취하게 되었다. 1927년(17세), 교우지에 &amp;lt;M에게&amp;gt;라는 시를 발표하며 문학활동을 시작하였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28년(18세)에 평양 광성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직후 선원이 되려고 응모했다가 키가 작다는 이유로 탈락하였다. 이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여 배은수, 장서인 등과 함께 연극 &amp;lt;정의&amp;gt;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연극 출연 중 '삭발 사건'은 연희 연극사에 남았고, 그로 인해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다. 이때 &amp;lt;&amp;lt;문우&amp;gt;&amp;gt;라는 잡지를 만들어 앞장서서 일을 했다. 1931년 (21세)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 휴학하고, 귀향하여 산정면 사달학교에서 1년가 교편을 잡았다. 교편을 잡은 것으로 보아 학업을 계속하지 못할 만큼 형편이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34년(24세),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면서, 장편 &amp;lt;&amp;lt;일년&amp;gt;&amp;gt;이 &amp;lt;&amp;lt;신동아&amp;gt;&amp;gt; 현상소설 모집에 당선이 되었고, 단편 &amp;lt;모범경작생&amp;gt;이 &amp;lt;&amp;lt;조선일보&amp;gt;&amp;gt; 신춘문예에, 콩트 &amp;lt;새우젓&amp;gt;이 &amp;lt;&amp;lt;신동아&amp;gt;&amp;gt;에 거의 동시에 당선되어 화제를 일으키며 문단에 등장하였다. 당선 소간에서 '그만 죽어도 한이 없다.' '내 일생의 최고의 기쁨이었다.'라고 말할 만큼 그에게 기쁨은 컸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러나 졸업 후, 취직은 안 되고 생활은 궁핍하여 자살을 늘 생각하다가 죽기 전에 결혼이나 해 보고 죽자고 마음먹고 결혼을 결심하였다. 신부에게 가난함을 고백하고 4월 19일 정숙용 여사와 결혼하였는데, 결혼 비용으로 14원이 들었다고 한다. 이후 간도 용정촌 동흥중학교에서 1년간 근무하였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35년(25세)에 고향에서 있은 '독서회'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독서회 사건은 그의 고향 청년들이 문학 써클을 만들어 문학 작품을 돌려 가며 읽은 것을 트집 잡은 것이었다. 고향 청년과 단 한 번 만나 문학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그를 주동인물로 체포한 것이다. 그것은 당시 일본이 박영준의 고향 근처에다 간척농장을 만들어 소작인을 넣기 시작했는데, 소작쟁의 등 말썽을 예방하자는 차원에서 일으킨 사건이었다. 박영준이 &amp;lt;&amp;lt;일 년&amp;gt;&amp;gt;에서 지주의 횡포와 일제의 허위정책을 비난하여 소설의 삼분의 일을 삭제당한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혐의를 벗지 못하고 감옥에 가게 되었다. 이때의 감옥 경험은 그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고, 이후 그의 작품 세계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lt;/p&gt;
&lt;blockquote data-ke-style=&quot;style3&quot;&gt;&amp;nbsp; 선생님은 주무시면서 노래를 부르시고 계셨습니다. 깜짝 놀라 선생님이 깨신 후 여쭤보니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시면서 자면서 노래 부르는 게 내 버릇이지 하셨습니다. 일제시대 감옥소에 독서회 사건으로 끌려 들어가 한 반년 가량 고생하셨을 때 생긴 버릇인데 꿈속에서 노래를 부르시는 버릇은 그 후로 계속되어 오셨다는 것입니다.&lt;/blockquote&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감옥에서 불안과 공포를 떨치기 위해 부르던 노래를 평생 버릇으로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면 충격이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 후, 국내에서 생활이 어려워져 1938년(28세)에 만주 길림성 반석현으로 이주하여 교직생활을 하게 되었다. 만주에서 생활을 하게 되자 만주를 배경으로 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을 소재로 글을 썼다. 그리고 일제의 탄압이 극심했던 말기에는 다른 작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도 붓을 꺾고 침묵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45년(36세)에 경향신문사 문화부 차장이 되었고, 1948년(38세)에 고려문화사 편집국장이 되었다. 1949년(39세)에 그의 모친이 별세했다. 일찍 남편을 잃고, 가난과 싸우다가 일생을 마친 불행한 어머니였기에 박영준의 슬픔은 컸을 것이다. 문학 작품에서 어머니에 대한 감정은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자식을 위한 헌신적인 여인상이고, 또 하나는 기존 윤리에 얽매인 보수적인 여인상이다. 농민소설에는 헌신적이고 보수적인 여인상도 나타나지만, 생활에 적극적이고 자립성이 강한 여인상도 나타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50년(40세)에 6.25 전쟁이 났으나 피난을 가지 못하고 있다가 북괴군에게 잡혀 북으로 끌려가다가 개천에서 구사일생으로 탈출하였다. 1951년(41세)에 육군본부문관으로 복무하였고 종군작가단이 결성되자 사무국장으로 취임하여, 여러 차례 일선을 종군하면서 전쟁소설을 발표하였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53년(40세)에 6.25전쟁이 났으나 피난을 가지 못하고 있다가 북괴군에게 잡혀 북으로 끌려가다가 개천에서 구사일생으로 탈출하였다. 1951년(41세)에 육군본부문관으로 복무하였고 종군작가단이 결성되자 사무국장으로 취임하여, 여러 차례 일선을 종군하면서 전쟁소설을 발표하였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53년(40세)부터 생활이 안정되기 시작하여, 1955년(45세)에 연희대 강사와 수도여사대 강사생활, 1959년(49세)에 한양대학교 부교수, 1962년(52세)에 모교인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장에 취임하였다. 1975년(65세)에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장에 취임하였고, 정년퇴임을 1년 앞둔 1976년(66세) 7월 14일에 지병인 당뇨병으로 세상을 떠나,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운경공원묘원'에 안장되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박영준의 작품 세계는 보통 3시기로 나눈다. 초기에는 농촌을 배경으로 하여 농촌의 문제를 다룬 농민소설, 중기에는 6.25의 경험과 종군작가단의 활동을 통해 체험한 것을 소재로 한 전쟁소설, 말기에는 서구의 물질문명에 휩쓸려 자기 것을 상실하고 도덕의식, 윤리의식을 망각한 병든 도시인의 생활을 그린 도시소설을 주로 발표하였다.&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수상경력으로는 1954년 제1회 아세아 자유문학상 수상, 1955년 화랑무공은성훈장 수상, 1965년 예술원상(문학) 수상, 1967년 서울시 문화상(문학) 수상, 1975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문화공보부) 은관 문화 훈장을 수상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1930년대 시대적 상황&amp;nbsp;&lt;/h2&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박영준의 농민소설은 1934년에서 1937년에 쓰인 것으로 창작에 영향을 주었을 당시의 시대 상황을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또한 박영준의 농민소설이 시대적 상황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시대 상황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일본은 우리나라를 강점한 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수탈을 하였는데, 그 중 1910년부터 실시된 토지조사사업은 우리 농촌 경제를 완전히 분해하고 농민의 소작농화를 심화시켰다. 토지조사사업의 결과 화폐경제의 농촌 침투, 조세제도, 전매제도 등의 압력이 생겨났고, 이로 말미암아 자작농 및 자작 겸 소작농이 완전한 소작농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농민의 영세성과 반봉건적 소작관계가 확대 재생산되고, 자작농과 자작 겸 소작농을 희생시키면서, 대지주 층에 대한 토지 집중 현상을 가져왔다. 이 시기에 농민층의 분해 및 분화가 더욱 심화되었고 자작 농민층의 몰락에 의한 계급 대립 현상은 더욱 심화되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30년대는 농촌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영세 자작농 및 소작농이 직면했던 경제적 파탄의 위기를 그 시대적 상황으로 하고 있다.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여 장차 세계를 제패해 보려는 제국주의의 침략적 야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로 인해 한반도는 식량 조달의 병참기지로 가혹한 경제적 착취의 폐해를 직접적으로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경제수탈은 태평양전쟁이 임박해갈수록 심화되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일본은 토지조사사업으로 이름 없는 토지를 국유화하여 동양척식회사 등과 같은 일본인 대지주를 직접적인 농촌지배의 근간으로 하며, 토착지주를 보조 축으로 한 식민지 지배체재를 확립하였다. 이로 인해 소득분배의 불균형이 극대화되었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더욱이 관과 결탁한 수조권자의 횡포는 거의 전횡에 가까웠는데, 소작지대의 고율 책정은 물론, 경작권의 이전 또한 임의로 행사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리하여 농가의 부채는 해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고, 영세 자작농의 소작농화도 점점 심화되어 가는 형편이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30년대 농촌 경제는 갈수록 피폐해지고 더 이상 생활고를 견뎌내지 못한 농민들은 유민의 무리가 되어 대륙으로 이주해 가거나 도시를 전전하는 하급 노동자로 전락하였다. 특히 고율의 소작료와 장리변은 대부분의 영세 부채 농가들을 더욱더 경제적으로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지만, 그나마 경작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그대로 감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농사를 천직으로 믿고 땅을 부쳐온 농민들에게 있어서 경작권을 빼앗긴다는 것은 곧 삶의 근거를 단절당하는 것과도 같았고, 지주의 임의적 행사로 토지의 경작권이 남에게 이전되었을 때는 그들도 필사적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1930년대 소작쟁의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필연적인 결과로 볼 수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러한 식민 치하의 농촌 현실은 1920년대부터 사회현실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문인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작가들은 암울한 식민지 하의 비참한 농촌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기도 하고, 희망이 없는 현실을 방화나 살인 등으로 마무리하기도 했다. 1925년 카프의 결성으로 목적성이 강한 문학시대를 열어나갔다. 그들은 당시의 암울한 시대적 상황과 사회적 현실을 문학작품에 도입하고 그것을 그들이 목적하는 방향으로 유도해 나갔다. 이러한 목적 문학은 1935년 카프가 해체될 때까지 주도적인 사도로 문단에 군림하였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32년 동아일보가 중심이 된 농촌 계몽운동이 민족의 자활운동의 성격을 띠고 일어났고, 조선일보의 문자보급운동이 합세하여 민족갱생을 위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를 토대로 이광수의 &amp;lt;&amp;lt;흙&amp;gt;&amp;gt;(1932)과 심훈의 &amp;lt;&amp;lt;상록수&amp;gt;&amp;gt;(1934)가 발표되었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이 더욱 심해져 1934년 이후부터 운동을 계속하지 못하게 되었고, 1935년 농민을 계급화하여 농민문학을 목적문학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카프도 해산되었다. 이로 인해 문단의 분위기가 침체되었고 작가의 태도나 의식에도 혼란이 생겨 문학 활동은 저조하게 되었다. 문단의 침체기에 박영준의 농민소설이 발표되었는데, 작품의 서사구조, 인물, 주제 등에 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박영준의 농민소설은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1930년대의 농촌 현실은 참혹했다. 일제의 언론탄압과 대륙을 향한 침략 야욕으로 인해 한반도에 대한 경제 수탈이 더욱 심해져 농촌은 극도로 피폐화되었다. 박영준은 이러한 1930년대의 농촌 현실을 사실적으로 제시하는 동시에, 현실에 대한 농민의 인식과 저항의식을 작품에 반영하고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1930년대 농민 문학의 유형&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30년대 농민 문학의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첫째는 카프 문학 쪽. 1920년대 노동자 계급의 입장에서 문학을 논하던 카프 문학 진영은 1930년을 기점으로 농민 계급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면서 노동자와 농민의 연대를 주장하기 시작한다. 평론가 안함광과 백철의 이른바 '농민문학 전쟁'을 거치면서 이론적인 토대로 형성해 간 카프 진영은 그 성과물의 하나로 &amp;lt;&amp;lt;농민 소설집&amp;gt;&amp;gt;을 묶어 낸다. 특히 카프 작가 이기영은 &amp;lt;서화&amp;gt;(1933), &amp;lt;고향&amp;gt;(1934) 등을 통해 농민의 현실을 깊이 있게 성찰함으로써 1930년대 농민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명성을 떨친다. 이기영 외에 조명희의 &quot;낙동강&quot;, 권한의 &quot;목화와 콩&quot;과 같은 작품을 선보이며 사실주의적이고 계급주의적인 경향을 고수한 카프 진영의 농민 문학은 1930년대의 가장 진보적이고 현실적인 농민 문학 유형으로 평가받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둘째는 민족주의 문학 쪽. 합법적인 농민 계몽 운동과 관련된 작품이 대부분인데, 이를테면 수양 동우회의 이념에 따라 펼쳐진 농민 교육 운동의 산물인 이광수의 &amp;lt;흙&amp;gt;(1933)이나 동아일보사, 조선일보사를 중심으로 펼쳐진 브나로드 운동의 산물인 심훈의 &amp;lt;상록수&amp;gt;등이 그것이다. 일반 대중의 호응은 컸으나 지식인 중심의 위로부터의 일방적인 계몽사상 고취라는 한계를 가져 관념적이고 이상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마지막으로 농민 자각형의 유형. 박영준의 &amp;lt;모범 경작생&amp;gt;이나 이무영의 &amp;lt;제1장과 제1장&amp;gt; 등이 대표작이다. 이것은 농민 계몽 운동과 맥을 함께 하는 측면도 있지만 비판적인 농민 의식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앞의 것과 차이가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 외에 김유정의 &amp;lt;봄봄&amp;gt;(1935), 이태준의&amp;lt;농군&amp;gt;(1939), 박화성의 &amp;lt;고향 없는 사람들&amp;gt;(1936) 등도 농민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들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 참고 문헌&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오양호 / 1930년대 초기 농민소설 고찰 / 현대소설연구 / 1995&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박윤자, 박영준 / 농민소설연구 / 창원대 교육대학원 / 2005&lt;/p&gt;</description>
      <category>1930년대 농민문학의 유형</category>
      <category>1930년대 시대적 상황</category>
      <category>농민문학의 유형</category>
      <category>농민소설</category>
      <category>박영준</category>
      <category>작가</category>
      <category>카프</category>
      <author>돈많은한량이꿈</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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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sora-2878.tistory.com/entry/%EC%9E%91%EA%B0%80-%EB%B0%95%EC%98%81%EC%A4%80%EC%9D%98-%EC%83%9D%EC%95%A0%EC%99%80-1930%EB%85%84%EB%8C%80-%EB%86%8D%EB%AF%BC%EB%AC%B8%ED%95%99#entry17comment</comments>
      <pubDate>Mon, 15 May 2023 18:38:59 +0900</pubDate>
    </item>
    <item>
      <title>오정희 &amp;lt;저녁의 게임&amp;gt; 줄거리 및 핵심 정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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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줄거리&lt;/h2&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나는 혼기를 놓치고 악성 빈혈에 시달리는 노처녀이며, 아버지는 위장을 반 넘게 잘라 내고 정기적으로 인슐린을 주사해야 하는 삶에도 집요한 애착을 갖는 환자이다. 둘은 오빠의 부재를 순간순간 확인하며 저녁식사를 한다. 어느 날 문득 슬그머니 사라진 오빠로 인하여 나와 아버지는 심한 충격을 받는다. 나는 생활 곳곳에서 오빠의 존재를 확인하며 놀라고 아버지 역시 하루에 열 번 정도는 우편함을 열어 보고 화투패의 운수를 떼면서 오빠를 기다린다. 공연한 기다림으로 서성대는 아버지를 나는 공범끼리의 적의와 친밀감으로, 그리고 언제든 준비되어 있는 배반감으로 지켜본다. 저녁식사가 끝난 뒤 부녀는 뒷면만 보아도 훤히 알 수 있는 화투를 가지고 게임을 한다. 속임수임을 알면서 벌이는 화투놀이란 낡고 너덜너덜해진 각본으로 끊임없이 해대는 연극이며, 거짓말인 줄 알면서 나누는 대화는 소통되지 않는 부조리극의 대사이다. 오빠에 대한 기억 못지않게 나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어머니의 비극적인 삶이다. 기형아를 낳은 뒤 아이를 살해하고 미쳐서 기도원과 정신병원에 갇혀 지내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나는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을 갖는다. 하지만 일상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한 나는 화투놀이를 하는 도중 들려오는 낯선 남자의 휘파람 소리를 순수한 첫사랑의 대상이었던 열아홉의 '그 애'가 부르던 휘파람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그 낯선 남자와 자학적인 정사를 벌인 뒤 방에 돌아온 나는 책상서랍을 열고 어머니가 보낸 편지를 읽는다. 비로소 어머니의 죽음의 실체가 드러나고 나는 나 자신의 가장 깊숙한 곳과 만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핵심 정리&amp;nbsp;&lt;/h2&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 갈래 : 단편 소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 배경 : 등장인물들에게 소외의식과 상실감, 유폐된 공간으로 인식되는 집&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 구성&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nbsp;1) 나는 개수대 앞에서 저녁을 준비하다 창밖의 소년원생 행렬을 바라본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nbsp;2) 나와 아버지는 저녁식사를 하고 녹음기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던 오빠의 목소리를 듣는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nbsp;3-1) 뒷면만 보아도 패를 알 수 있는 화투를 가지고 아버지와 나는 화투놀이를 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nbsp;3-2) 이층의 세 든 집에서 아이가 보채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어머니를 회상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nbsp;3-3) 밖에서 들리는 휘파람 소리에 나는 휘파람 소리로 나를 찾아오던 그 애를 회상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nbsp;3-4) 집나간 오빠의 얘기에 화를 내는 아버지와, 집에서 달아나고 싶은 나는 데려가 달라는 어머니의 말을 회상하면서 어디나 마찬가지라고 자조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nbsp;4) 나는 아버지와의 화투놀이를 끝내고 밖으로 나가 사내와 의미 없는 정사를 나눈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nbsp;5) 집으로 돌아와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것 같은 어머니의 편지를 읽으며 어머니의 죽음을 회상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nbsp;6) 나는 찬 방바닥에 몸을 뉘이고 자위행위를 한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 주제 : 부녀간의 화투놀이를 통한 인간의 존재에 대한 성찰&amp;nbsp;&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중심인물&lt;/h2&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나 : 악성빈혈에 시달리는 노처녀.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어머니와 오빠를 회상하면서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으나 아버지에게 애증의 감정을 품음. 집에서 이탈하고 싶어 함&lt;/li&gt;
&lt;li&gt;아버지 : 위장을 반 넘게 잘라 내고 정기적으로 인슐린을 주사해야 하는 삶에도 집요한 애착을 가지는 가부장적이고 속된 인물. 어머니를 정신병원으로 보내 죽게 만들었으며, 오빠의 가출에 무관심한 척 하지만 돌아오는 것을 계속 기다리고 있음&lt;/li&gt;
&lt;li&gt;어머니 : 자신이 낳은 기형아를 죽이고 정신병원과 기도원을 전전하다가 쓸쓸하게 죽음&lt;/li&gt;
&lt;li&gt;오빠 : 자폐적 성격의 인물로 가출했음&lt;/li&gt;
&lt;li&gt;사내&lt;/li&gt;
&lt;li&gt;소년&lt;/li&gt;
&lt;li&gt;위층 아기엄마&lt;/li&gt;
&lt;/ul&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이해와 감상&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 소설의 장점은 평범하고 진부한 일상을 바라보는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뛰어난 관찰력에 있다. 사소한 이야기 가운데서 생의 진실한 공감을 캐내는 오정희의 솜씨는 화투놀이 한 장면으로 삶의 본질을 탐색하는 이 작품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무의미한 일상에서의 탈출 욕망과 그것의 좌절에서 오는 존재의 허무와 비극을 형상화한 이 소설은 가을 저녁밥을 지을 때부터 잠들기 전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드러난 것과 숨겨진 것, 부재와 기다림, 삶과 죽음을 가지고 존재의 비극을 드러낸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국어</category>
      <category>등장인물</category>
      <category>소설</category>
      <category>언어영역</category>
      <category>오정희</category>
      <category>이해와 감상</category>
      <category>저녁의 게임</category>
      <category>줄거리</category>
      <category>핵심 정리</category>
      <category>화투놀이</category>
      <author>돈많은한량이꿈</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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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1 May 2023 20:10:35 +0900</pubDate>
    </item>
    <item>
      <title>오정희 &amp;lt;중국인 거리&amp;gt; 줄거리 및 핵심 정리</title>
      <link>https://sora-2878.tistory.com/entry/%EC%98%A4%EC%A0%95%ED%9D%AC-%EC%A4%91%EA%B5%AD%EC%9D%B8-%EA%B1%B0%EB%A6%AC-%EC%A4%84%EA%B1%B0%EB%A6%AC-%EB%B0%8F-%ED%95%B5%EC%8B%AC-%EC%A0%95%EB%A6%AC</link>
      <description>&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줄거리&lt;/h2&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주인공인 '나'를 비롯한 식구들은 아버지의 일자리를 따라 피난지로부터 항구 도시 외곽에 있는 중국인 거리로 이주한다. 그곳은 전쟁으로 인해 폐허로 둘러싸여 전형적인 전후의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 거리를 배경으로 공복감과 해인초 냄새가 어우러져 피어오르는 노란빛의 환각적 이미지로 표상되는 유년의 기억 속에서 한 편의 '성장 드라마'가 펼쳐진다. 성장의 조짐은 주인공이 우연히 건너편 이층집 창문에서 중국인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게 되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 순간 주인공은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비애의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는 바, 그의 창백한 표정에 담긴 욕망의 시선이 주인공의 내부에서 움트고 있던 욕망의 움직임은, 양공주 매기 언니와 관계의 그늘 속에서 어두운 삶을 살다 간 할머니의 죽음을 거치면서 정적인 성장의 고뇌로 성숙되어 간다, 욕망의 역동적 이미지와 죽음의 정적인 이미지가 교차하는 고독과 사색의 공간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피 속에 순처럼 돋아 오르는 무언가를 감지한다. 그것은 마치 상처라 아무는 듯이, 참을 수 없는 간지러움을 동반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성장의 고비를 확인이라도 하듯 주인공은 절망감과 막막함 속에서 초조(初潮)를 맞이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핵심 정리&lt;/h2&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갈래 : 단편소설&lt;/li&gt;
&lt;li&gt;배경 : 전쟁 직후의 항구도시에 위치한 중국인 거리&lt;/li&gt;
&lt;li&gt;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lt;/li&gt;
&lt;li&gt;구성 : 발단 - 나와 식구들은 항구 도시에 자리잡은 중국인 거리로 이주해 온다&lt;/li&gt;
&lt;li&gt;구성 : 전개 - 중국인 거리의 낯선 풍경에 대한 인상과 그곳에서의 생활이 소개된다&lt;/li&gt;
&lt;li&gt;구성 : 위기 - 나는 중국인 청년의 창백한 얼굴과 마주치고 알 수 없는 슬픔과 비애를 느낀다&lt;/li&gt;
&lt;li&gt;구성 : 절정 - 나는 매기 언니와 할머니의 죽음을 겪으며 성장의 고뇌를 내면화한다&lt;/li&gt;
&lt;li&gt;구성 : 결말 - 어느 봄날 낮잠에서 깨어난 나는 절망감과 막막함 속에서 초조를 맞이한다.&lt;/li&gt;
&lt;li&gt;주제 : 정신적인 성장의 고통과 그 형상화&lt;/li&gt;
&lt;/ul&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등장 인물&lt;/h2&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나 : 소설의 화자인 열두 살의 소녀. 새로 이주한 중국인 거리를 배경으로 성장의 아픔을 겪어 간다&lt;/li&gt;
&lt;li&gt;치옥 : 나의 급우. 의붓자식이며 매기언니의 동생&lt;/li&gt;
&lt;li&gt;매기 언니 : 양공주. 동거하던 흑인 병사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lt;/li&gt;
&lt;li&gt;중국인 남자 : 창백한 얼굴의 인물로 그와의 마주침을 통해 주인공은 자신의 내부에 잠재된 욕망과 내면을 자각하게 된다&lt;/li&gt;
&lt;/ul&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이해와 감상&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전쟁 직후의 도시에 자리 잡은 중국인 거리를 배경으로, 한 소녀가 겪어 가는 성장의 아픔을 감각적이고도 섬세한 필치로 그려 낸 작품이다. 피난살이 도중에 인천으로 이주해 와 중국인 거리 속에 살게 된 한 소녀의 눈을 통하여, 전쟁이 가져온 비극상을 그려 보이고 있는데, 흑인 병사와의 국제결혼을 꿈꾸던 양공주의 죽음과, &quot;난 커서 양갈보가 될 테야&quot;라고 서슴없이 이야기하는 어린 소녀들의 슬픔 감수성을 통해 전쟁이 낳은 비극과 그것이 어린 영혼에 준 상처를 날카로움을 동반한 담담한 어조로 표현하고 있다. 성격상 이 소설은 유년기 체험에 대한 기록으로 일종의 교양 소설, 혹은 성장 소설의 색채를 지니고 있다.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소녀가 전쟁의 후유증이 그대로 남아 있는 중국인 거리에서 세계에 대한 비극적인 체험을 겪음으로써 사회에 대해 알게 되고 이를 통해 성인으로 성장해 간다는 줄거리 자체가 성장한 소설의 구조인 것이다. 특히 양공주의 죽음 뒤 겪게 되는 초조는 어린 소녀에서 여성으로 변모해 가는 것을 함축하는 것으로, 이는 알을 깨고 부활하는 새의 이미지처럼 또 다른 하나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이 소설의 중요한 소설적 장치는 '회상'의 형식에서 찾을 수 있다. 주인공의 유년기 체험을 화자가 기억을 통해 회상하는 형식은 그리 낯설지는 않지만 참신한 소설 형식으로 짧은 문장과 간결한 문체 속에서도 많은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 특히 소설에서 후각적 이미지를 통한 분위기 조성에 기여하는 '해안초 냄새'는 유년기의 단편적인 기억들을 통일되고, 연관된 것으로 결합시키는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의 큰 특징인 성장 소설적 형태와 회상의 형식을 가능케 하는 효과적인 기법은 유년기 화자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서는 한 소녀가 성인으로 변모해 가는 통과 제의를 유년기 시점을 통해 보여 줌으로써, 삶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 보다 생생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특히 유년기 화자를 통해 이루어지는 해인초 냄새, 회충약에 의한 배앓이, 새끼를 잡아먹는 고양이에 대한 묘사는 기억의 가장 깊숙한 저층에 자리 잡고 있는 원체험으로서 소설의 구체성을 획득하게 하는 데 공헌하고 있다.&amp;nbsp;&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국어</category>
      <category>등장 인물</category>
      <category>성장소설</category>
      <category>소설</category>
      <category>언어영역</category>
      <category>오정희</category>
      <category>이해와 감상</category>
      <category>중국인 거리</category>
      <category>핵심 정리</category>
      <author>돈많은한량이꿈</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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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1 May 2023 19:47:11 +0900</pubDate>
    </item>
    <item>
      <title>오정희 &amp;lt;바람의 넋&amp;gt; - 줄거리 및 핵심 정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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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줄거리&amp;nbsp;&lt;/h2&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세중은 자기 자신을 평범하고 모질지 못한 남자로 생각하고 그것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30대의 은행원이다. 세중의 아내인 은수는 가출벽이 심하고, 다섯 살짜리 승일이는 이미 엄마의 잦은 부재에 익숙해져 있다. 처음엔 세중도 아내의 가출을 여자의 감상벽 정도로 가볍게 처리하고자 했었다. 어느 날 친정에 가던 버스에서 산에 반한 은수는 혼자 산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세 남자에게 윤간을 당하고 밤늦게 귀가한다. 그러나 세중은 은수를 쫓아내고 시골 어머니께 전후 사정을 설명할 것 없이 '곧 올라오셔야겠다'는 전화를 한다. 은수가 은행으로 세중을 다시 찾아갔을 때, 세중은 적금을 해약한 돈 이백만 원을 주며 잠정적 별거를 선언한다. 그 뒤 은수는 친정어머니와 함께 지내게 된다. 은수는 친정어머니의 친딸이 아니었다. 은수도 어려서 사촌의 입을 통해 들어 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은수는 그때부터 이 집은 내 집이 아니라는 생각과 잠시 머물러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최초의 기억으로 뚜렷이 남아 있는, 햇빛에 하얗게 바랜 너른 마당과 함부로 나뒹굴어 있던 두 짝의 고무신은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고 싶어 한다. 세중과 결혼할 무렵 은수는 어머니께 자신이 누구인지를 묻는다. 그러나 은수는 자신이 전쟁고아로 생부의 친구에 의해 길러진 것임을 알아냈을 뿐, 최초의 기억 이전의 일에 대한 궁금증을 풀지는 못한다. 은수는 어린 승일이를 데리고 최초의 기억 이전의 일과 만날 것 같은 기대와 안타까움으로 자신이 자란 항구 도시인 M시를 헤맨다. 서울로 온 은수는 승일을 남편에게 빼앗기고 난 뒤, 어머니께 다시 그것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그 최초의 기억 이전의 일을 알게 된다. 피난을 못 가고 남아 있던 식구들이 모두 도둑들에게 참혹하게 살해되었던 것이다. 어린 은수는 변소에 숨어 그 광경을 목격했다. 살아남은 은수는 혼자 근 1년 전에 엄마의 손을 잡고 오던 길을 더듬어 시의 끝에서 끝까지 아버지의 친구 집을 찾아왔다. 은수가 아무 말을 하지 않아 어머니는 적군의 철수 소식을 듣자 그 집으로 가 보았다. 은수는 햇빛 가득한 마당에서 부옇게 먼지를 쓰고 나뒹구는 두 짝의 검정고무신만을 멀건히 바라볼 뿐 절대로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아이를 남겨 두고 안으로 들어간 어머니는 부엌 앞에 쓰러진 여자와 다락층계에 엎어진 남자와 마루에 엎드려 있는, 이미 얼굴을 찾아볼 수 없게 부패한 여자아이의 시체를 보았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핵심 정리&lt;/h2&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시점 : 3인칭 시점과 1인칭 관찰자 시점의 혼합&lt;/li&gt;
&lt;li&gt;배경 : 서울과 M시&lt;/li&gt;
&lt;li&gt;주제 : 존재에 대한 진실 세계의 추구&amp;nbsp;&lt;/li&gt;
&lt;/ul&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등장 인물&lt;/h2&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최은수 : 홀어머니의 외동딸. 말수가 적고 사교성이 없음. 방랑벽이 있음&lt;/li&gt;
&lt;li&gt;지세중 : 30대의 은행 대리&lt;/li&gt;
&lt;/ul&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이해와 감상&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바람의 넋&amp;gt;은 오정희가 1982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amp;lt;동경&amp;gt;, &amp;lt;하지&amp;gt;, &amp;lt;야희&amp;gt;, &amp;lt;저녁의 게임&amp;gt; 등과 함께 그의 대표작 중의 한 편이다. 작가 오정희의 소설은 사건의 기술이 아니라, 의식의 내면세계의 묘사로 이루어진다. 오정희의 인물들은 타인들과 철저히 단절되어 있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나와 타인의 관계라는 점에서 보면, 오정희 소설이 주는 한 인물의 의식 세계는 타인 존재를 무화시키는 유아론적 고립의 세계이다. 타인의 존재는 그 존재를 겁탈당하고 인식의 대상이 되어 버리며, 나와 타인의 대립 관계가 아니라 이익 관계가 되는 것이다. 나의 의식 세계는 나와 타인의 대립 관계를 나와 대상의 관계로 바꾸어 버리는 셈이다. &amp;lt;바람의 넋&amp;gt;에서 은수가 찾아 헤매었던 그 참혹한 장면은 대면하기에 공포스럽고 전율스러운 것이어서 회피하고 싶은 것이지만, 존재의 진실이기에 대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인간의 근원적 존재, 존재의 심연, 그리고 존재의 진실과 의미론적으로 겹쳐지고 있다. 그 참혹한 장면의 목격이라는 체험 자체가 존재의 심연에의 응시인 것으로 파악될 수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따라서 오정희의 소설 공간은, 나와 타인의 대립 관계 속에서 '나'의 존재론적 의미를 드러내는 구조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그것은 한 인물의 의식 세계를 다룬 그의 소설들은 '나'라는 존재의 진실에 대한 추구를 보여 주며, 또 나와 타인과의 대립 관계를 다룬 소설들은 '나' 들이 공존하는 존재상에 대한 추구를 보여 준다. (성민엽, 작품 해설 참조)&lt;/p&gt;</description>
      <category>등장인물</category>
      <category>바람의 넋</category>
      <category>오정희</category>
      <category>이해와감상</category>
      <category>줄거리</category>
      <category>핵심정리</category>
      <author>돈많은한량이꿈</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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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sora-2878.tistory.com/entry/%EC%98%A4%EC%A0%95%ED%9D%AC-%EB%B0%94%EB%9E%8C%EC%9D%98-%EB%84%8B-%EC%A4%84%EA%B1%B0%EB%A6%AC-%EB%B0%8F-%ED%95%B5%EC%8B%AC-%EC%A0%95%EB%A6%AC#entry14comment</comments>
      <pubDate>Wed, 10 May 2023 20:07:41 +0900</pubDate>
    </item>
    <item>
      <title>여성성장소설로서의 오정희 소설</title>
      <link>https://sora-2878.tistory.com/entry/%EC%97%AC%EC%84%B1%EC%84%B1%EC%9E%A5%EC%86%8C%EC%84%A4%EB%A1%9C%EC%84%9C%EC%9D%98-%EC%98%A4%EC%A0%95%ED%9D%AC-%EC%86%8C%EC%84%A4</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성장소설은 그 주인공이 사회나 집단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가치와 자신에게 요구하는 역할을 깨닫는 과정을 그리면서, 유년기에서 소년기를 거쳐 성인의 세계로 입문하면서 겪는 갈등과 정신적 성장,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한 각성의 과정을 담고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러나 성장 소설은 주로 남성 주인공의 성장을 전제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의미하는 성장소설에서는 여성들의 험난한 성장의 과정은 제외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성장소설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자아의 정체성 확립이 성적인 정체성의 확립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은 그 성장의 주인공이 여성일 경우에 나타나는 변이를 자연스럽게 상정할 수 있다. 중심인물의 성이 성장소설의 특정한 양상, 즉 서사구조나 내면심리, 사회적 양상의 재현에 있어 차이점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런 변이의 존재 및 가능성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오정희 소설이다. 오정희의 소설은 일련의 여성성장소설로 볼 수 있다. 오정희의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는 여성의 정체성 확인과 자아 찾기라는 주제, 여성이라는 일관된 관점에서 자아 문제를 다룬 점 등은 이 작품들을 일련의 성장소설로 인식하게 만든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성장'이란 나이가 드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정희 소설 속 주인공들은 '완성'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모습 즉, 자기 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여성성장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훌륭하게 사회로 진입하는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여성성장소설의 여주인공들은 사회와의 불화 속에서 자아의 정체성을 확립하면서 동시에 여성으로서의 성적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고민하고 갈등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오정희 소설에는 이러한 여성성장소설의 두 가지 국면이 공존하면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오정희의 여성성장소설의 주인공들은 비정상적이고 일탈적인 행동을 하고, 우울하고 심약한 내면 속에 침잠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 모두가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여성들의 고민과 정체성을 찾는 과정과 맞물려있다. 그리하여 여성 성장의 양상을 '정신적 혼돈'과 '정체성 탐색의 노력과 몸부림'이라는 큰 틀 속에서 바라볼 수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먼저, '정신적 혼돈'의 양상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살펴볼 수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첫째, 여성성장소설의 주인공들이 정신적 혼돈을 느끼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amp;lt;유년의 뜰&amp;gt;, &amp;lt;중국인 거리&amp;gt; 에서 볼 수 있는 거처럼 전통적인 가부장제에서는 아버지다운 아버지가 부재하고, 스스로 버려졌다는 의식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amp;lt;중국인 거리&amp;gt;의 '나'는 자신이 생물학적으로 여성임을 의미하는 '초조'를 절망감으로 받아들인다. 이는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며, 성장에 대한 거부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둘째는 '모성 공포'와 '모성 거부'이다. 남성 중심 세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동물처럼 아기를 계속 낳고 고통스러운 삶을 인내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오정희의 인물들은 가부장제에서 요구하는 여성의 모습이 되기를 거부한다는 의미에서 '모성'을 거부한다. 이러한 모성 공포와 모성 거부는 유년시절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amp;nbsp; &amp;lt;안개의 둑&amp;gt;, &amp;lt;불의 강&amp;gt;, &amp;lt;미명&amp;gt;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육체적으로는 사춘기가 지났어도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사춘기적 혼돈 속에서 방황하며 '모성'을 거부한다. 그러기에 그들은 뱃속의 아이를 지우는 일도 서슴지 않고 행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셋째, 태아 살해, 유아방기, 어린이 유괴, 방화, 동성애 및 뒤틀린 성적 관계처럼 다양한 광기의 양상이 나타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정형화된 성 역할에 순응하지 않은 여성은 정상이 아니라고 규정된다. 여성의 광기는 '여성이 생물학적, 성적 혹은 문화적 거세를 강력하게 체험하면서 생기는 것'이다. 또한 '광기'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여성들의 정신적 상처와 여성들의 진실한 인식이 재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광기'는 아버지의 권위에 저항하는 고유의 힘이 된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여성성장소설의 두 가지 국면 중 '정체성 발견의 노력' 부분에 속하는 작품들은 정신적 황폐함과 가부장제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과 노력을 보여주는 작품들 또는 자아 정체성을 발견하거나 모성을 자각하게 되는 유형의 소설들이다. '정체성 탐색의 노력'의 양상은 크게 세 가지로 나타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첫째, 외출을 통해 여성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다. '외출'은 여성주인공들이 남성 세계 안에서 공간 이동을 통해 여성 자신의 현대 위치와 앞으로의 길을 모색하는 행위로, 현실 조건 테두리 내에서 자신의 인식 변화를 통해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현실적인 탐색행위라고 할 수 있다. 오정희 소설의 여주인공들은 타인들과의 눈에 보이지 않은 미세한 균열 속에서 '외출'을 통해 자신의 실존적 위치를 확인하고 정립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순례자의 노래&amp;gt;에서 '혜자'는 2년 전, 집에 들어온 강도를 정당방위로 죽인 상처를 가진 인물이다. 남편을 비롯한 타인들의 의혹에 찬 눈초리를 견디지 못해 정신병원 신세까지 지게 되고, 그곳을 나오자마자 이혼을 당한 처지이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고 외로움을 달래고자, 과거의 지인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만날 약속에 부풀어 외출을 하게 된다. 하지만 외출에서, 남편과 자식들이 자신을 버리고 이민을 가버렸다는 사실과 약속 장소에 한 명의 친구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배반감과 분노를 느낀다. 그녀는 '외출'을 통해, 2년이라는 기간이 자신은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예전 생활로 돌아오기 위해 안간힘을 쓴 기간이었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확인한다. 이 작품은 여성에게 불리하게만 작용하고, 다시 희망을 가지고 일어서려는 여성을 철저히 소외시킨 현실의 비정함을 냉정하게 묘사하고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렇듯 오정희 소설의 여성 주인공들은 '외출'을 통해 가정 내에서의 여성으로서의 위치와 혼란된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미래의 삶을 준비해나간다. 이러한 분출 욕망은 '가부장제'라는 체계 바깥에서 그 안을 객관적이고 자세하게 인식하도록 하는 '위치 바꾸기'이고, 지리멸렬하고 무료하게 반복되는 여성의 삶을 지탱해 나갈 수 있는 '숨 트임'이 되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둘째는 가출을 통한 정체성의 고민과 제의적 입사의 과정이다. &amp;lt;바람의 넋&amp;gt; 은 결혼해서 아이까지 둔 여주인공의 탐색을 통해서 여성에게 있어서 진정한 성장이 무엇인지를 문제 삼고 있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 소설의 문제 상황은 남편이 은행의 대리로 있고 아이도 잘 자라고 있는, 겉으로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중산층 가정주부인 '은수'의 원인 모를 가출로부터 비롯된다. 표면적으로 그녀의 가출은 일상에 대한 권태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권태가 아니라 은수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절실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자신이 현재 어머니의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시작된 의문인데, 성장과정에서 사촌으로부터 자신이 데려온 아이라는 말을 들은 이후로 그녀는 줄곧 자신이 현재 사는 곳이 자신의 본원적인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박적으로 상기하면서 자신의 근원에 대해 끝없이 질문을 하게 된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바람의 넋&amp;gt;을 여성성장소설로 볼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는, 이 소설이 자신의 출생에 대한 비밀을 알아가는 이야기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아 탐색의 절박성이 결혼과 더불어, 즉 가부장제 속에서의 여성의 위치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녀의 남편 '지세중'은 가부장제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인물로 나타난다. 그는 아내와 어머니라는 역할이 여성 정체성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고, 여성이 있어야 할 자리는 바로 집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남편의 남성중심적인 사고는 아내 '은수'에게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하고, 무의식적으로 배태된 '고아의식'으로 인한 자신의 출생에 대한 의문과 맞닿게 하여 가출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러므로 '가출'은 남성중심의 세계에서 여성이 실존을 확인하려는 적극적인 행위인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셋째, 가부장제 거부와 성 정체성의 확립이다. &amp;lt;저녁의 게임&amp;gt;은 가부장제 하에서 자신의 여성으로서의 성의 의미를 자각한 여주인공이 아버지로 대표되는 가부장제 이념과 맞서는 힘겨운 게임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저녁의 게임'이란 표면적으로 작품 내에서 이루어지는 그녀와 아버지 사이의 화투놀이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들의 화투 게임은 &quot;너덜너덜해진 각본으로&quot; 이루어진 &quot;연극&quot;처럼, 어떤 긴장감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습관적인 행동의 반복일 뿐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따라서 화투놀이는 그녀에게나 아버지에게 있어서 진정한 게임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아버지가 이런 뻔한 게임을 계속하는 것은, 화투놀이가 두 사람만의 권태로운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의례적인 게임이 아버지에게는 무료한 삶을 견디는 하나의 방법에 불과한 반면, 여주인공에게는 아버지로 대표되는 가부장제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아버지와 화투놀이를 하는 동안 여주인공은 끊임없이 어머니의 삶을 떠올리고 아버지와의 의견대립을 자꾸만 회상하는데, 이것은 비록 아버지에게는 그것이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사건이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현재진행형의 사건으로, 그녀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녀는 자신도 여성인만큼 어머니와 비슷한 삶을 살다가, 가부장제적 사고에 의해 미친 여자로 치부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머니와 자신의 공통된 운명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그녀의 성 정체성으로 굳어졌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의도적으로 아버지의 질문에 대해 거짓으로 답하거나 어머니의 운명에 대한 아버지의 해석을 비판적으로 곱씹고, 끝내는 아버지를 속이고 외출을 감행하기까지 하는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러므로 &amp;lt;저녁의 게임&amp;gt;의 여주인공이 익명의 사내와 만나 성 관계를 맺고 돈을 요구하는 행위는 그녀의 아버지로 대표되는 가부장제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즉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를 정신 이상으로 몰고 간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저항하기 위하여 자기 스스로가 가부장제 시각에서 정상적이라고 규정되는 여성의 삶을 던져버리고 창부라고 자처함으로써 가부장제를 야유하고 조소하고 있는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물론 주인공이 선택한 아버지에 대한 저항이 가부장제 하에서 여성인물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어떤 대안적인 삶의 모습은 충분히 그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저항의 당위성과 가능성을 입증해 보인 것만은 확실하다. 즉, 여성 섹슈얼리티의 발견과 그것에 부과되었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모순을 드러내보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여성성장소설로 파악할 수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처럼 오정희의 여성성장소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성성장소설의 두 가지 국면은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고 있다. 즉, '정체성의 혼돈'과 '정체성 탐색의 노력과 몸부림'은 서로 맞물려서 진행되는 같은 궤도상의 움직임일 뿐이고, 각 단계별로 '완성'된 형식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러기에 때로는 같은 작품 속에서도 여성 성장의 두 가지 국면, 즉 불모의 현실 속에서도 신생을 꿈꾸는 모습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단계별로 위기를 극복하고 파업을 달성하는 남성 성장소설과는 달리 여성성장소설은 자아의 거부를 시작점으로 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위한 나선형 모양의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여성의 성장은 인생의 전 과정에서 점층적으로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현재진행형의 성장으로 볼 수 있다.&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국어</category>
      <category>바람의 넋</category>
      <category>성장소설</category>
      <category>수능</category>
      <category>언어영역</category>
      <category>여성성장소설</category>
      <category>오정희</category>
      <category>저녁의 게임</category>
      <author>돈많은한량이꿈</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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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sora-2878.tistory.com/entry/%EC%97%AC%EC%84%B1%EC%84%B1%EC%9E%A5%EC%86%8C%EC%84%A4%EB%A1%9C%EC%84%9C%EC%9D%98-%EC%98%A4%EC%A0%95%ED%9D%AC-%EC%86%8C%EC%84%A4#entry13comment</comments>
      <pubDate>Wed, 10 May 2023 18:40:1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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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오정희 소설의 양상의 변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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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초기 소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77년에 간행된 첫 창작집 &amp;lt;&amp;lt;불의강&amp;gt;&amp;gt;으로 대표되는 오정희의 초기 소설들에는 세계와 화해로운 관계를 맺지 못하고 철저히 단절된 삶을 사는 인물들과 그들의 세계와 타인에 대한 파괴 충동을 그리고 있다. 비정상적인 성관계, 태아의 유산, 육체의 불구성 등은 이러한 단절된 관계를 잘 드러내는 모티브들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첫째, 비정상적인 성관계는 &amp;lt;완구점여인&amp;gt;에서 보이는 여성 간의, 그리고 &amp;lt;주자&amp;gt;와 &amp;lt;산조&amp;gt;에서 이야기되는 남성 간의 동애 관계, &amp;lt;봄날&amp;gt;과 &amp;lt;목련초&amp;gt;에서의 외간남자와의 관계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성관계는 그것이 과격한 폭발이든 무기력한 위축이든 성관계라 화해롭고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은 그들이 타아와 가장 뜨겁고 즉감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있음을 뜻한다. 환연하면 이러한 성관계는 자기와 세계와의 단절을 확인하면서, 그 확인을 인정하려 들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그 확인을 더욱 분명하게 체험하고 있음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관능이란 육감적이며 자기 해방적인 것이 아니라 혐오스럽고 자기 폐쇄적인 것이 된다. 그것은 대상으로의 해방감을 요구하면 할수록 더욱 스스로를 향한 폐쇄감으로 단절시키는 반응을 일으킨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둘째, 태아의 유산은 &amp;lt;번제&amp;gt;에서의 '태내에서 살해된 아이', &amp;lt;봄날&amp;gt;에서의 '더러운 종양을 제거하는 기분'으로 꺼낸 6달 된 태아로부터 &amp;lt;안개의 둑&amp;gt;에서 보호소에서 빼앗긴 젖먹이 아기, 그리고 &amp;lt;관계&amp;gt;에서 '며느리에게 자식을 잉태시키고 싶다'는 시아버지의 헛된 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지만 그 한결같은 모티브는 좌절당한 생명이다. 이 모티브는 비정상적인 성관계의 모티브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좌절당한 생명'은 나와 세계와의 단절을 확증해 주는 매체로 해석되어야 할 것 같다. 다시 말하면 태아의 생명은 목숨, 자기 삶의 연장체로서의, 모성애를 요구하는 목숨이라기보다 자기와 세계의 화합에 실패한 흔적으로 볼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amp;lt;봄날&amp;gt;에서 유산을 '흑판에 가득 쓰인 글씨를 지우개로 쓰윽 지우고 활활 털어 버리는 말짱해'질 듯한 일로 묘사하는 것과 같이 작가는 실제로 잃어버린 아기에 대해 인간적인 연대감으로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잊힐 수 없는 흠집으로 기억해 내는 것으로 묘사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마지막 육체의 불구는 앞의 두 모티브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자주 나타난다. 거의 소설에서 육체적 불구성은 세계에 대한 접촉의 능동성을 상실한 좌절의 이미지들이다. &amp;lt;완구점 여인&amp;gt;의 그 여인과 주인공 여자의 동생은 휠체어를 타고서야 기동 할 수 있는 몸이며 &amp;lt;관계&amp;gt;에서의 자살한 아들 역시 월남전에서 두 다리가 잘린 불구였다. 그리고 &amp;lt;미명&amp;gt;의 노파는 중풍환자이며, &amp;lt;안개의 둑&amp;gt;의 안마사는 소경이다. 불구라는 것이 대체로 그렇겠지만, 여기에 나오는 불구들은 기동력을 상실한 사람들이고 따라서 이 세계로부터 내던져진, 혹은 이 세계와의 교섭을 원천적으로 봉쇄당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생활의 무능력자일뿐더러 삶과 관계에서의 무능력자들이다. 그들은 세계로부터 감금당하고 있고 그래서 스스로를 폐쇄한다. 그들은 그러므로 자폐를 스스로에게 강요할수록 강하게 느껴지는 단절감으로 하여 외부에 대해 더욱 민감해진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상의 모티브들은 오정희의 경우 거의 시적인 이미지로 전개된다. 소설의 이미지화를 통해 자아와 외부 세계와의 화해롭고 관능적인 합일 상태가 아닌, 단절의 상태, 자폐적인 삶에 대한 지겨워함과 끔찍스러워 함, 그리고 세계와 타인들에 대한 파괴충동을 그려내고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후기 소설&amp;nbsp;&lt;/h2&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amp;lt;유년의 뜰&amp;gt;&amp;gt; 이후 오정희의 소설은 상당한 변모를 드러낸다. 대화는 직접 화법으로 바뀌고 인물들에게 이름이 붙여지며 운문적인 이미지의 문체로부터 통상적인 산문적 서술이 주조를 이루기 시작한다. 이러한 외형상의 변화와 더불어 비정상적 성관계라든가 태아 유산, 육체의 불구와 같은 초기작의 모티브들은 거의 말끔히 가시고 주인공들은 하나의 가족 단위의 인간관계를 형성하여 아이들은 자라고 남편과의 관계도 화해롭다. 따라서 이 소설들의 이야기는 일상적인 상황 속에서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전개되며 군데군데 작가 자신의 모습과 현실적인 사건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변화들은 오정희가 서정시의 세계로부터 소설의 세계로 옮겨 앉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며 직관과 추상의 세계로부터 역사와 현실의 세계로 시선을 돌리고 있음을 말해 준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후기소설의 대부분의 작품에는 중년 여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진부하고 권태로우며 무의미한 일상적 삶에 몸서리를 치고 있다. 그렇다는 것은 그녀들이 일상적 삶에 묶여 있으되 거기에 안주하거나 함몰되어 있지 않다는 뜻도 된다. 그래서 그녀들은 일상적 삶으로부터의 탈출의 욕구에 사로잡히는가 하면 일상적 삶에 대한 파괴의 충동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허망하고 끔찍스러운 일상적 삶으로부터의 탈출은 모두 주인공들이 '죽음'을 감지해냄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는 실존으로의 탈출이다. 그 탈출은, 인간의 근원적 존재상, 존재의 심연, 존재의 진실에의 맞섬이며, 그 심연, 진실은 다른 무엇으로 환원되거나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정희의 여주인공들은 한순간 한 순간 그 탈출을 예감한다. 존재의 심연을 섬뜩하게 응시하는 순간들이 바로 그 예감의 순간들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 예감은 한편으로 심연에의 두려운 응시이면서 동시에 존재의 진실의 추구이기도 하다.&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오정희</category>
      <category>오정희 소설의 변모</category>
      <category>저녁의 게임</category>
      <category>중국인 거리</category>
      <author>돈많은한량이꿈</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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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0 May 2023 11:28:5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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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오정희 소설의 서사 기법적 특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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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모호성 수법 - 1. 시적 이미지의 사용&lt;/h2&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오정희 소설에는 시적 비유와 이미지의 편중이라는 반 산문적인 경향을 현저하게 드러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비유나 이미지는 독자의 감각에 호소하고 사물에 대한 감각적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비교되는 두 사물 사이의 유사성 또는 연속성이 전제되어야 하는 동일성의 서술이다. 그리고 시적 세계관의 본직은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에 있다는 점에서 비유적 언어야말로 가장 시적인 언어이며 시의 대표적 장치가 된다. 그런데 오정희 소설에서의 이미지는 동일성의 원리를 넘어서서 공감각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리고 작품에 따라서는 이미지의 비논리적인 결합으로 인하여 일상적이고 논리적인 의미를 배제한 듯한 느낌을 준다. 이것은 주로 현대시에서 자주 구사되는 병치은유의 일종으로 문장의 상당한 부분이 '비동일성의 원리'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현실의 모방적 요소를 거의 찾을 수 없는 관념적인 추상화를 연상케 한다.&lt;/p&gt;
&lt;blockquote data-ke-style=&quot;style3&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Noto Serif KR';&quot;&gt;&amp;nbsp; &amp;nbsp;밤 공기는 무덥고 꽃가루 분분히 날리듯 농밀하고 달짝지근해서 질식할 것만 같았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Noto Serif KR';&quot;&gt;&amp;nbsp;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Noto Serif KR';&quot;&gt;&amp;nbsp; ......(중략)......&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Noto Serif KR';&quot;&gt;&amp;nbsp; 봄부터 가을까지 넝쿨 따라 줄곧 피고 지는 꽃향기로 끈끈하고 무거운 어둠을 밀어내려는 안간힘에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lt;/span&gt;&lt;/blockquote&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꽃향기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농밀하고 달짝지근해서 질식할 것만 같았다', '끈끈하고 무거운 어둠' 등 파격적인 비유를 통하여 이미지를 구사하고 있다. 두 사물 간의 결합으로 새로운 문맥을 만들어내는 형식으로 시적 긴장을 형성하고 있다. 한 대상에 대하여 시각, 후각, 청각, 촉각 등 여러 감각을 동원하여 공감각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그 대상을 보다 생생하게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입체적 서술과 이미지의 중층적 서사 전략은 사건의 전개를 위한 객관성의 제시보다는 사물의 느낌에 대한 주관적인 진술을 위해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모호성 수법 - 2. 실제와 환상간의 거리 제거&lt;/h2&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의 두 번째 창작집에 수록된 &amp;lt;별사&amp;gt; 에는 그 후반부에서 뙤약볕을 쬐며 친정 부모의 예약된 못자리를 답사하는 이야기와 낚시를 하러 집을 나간 남편의 정처 없는 배회 이야기가 몽타주로 함께 진행된다. 김치수는 &amp;lt;유년의 뜰&amp;gt; 해설에서 유물을 남겨놓고 실종된 남편을 아이의 생명과 대조시킨 남편의 익사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 부분을 자세히 읽어 보면 남편의 죽음이 아내의 환상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이 밝혀진다. 주인공 여자오 ㅏ그녀의 어머니와의 대화나, 그녀와 그녀의 남편에게 소설 속의 시간이 주어진 날이 같은 백중날이었다는 데서 그것은 입증되는데, 여기서의 문제는 사실상의 줄거리 해독이 아니라 그 해독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작가의 의도에 있다. 작가는 주인공 여자의 환상 속 정경과 자신의 지금의 일들 간에 거의 구획선을 그어주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남편의 죽음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환상 속의 죽음이 아닌 것처럼 위장시킨다. 그 위장의 수법은 다른 여러 작품에서도 자주 보이는데 그것은 아마도 환상과 실제, 혹은 삶과 죽음이 동일한 평면 위에 공존하고 있음을 방법적으로 드러내 주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모호성 수법 - 3. 내면과 객관과의 구별 거부&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아이를 데리고 남편의 낚시질을 따라나선 여주인공을 이야기하는 &amp;lt;비어있는 들&amp;gt;에는 그녀의 의식을 끈덕지게 휘어잡은 '그'가 출현한다. 소설은 그녀가 '그'의 출현에 대한 예감에 휩싸이며 그를 맞으리라는 기대에 역으로 나갔었다거나, 기차의 기적 소리마다 그가 그 차에 탔으리라는 예상에 젖어 있음을 간곡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정작 그가 누구인지 혹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그 정체를 설명하고 있지 않다. 이 소설을 읽어 가면서 처음에는 인물로 느껴졌던 것이 점차 추상적인 그 어떤 것으로 수정되어 가고, 낚시질에서 돌아오면서 보게 되는 주검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갖게 만들지만, 작품에 빈번히 나타나는 어휘인 '예감'을 통해 그것이 그 자체임을, 일상성에 묻히지 않고 돌출하는 어떤 막막한 기대에의 열망일 것임을 그것은 암시하고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러한 현실감을 갖지 않은 '그'의 출현은 &amp;lt;유년의 뜰&amp;gt; 과 &amp;lt;중국인 거리&amp;gt;, &amp;lt;밤비&amp;gt;와 같은 작품에서도 나타난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문체의 특성&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소설에 대한 비소설적 접근 태도는 오정희 문학의 중요한 특성을 이루는데 이 기법은 그의 문체에 대한 검토에 이르면 보다 폭넓고 유창하게 활동하고 있음이 발견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첫째, 후기 소설에서 그 빈도는 줄어들지만 두 권의 창작집에 수록된 작품들 속에서 행해지고 있는 대화 부호의 삭제는 대화와 지문, 혹은 대화와 대화 간의 구별을 어렵게 만든다. 물론 대화 부호가 없는 대화의 처리법은 황순원과 송영의 초기작가들에서 애용되고 있는 바이지만, 오정희의 경우 그것이 유발하는, 타인과의 객관적 관계 유지의 포기라는 효과가 더 치밀하고 시적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그러므로 간접 화법이 갖는 독특한 분위기 이상으로 그의 소설들이 의식의 내면 풍경으로 읽히도록 유도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둘째는 최초의 소설들을 제외한 그의 대부분의 소설 주인공들은 이름으로 표기되지 않고 관계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후기의 소설에서는 가령 남편이나 어머니 혹은 아이와 같은 불특정의 관계 명사 혹은 노랑눈이 처럼 별명으로 불려져 어느 정도 객체성을 띠고 있지만 초기의 소설들은 나와 당신, 그 라는 대명사로 지칭되고 있고, 이름이 나온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대명사적인 분위기 속에 싸여 버린다. 이 같은 고유 명사의 제거는 객체를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자기 속에 함몰된 타아를 의식하게끔 만들며 내면의 의식 상태에 의해 지배를 받는 세계를 보게끔 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셋째, 그의 소설 지문에는 현재형, 과거형, 대과거형의 복잡한 시제들이 세심하게 연결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하나의 문단 안에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것과 과거에 있었던 것에의 회상, 그 과거 속의 또 하나의 과거가 복합적으로 얽혀 의식의 분방한 산책을 드러내 준다. 그러나 독자는 이 시제들의 변화를 기민하게 따라가지 못함으로써 해독의 혼란을 일으킨다. 작가는 바로 이 시제의 혼란을 통해 시간의 분절성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오정희의 이와 같은 문체와 수법은 요컨대 그가 그의 소설들을 소설 아닌 시로 읽혀지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구체적인 묘사 대신에 모호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사실적인 설명 대신에 분위기적인 비유를 사용하여 객관적인 해석 대신에 내면적인 표상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소설 세계를 사실적 차원으로, 현실과의 대조로서가 아니라 숨겨진 내면의 추상으로 그리고 해석의 영역으로서가 아니라 존재의 영역으로 바라보게끔 만든다. 우리는 이러한 세계를 뤼시엥 골드만이 말하는, 자아와 세계 간의 단절에서 보여지는 서정시의 세계로 일컬을 수 있을까. 오정희의 세계는, 깊은 눈으로 바라보는 이 존재 세계의 영원한 비밀, 그것의 무한한 은폐와 완강한 함구, 격렬한 적의와 철저한 절망을 그 자체로 내포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의 세계 해석을 거부하면서 그 자체로 타인의 해석을 견제하는 완벽한 단절을 시도한다. 그것은 세계와 존재에 대한, 아마도 타고난 비극적 비전으로서야 이해될 수 있는 영역이며 이 비극적 비전이 세계를 소설로서가 아니라 서정시로 바라보게끔 만드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 참고 자료&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김병익 / &amp;lt;세계에의 비극적 비전&amp;gt; / 동화문화사 / 1983&lt;/p&gt;</description>
      <category>국어</category>
      <category>문체의 특성</category>
      <category>밤비</category>
      <category>서사적 기법</category>
      <category>소설</category>
      <category>언어영역</category>
      <category>오정희</category>
      <category>중국인거리</category>
      <author>돈많은한량이꿈</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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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sora-2878.tistory.com/entry/%EC%98%A4%EC%A0%95%ED%9D%AC-%EC%86%8C%EC%84%A4%EC%9D%98-%EC%84%9C%EC%82%AC-%EA%B8%B0%EB%B2%95%EC%A0%81-%ED%8A%B9%EC%84%B1#entry11comment</comments>
      <pubDate>Wed, 10 May 2023 11:01:5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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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작가 오정희의 생애</title>
      <link>https://sora-2878.tistory.com/entry/%EC%9E%91%EA%B0%80-%EC%98%A4%EC%A0%95%ED%9D%AC%EC%9D%98-%EC%83%9D%EC%95%A0</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오정희는 1947년 11월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였고, 그녀의 어머니가 동생을 임신한 만삭이었기 때문에 일찍 피항을 떠나지 못하고 포격이 치열했던 서울에서 꼬박 견디었다. 그러나 1951년 2월에 후퇴하는 국군을 따라 피란길에 오르게 되는데, 무작정 남의 트럭을 얻어 타고 내린 곳이 충남 홍성의 한 마을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작가의 편린들은 훗날, &amp;lt;유년의 뜰&amp;gt;과 &amp;lt;중국인 거리&amp;gt;의 창작 모티프이자 구체적인 묘사의 대상이 된다. 오정희는 부모가 일찍 장삿길에 떠돌았기 때문에 실제로 외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고, 할머니에 대한 남다른 기억들 역시 작품 곳곳에서 그려졌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55년 초등학교 2학년에 피란 생활을 정리하고 인천 차이나타운 근처로 이주하게 되는데, 어린 작가의 눈에 비쳤던 그곳의 모습들은 &amp;lt;중국인 거리&amp;gt;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무렵, 책읽기에 재미를 들여 신문 연재소설부터 야담류까지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 대기 시작했고, 초등학교 3학년에 경기도 내 백일장에서 입상을 하면서 소설가의 소망을 품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문학의 길은 여고시절을 거치면서 심한 문학병을 앓게 한다. 여고 시절,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공부에 별 뜻이 없었던 오정희는 결석과 조퇴를 반복하며 책가방을 든 채로 혼자 교외선을 타고 돌아다니는 일이 잦았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사색했던 그 시절의 기억은 쓰라림으로 자리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오정희의 그러한 방황은 훗날 전반적으로 음울한 작품의 색깔과 존재론적 고민으로 일관되는 작품의 주제 형성에 큰 요소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소설에 대한 열망으로 1966년 서라벌 예술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하여, 김동리, 서정주, 박목월, 김수영, 김현 등의 강의를 들었다. 그러나 문학의 어려움을 어렴풋이 알게 되고, 삶을 감당할 재능도 광기도 없는 자신에 대해 또다시 괴로워하고 고뇌하던 중 1968년 &amp;lt;완구점 여인&amp;gt;으로 신춘문예에 당선한다. 그 후 1년에 2~3편가량의 작품을 발표하고,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근무하다가 1974년 결혼을 맞게 된다. 1977년 12편의 작품이 수록된 첫 창작집 &amp;lt;&amp;lt;불의강&amp;gt;&amp;gt;을 펴내고, 첫아들을 낳게 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78년 강원대 사회학과의 전임 강사로 임용된 남편을 따라 춘천으로 이주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느끼는 낯설고 유배당한 듯한 고독감은 &amp;lt;꿈꾸는 새&amp;gt; (1978) 를 비롯한 많은 작품에서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진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978, 1980년 작가는 어린 시절 겪었던 전쟁의 경험을 토대로 &amp;lt;중국인 거리&amp;gt;, &amp;lt;유년의 뜰&amp;gt;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80년대 당시 사회는 진상을 알수 없는 흉흉한 소문들이 들끓어 나라 전체가 공포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고, 오정희 역시 남편을 찾아 곳곳에서 걸려오는 전화며 수사기관의 감시에 매우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남편은 장마철에 산더미 같은 짐을 꾸려 낚시를 간다며 떠나버리는데, &amp;lt;별사&amp;gt; 등 다수의 작품에서 그러한 상황을 고스란히 그려낸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한편으로 어지러운 시대상 속에서 많은 문인과 지식인, 노동자들이 잡혀가고 고초를 당하는 가운데, 글을 쓰는 작가로서 두려워 발언하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한 것이 오정희에게 커다란 죄책감과 짐으로 남아, 자신의 내부로 끝없이 침잠하고 도피하게 만들었다고 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러는 가운데 1979년 &amp;lt;저녁의 게임&amp;gt;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1981년 두 번째 창작집 &amp;lt;&amp;lt;유년의 뜰&amp;gt;&amp;gt; 을 펴냈다. 1982년에 &amp;lt;동경&amp;gt;으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하게 되고, 1984년에는 뉴욕 주립대 교환교수로 나가는 남편을 따라 뉴욕으로 향하게 된다. 그녀의 미국행은 귀국 후, &amp;lt;파로호&amp;gt; (1989)의 모티프가 되어 그려진다. 그 후, 지금까지 그녀가 작품을 통해 펼쳐놓았던 한 여성의 삶의 궤적을 1994년 &amp;lt;옛 우물&amp;gt;을 통해 한층 안정되고 성숙한 목소리로 정리하고 있다. 이러한 그녀의 문학적 성과는 1995년 동아일보사의 제1회 '일민펠로우' 수혜자로 선정, 1996년 오영수문학상과 동서문학상 수상, 2003년 독일 리베타루트 문학상 수상 등으로 나타났다.&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동서문학상</category>
      <category>오영수문학상</category>
      <category>오정희</category>
      <category>작가</category>
      <category>작가의 생애</category>
      <category>중국인거리</category>
      <author>돈많은한량이꿈</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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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sora-2878.tistory.com/entry/%EC%9E%91%EA%B0%80-%EC%98%A4%EC%A0%95%ED%9D%AC%EC%9D%98-%EC%83%9D%EC%95%A0#entry10comment</comments>
      <pubDate>Wed, 10 May 2023 10:14:02 +0900</pubDate>
    </item>
    <item>
      <title>신화의 특징과 분류</title>
      <link>https://sora-2878.tistory.com/entry/%EC%8B%A0%ED%99%94%EC%9D%98-%ED%8A%B9%EC%A7%95%EA%B3%BC-%EB%B6%84%EB%A5%98</link>
      <description>&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nbsp; 한국의 신화는 신성성이 인지되는 범위에 따라 국가 시조신화, 촌락 시조신화, 씨족 시조신화 등 조상신 신화와 농경 생산신 신화, 가정 수호신 신화, 수명 부록신 신화 등의 무속신 신화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 모두가 신화로 인지하는 자료는 국가의 건국경위를 이야기한 국가 시조신화이다.&lt;/p&gt;
&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국조신화&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한국의 국조신화는 &amp;lt;단군신화&amp;gt; &amp;lt;주몽신화&amp;gt; &amp;lt;박혁거세신화&amp;gt; &amp;lt;수로왕신화&amp;gt;가 있는데, &amp;lt;&amp;lt;삼국유사&amp;gt;&amp;gt; &amp;lt;&amp;lt;삼국사기&amp;gt;&amp;gt; &amp;lt;&amp;lt;고려사&amp;gt;&amp;gt; &amp;lt;&amp;lt;제왕운기&amp;gt;&amp;gt; &amp;lt;&amp;lt;세종실록지리지&amp;gt;&amp;gt; 등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국조신화는 대체로 고조선 건국신화와 고구려 건국신화 등 북방지역의 신화와, 신라 건국신화와 가락국 건국신화인 남방지역 신화로 나누어진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단군신화&amp;gt;와 &amp;lt;주몽신화&amp;gt;는 고조선 건국과 고구려 건국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화에 반영된 역사적 사실은 상당한 시간적 거리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신화 속에 내재한 사유구조는 동일한 것임이 추출된다. 두 신화의 공통된 지향의식은 하늘과 땅, 또는 물에 대한 신성 관념이다. 북방지역 신화는 천신과 지신, 또는 수신의 혼례 &amp;rarr; 시조의 탄생 &amp;rarr; 건국의 순서로 전개된다. 한편 남방지역의 신화인 신라의 &amp;lt;박혁거세신화&amp;gt;와 가락국의 &amp;lt;수로왕신화&amp;gt;는 하늘과 땅의 상징적 결합은 나타나지만 남신과 여신의 혼례과정은 생략된 채 시조의 출생이 먼저 이루어진다. 그리고 시조의 건국이 이어지고 그 다음 시조의 혼례가 나타난다. 즉 남방지역의 신화는 시조의 탄강 &amp;rarr; 건국 &amp;rarr; 시조의 혼례 순서로 전개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시조가 왕이 되는 과정에서도 두 계열의 신화는 차이를 보인다. 북방계 신화는 국가체계가 정비된 이후에 시조가 태어나서 이미 있었던 국가와는 다른 새로운 국가를 건국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반면 남방지역의 신화는 국가라는 것이 없었던 시기에 처음으로 국가를 만들고 이 세상 최초의 왕으로 추대된다는 내용을 보여 준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단군신화&amp;gt;는 한민족이 최초로 세운 조선의 개국과정을 이야기한 것이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lt;/p&gt;
&lt;blockquote data-ke-style=&quot;style3&quot;&gt;&amp;nbsp; 옛날 환이라는 나라에 서자 환웅이 하늘 아래 인간세계를 탐해서 구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의향을 알고 아래 세계를 내려다보니 태백산이 나라를 세울 만했다. 그래서 천신의 증표인 세 가지 물건을 황웅에게 주시고 내려보내어 다스리도록 했다. 환웅이 종자 삼천을 데리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 하강해 신시를 처음 여니 이분이 곧 환웅천왕이다. 환웅은 바람, 비, 구름을 맡아 다스리는 신하들을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 인간의 360여 가지의 일을 주재했다.&lt;br /&gt;&amp;nbsp; 그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에 살면서 항상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래서 환웅은 신령스러운 쑥과 마늘을 그들에게 주고 말하건대,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 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것이라고 했다. 곰과 호랑이가 금기를 지키다가 호랑이는 참지 못해 사람이 못 되고 곰은 금기를 지킨 지 스무하루 만에 사람의 형체를 얻어 여인이 되었다. 곰여인은 결혼할 상대가 없으므로 매일 단수 아래에서 잉태할 것을 기원했다. 그래서 환웅이 잠깐 신랑이 되어 웅녀와 혼인해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의 이름을 단군왕검이라 했다. 단군은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처음으로 조선이라고 했다.&lt;/blockquote&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역사학자들은 이 신화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환웅은 천신을 숭배하면서 이주해 온 집단을 나타낸다. 한편 웅녀는 곰을 토템으로 숭배한 토착부족을 나타낸다. 환웅과 웅녀가 결혼해 단군을 낳고 단군이 조선의 시조가 되었다는 것은 이주해 온 천신 숭배 부족과 선주민인 곰 토템 부족이 통합해 새로운 집단으로 탄생했음을 말해 준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 신화에는 인본주의 사상이 굳게 자리잡고 있다고 본다. 환웅은 천신적 존재였으나 인간세계를 그리워했고, 곰과 호랑이는 동물이면서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는 점에서 신도 동물도 모두 인간세계를 동경한다는 사고를 찾을 수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주몽신화&amp;gt;는 고구려 건국신화로서 &amp;lt;광개토왕비&amp;gt; &amp;lt;모두루묘지명&amp;gt; &amp;lt;천남산묘지명&amp;gt; 등의 비문에서부터 &amp;lt;&amp;lt;삼국사기&amp;gt;&amp;gt; &amp;lt;&amp;lt;삼국유사&amp;gt;&amp;gt; &amp;lt;&amp;lt;제왕운기&amp;gt;&amp;gt; &amp;lt;&amp;lt;응제시주&amp;gt;&amp;gt; &amp;lt;&amp;lt;세종실록지리지&amp;gt;&amp;gt; &amp;lt;&amp;lt;동국통감&amp;gt;&amp;gt; &amp;lt;&amp;lt;필원잡기&amp;gt;&amp;gt; 등 한국의 문헌자료, 그리고 &amp;lt;&amp;lt;후한서&amp;gt;&amp;gt; &amp;lt;&amp;lt;위서&amp;gt;&amp;gt; &amp;lt;&amp;lt;당서&amp;gt;&amp;gt; &amp;lt;&amp;lt;주서&amp;gt;&amp;gt; &amp;lt;&amp;lt;수서&amp;gt;&amp;gt; &amp;lt;&amp;lt;북사&amp;gt;&amp;gt; 등 중국의 문헌에 두루 수록되어 있다. &amp;lt;주몽신화&amp;gt;는 한국의 대표적 영웅신화로서 &amp;lt;해모수신화&amp;gt; &amp;lt;주몽신화&amp;gt; &amp;lt;유리신화&amp;gt;의 삼대 신화가 집성된 것이다. 이 신화는 주몽의 신이한 탄생과 시련 그리고 영웅적 투쟁을 통한 건국경위를 이야기하고 있어 영웅 일대기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 준다.&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박혁거세신화&amp;gt;는 신라의 건국신화로서 &amp;lt;&amp;lt;삼국사기&amp;gt;&amp;gt; &amp;lt;&amp;lt;삼국유사&amp;gt;&amp;gt; &amp;lt;&amp;lt;제왕운기&amp;gt;&amp;gt; &amp;lt;&amp;lt;세종실록지리지&amp;gt;&amp;gt; 등 한국의 문헌에 두루 전하고 있다. 신라의 건국신화는 시조와 시조비의 신비한 출생담으로만 되어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수로왕신화&amp;gt;는 &amp;lt;박혁거세신화&amp;gt;와 같은 성격을 가진다. 시조의 탄강과 즉위 그리고 시조의 혼례로 이어지는 남방지역 신화의 성격을 반영한 것이다.&amp;nbsp;&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성씨 시조신화&lt;/h2&gt;
&lt;p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박혁거세신화&amp;gt;와 &amp;lt;수로왕신화&amp;gt;는 건국신화이면서 동시에 경주 박씨와 김해 김 씨의 성씨 시조신화이기도 하다. 한국의 성씨 시조신화는 이 밖에 제주도의 &amp;lt;삼성신화&amp;gt;와 평강 채 씨, 창녕 조 씨의 시조신화 등이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삼성신화&amp;gt;는 &amp;lt;&amp;lt;고려사지리지&amp;gt;&amp;gt; 및 &amp;lt;&amp;lt;영주지&amp;gt;&amp;gt; 등 문헌에 전하는 고, 양, 부 씨의 시조신화이다. 이 신화는 시조가 땅으로부터 솟아났다고 되어 있어 하늘에 대한 신성관념보다 땅에 대한 숭앙의식이 강조되어 있으며, 시조의 결혼과정은 &amp;lt;수로왕신화&amp;gt;와 유사하나 목축과 농경이 여성들과 함께 벽랑국으로부터 전해졌다고 되어 있어 농경부족의 시조신화임을 말해 주고 있다.&lt;/p&gt;
&lt;p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평강 채씨와 창녕 조 씨의 시조신화는 야래자 설화의 유형으로서 수달이나 뱀 또는 거북 등이 사람으로 변해 처녀를 밤에 찾아가 임신시켰는데 거기서 출생한 아이가 시조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신화는 지신계의 여성과 수신계의 남성이 결합해 시조를 낳았고 부계의 존재가 감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건국시조의 출생과는 다른 성격을 보여 준다.&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 참고문헌&lt;/p&gt;
&lt;p style=&quot;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한국문학강의/조동일 외 6인공저/길벗/1994&lt;/p&gt;</description>
      <category>고려사</category>
      <category>단군신화</category>
      <category>박혁거세신화</category>
      <category>삼국사기</category>
      <category>삼국유사</category>
      <category>수로왕신화</category>
      <category>신화</category>
      <category>제왕운기</category>
      <category>주몽신화</category>
      <author>돈많은한량이꿈</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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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sora-2878.tistory.com/entry/%EC%8B%A0%ED%99%94%EC%9D%98-%ED%8A%B9%EC%A7%95%EA%B3%BC-%EB%B6%84%EB%A5%98#entry9comment</comments>
      <pubDate>Tue, 9 May 2023 17:35:4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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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소설 세상 시작합니다</title>
      <link>https://sora-2878.tistory.com/notice/1</link>
      <description>&lt;p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앞으로 티스토리에 소설과 관련된 다양한 대한 내용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lt;/p&gt;
&lt;p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줄거리, 핵심정리, 해설 등 건강과 관련된 다양한 소재를 다룰 예정입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러니 앞으로 많이 찾아와 주세요.&lt;/p&gt;
&lt;p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잘 부탁드립니다. 궁금한 사항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lt;/p&gt;
&lt;p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계속적으로 업데이트 할 예정이니 꼭 방문부탁드립니다.&lt;/p&gt;
&lt;p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감사합니다.&amp;nbsp;&lt;/p&gt;</description>
      <author>돈많은한량이꿈</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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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30 Apr 2023 03:52:0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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